노인과 두런두런 대화…‘효도 로봇’ 인기
맞춤 식단도 새벽배송…메디푸드 급성장
장면 1. 지난 2월 말 경기도 판교 카카오헬스케어 본사에서 ‘국제 인공지능 의료제품 규제 심포지엄(AIRIS 2024)’이 열렸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미르 푸자리 AI 리드, 데이빗 리즈 암젠 최고기술책임자 겸 부사장,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세계 규제당국 관계자와 글로벌 의료 AI 기업인 등이 총출동한 국제 행사다.
이 자리에서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최근 출시한 AI 기반 모바일 혈당 관리 서비스 ‘파스타’를 시연했다. 파스타는 국내 기업 아이센스의 ‘케어센스 에어’와 미국 기업 덱스콤의 ‘G7’ 등 2개 CGM(연속혈당측정기) 센서와 연동해 실시간 혈당 데이터, 생활 습관과 혈당의 상관관계를 모바일 앱으로 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외 여러 인사가 카카오헬스케어에서 빅데이터·AI를 활용한 디지털 의료기기, 신약 등 의료제품 기획, 개발 현장을 직접 관람하고 관련 경험을 공유했다.
장면 2. 요양 서비스 스타트업 ‘케어링’이 최근 4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해 화제에 올랐다. 누적 투자금 750억원으로, 국내 요양 서비스 스타트업 중 최대 규모다. 2019년 설립된 케어링은 장기요양(방문요양·주야간보호·방문목욕·방문간호) 사업을 시작으로 커머스(복지용구·공동구매·PB 상품 판매), 시니어 하우징(시니어 레지던스 운영), 요양보호사 교육원 등의 노인 보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케어링 소속 요양보호사는 약 4만2000명, 누적 서비스 이용자는 약 1만2000명에 달한다. 케어링은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 경남, 대구, 광주 방문요양·주간보호센터 14곳을 비롯해 요양보호사 교육원 4개, 복지용구센터 2개 등 총 34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다. 이번 투자 유치로 케어링은 향후 100개 이상의 요양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포부다.
시니어케어 산업 하면 흔히 요양병원, 복지관만 떠올리기 마련이다. 디지털 전환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하기도 한다. 최근 양상은 다르다. 코로나19 당시 간병인 대란(수급 부족)에서 보듯 시장의 ‘페인포인트(고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가 감지됐고 이를 IT 서비스로 보완하는 스타트업이 주목받으면서 관련 시장에 투자금이 몰리는 양상이다.
케어링·케어닥 수백억 투자
요양보호사, 간병인.
시니어케어 사업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직업이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수요는 폭발하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올지’ 모르니 답답해하는 이가 많다. 이런 복지성 서비스를 앱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각광받는다. 최근 400억원을 투자받은 케어링 외에 케어닥, 케어네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케어닥은 ‘배달 앱에도 식당 리뷰가 있는데 왜 어르신 돌봄시설은 4만여개가 넘는데도 관련 정보가 제한적일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2018년 출범한 이 회사는 시니어 돌봄 매칭 서비스로 시작해 지금은 홈케어 서비스, 방문요양돌봄센터 직영·파트너 사업, 시니어 하우징, 병원·자택 간병 사업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설립 5년 차 누적 거래액이 17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말에는 17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매출 103억원, 올해 목표 매출은 250억원이다.
돌봄 서비스 플랫폼 ‘케이네이션’은 ‘역경매 입찰제’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보호자는 케어메이트(돌봄 서비스 제공자)의 경력, 후기 등을 미리 확인하고 원하는 케어메이트를 선택할 수 있다. 케어메이트 역시 환자 상태를 파악한 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공고를 선택해 돌봄비를 먼저 제시한다. 양쪽 니즈가 일치해야 계약이 성사되니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케어네이션도 최근 50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305억원에 달한다.
건강관리, 맞춤형 운동 서비스로 차별화한 스타트업 ‘리무빙컴퍼니’도 눈길을 끈다. 운동 분석기를 통해 시니어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지난해 혁신제품으로 조달청에 등록됐고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에 참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돌봄 로봇으로 치매 완화
‘인형 같은데 말을 하네? 생각보다 곧잘 하네?’
시니어케어 AI 로봇 ‘효돌’ 얘기다. 효돌은 스페인 MWC까지 진출, ‘헬스·웰빙 모바일 혁신’ 부문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GLOMO)를 수상하며 사업성을 입증받았다. GLOMO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수여하는 ‘ICT업계의 오스카’로 불린다. ‘효돌’은 AI와 각종 센서 기능을 통해 어르신 말동무 역할을 해준다. 또 일정 관리와 위급 상황 대비에도 쓰인다. 일종의 비서 역할이다. 올 3월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 전라남도 22개 시군구 전체가 효돌을 활용, 어르신 돌봄을 구현하고 있다.
