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북 자체 핵우산 갖고 있어"…김정은 원했던 그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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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우산 가진 北…손 안 벌린다"
푸틴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 '로시야 1', '리아 노보스티' 등과 인터뷰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당 발언은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따라 금지된 핵 관련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을 반박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푸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한 뒤 북한이 탄약과 포탄을 러시아에 대거 공급하고 있는데, 북한은 반대급부로 러시아로부터 고급 기술 전수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핵우산' 언급이 비확산 체제와 관련해 어떤 인식을 바탕으로 나온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핵우산이라는 비유 자체가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쓰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푸틴의 이날 발언에 우려가 제기된다. 핵우산은 핵보유국의 억지력을 동맹에 확대 적용하는 '확장억제' 개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핵우산은 억지력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한 자위적 조치로 핵을 개발했다'는 북한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합법적으로 핵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즉 P5(안보리 상임이사국)뿐이다. 이외에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은 NPT 체제에 참여하지 않은 채 핵을 개발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일컬어진다. 국제사회도 이들의 핵 보유에 대해선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데, 김정은이 노리는 게 이런 모델이다. 특히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비핵화는 아예 협상 의제에서 배제하고, 북핵 용인을 전제로 핵 군축 협상을 통해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겠다는 목표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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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러 활용 노릴 것"
이와 관련,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 보고서에서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러시아와 군사적 밀착 관계를 활용하려고 희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로부터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발언이 처음 나온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정치적 측면에선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포장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이 이처럼 북핵 용인의 여지를 주는 듯한 뉘앙스를 공개적으로 내비친 것만으로도 국제 비확산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핵 무력 정책법을 제정해 핵 선제 타격까지 법제화한 김정은의 불법적 핵 개발 야심을 더 부추길 우려마저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푸틴의 발언은 핵 비확산 체제의 규범이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협적이며 도발적인 언사로 보인다"며 "국제사회가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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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지대서 김정은 편들기
다만 푸틴의 이날 핵우산 발언이 핵 보유와 관련한 정교한 개념에 근거했다기보다는 '북한은 핵 공격에 맞서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지녔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핵의 방어적 측면을 부각하는 차원에서 핵우산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물론 이 역시 북한의 불법적 핵 개발 논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우려스러운 발언"이라고 말했다.
푸틴이 이른바 '회색 지대'를 노려 핵우산을 공개 언급했다는 분석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푸틴이 러시아의 국제적인 지위를 고려할 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기는 부담스러운 만큼 대신 핵우산이라는 표현으로 NPT 체제를 시험해본 것일 수 있다"며 "이는 역으로 푸틴이 핵심 군사 기술 이전이나 평양 답방 등 김정은이 원하는 실질적 반대급부를 제공하기는 어려우니 대신 외교적 수사로 보답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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