김지희 효돌 대표는 “단순히 대면 돌봄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닌 24시간 같이 있는 돌봄 로봇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대면·비대면 돌봄을 구현, 돌봄 질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복약순응도, 우울증, 자살 생각 감소 등 노인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효돌은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수행하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 활성화 기술 실증 분야’에서 연세대 용인세브란스병원 등과 함께 의료 취약 지역, 특정 질환·상황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비대면 의료 서비스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돌봄 로봇과 어르신의 대화 속에서 이상 징후를 통해 돌봄 종사자들(사회복지사, 간호사, 생활지원사 등)이 발견하지 못하는 어르신 마음의 병 즉 불면증, 우울증, 치매, 자살, 성감수성 고위험군 등을 발견하고 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의 권유에도 진단을 거부하던 어르신이 돌봄 로봇과 대화 후 보건소를 방문, 질병이 호전된 사연이 전국 곳곳에서 들려올 때 보람을 느낀다.” 김동원 미스터마인드 대표 설명이다.
돌봄 로봇이 포함된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2021년 362억달러(약 46조원)에서 2026년에는 3배에 달하는 1033억달러(약 129조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AI 비서 역시 시니어케어 시장에서 광폭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의미한 실적을 내는 곳은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다. SK텔레콤의 AI 돌봄 서비스는 2019년 출시 후 전국 93개 지자체·기관 돌봄 대상자 약 1만7000여명의 노인이 이용한다. “아리아, 살려줘.” “아리아, 긴급 SOS.” 등의 간단한 말로 119나 관제센터에 도움을 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본. AI와 대화하며 두뇌 운동을 도와주는 ‘두뇌톡톡’을 통해 치매 이환율(고위험군에서 치매로 확진된 비율)을 통상 15% 수준에서 3.24%로 낮추기도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사용자가 AI 스피커를 통해 고립감·우울감 등 부정적인 언어 표현을 하는 경우 이를 분석해 방문 간호사나 심리상담사와 연결하는 기능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KT 역시 AI 비서 ‘지니’를 통해 ‘감성케어’를 제공하면서 시니어케어 시장에 진입했다. AI가 시니어 고객과의 과거 대화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장소, 취미 등 고객 상황을 인지해 감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AI가 고객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면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하고 상황과 대화를 요약해 보호자나 관련 기관에 전달하기도 한다.
질환 맞춤형·정기배송 진화
나이가 들수록 관심이 높아지는 분야가 식단이다. 몸 상태, 체질에 맞는 식단을 선택하고 맞춤형으로 배달받거나 정기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산업이 시니어케어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일명 ‘메디푸드’다. 예전에는 ‘병원식’ 정도로 분류됐으나 최근에는 건강 상태 맞춤형 정기배송 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관련 시장은 성장세가 뚜렷하다. 2021년 세계 메디푸드 시장 규모는 약 78억달러(약 10조3000억원) 정도. 세계보건기구는 세계 메디푸드 시장이 2017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7.95%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시장은 단체급식 업체가 주도하는 가운데 최근 식품 회사, 스타트업도 뛰어들어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아워홈과 현대그린푸드가 단체급식 회사 중에서는 시니어케어 분야 선도 업체다.
아워홈은 2022년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시행하는 ‘소화기암 환자의 수술 후 영양 충족, 소화 증진이 가능한 암환자용 메디푸드 산업화’ 연구과제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메디푸드 전문 플랫폼 ‘캘리스랩’을 선보였다. 암환자용 식단·제품 등 환자식을 넘어 시니어 체질, 몸 상태를 전문가가 상담 후 회사원은 급식 식단에 반영해주고, 개인은 정기배송 방식으로 식사할 수 있게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2022년 당뇨 식단과 암환자 식단을 선보인 현대그린푸드 역시 자체 브랜드 ‘그리팅’을 통해 시니어케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식단을 구독할 수 있고 당뇨·암환자·신장 질환 식단을 선택할 수도 있다.
풀무원식품 역시 개인 맞춤형 식단 사업 플랫폼 ‘디자인밀’을 통해 시니어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풀무원은 연하식(식도로 삼키기 어려울 때 먹는 음식), 연화식(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가 곤란할 때 먹는 음식) 등 시니어 맞춤형 식단으로 최근 사세를 확장 중이다.
중견기업 중에는 에쓰푸드 계열 메디쏠라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다.
메디쏠라는 미국유제품수출협회와 ‘우유 단백질과 만성 대사 질환’에서 ‘환자들의 단백질 섭취 실태와 개선 방안’을, 세브란스병원과는 ‘메디쏠라의 식단’을 통한 지방간 질환자 개선 연구 등을 진행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프레스티지·밸런스·샐러드 식단 등 ‘건강 케어식’, 신장튼튼 등 ‘질환 케어식’, 암·당뇨·신장 식단 등 ‘질환 맞춤식’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롯데홈쇼핑 ‘최유라쇼’에서는 한 시간 만에 준비된 물량이 완판, 업계를 놀라게 했다.
경영 컨설팅 회사 사이먼쿠처코리아의 노정석 대표는 “시니어케어 시장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있는 액티브 시니어의 적극적인 소비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메디푸드처럼 실생활 밀착형 산업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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