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130만명 몰렸다…빵 사러 오픈런 뛰는 '맛있는 백화점'

최선을 2024. 3. 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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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위트 파크'에서 소금빵 맛집 '베통'의 직원이 1차 대기줄 마감 팻말을 설치하고 있다. 최선을 기자


13일 오전 10시 25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의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 앞에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와 함께 ‘오픈런’(영업 개시 전 대기) 인파가 가득했다. 백화점 오픈 5분 전이었지만, 이미 소금빵 맛집 ‘베통’에는 “1차 대기 줄 마감”이라는 팻말이 설치됐다. 간신히 줄을 섰다는 60대 조모씨는 “딸이 꼭 먹고 싶다고 해 아침부터 왔는데 이렇게 줄 서기가 치열한 줄 몰랐다”며 “나는 소금빵을, 딸은 딸기 케이크를 사는 게 미션”이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의 빵집으로 유명한 ‘밀레앙’과 케이크 브랜드 ‘쇼토’ 앞에도 긴 줄이 생겼다. 파이 맛집 ‘가리게트’에서 대기 번호 43번을 받은 오모(35)씨는 스위트 파크 방문을 위해 이날 제주도에서 당일치기로 서울에 왔다. 그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픈런을 했는데도 ‘초량온당’ 빵은 구매에 실패했다”며 “디저트를 구경한 뒤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모자와 가방을 쇼핑하고 저녁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아 ‘삐아프’ 초콜릿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남성들도 있었다.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위트 파크' 내 '쇼토'에서 판매 중인 조각 케이크들. 최선을 기자


디저트가 백화점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불황에 명품 소비가 줄어들자 백화점들이 식음료(F&B) 매장을 업그레이드하며 경쟁 중이다. 그중에서도 디저트는 가격대가 낮고 유행의 확산 속도가 빨라 고객 유인 효과가 크다. 우선 소비자 발길을 이끌고, 이후 추가 쇼핑을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박경민 기자


지난달 15일 문을 연 신세계 강남 스위트 파크에는 이날까지 누적 130만 명이 방문했다. 해외 유명 디저트들이 상륙했고, 전통 한과와 노포 빵집 등 ‘K-디저트’까지 다 모아 화제가 됐다. 5300㎡(약 1600평)의 거대한 공간을 43개 브랜드로 채웠다. 오픈 이후 강남점 디저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6% 증가했다. 신세계 강남점은 15년 만에 리뉴얼하는 식품관 중에서 스위트 파크를 가장 먼저 공개했다. 양정모 신세계백화점 F&B팀장은 “디저트는 다양한 수요가 있어 집객 요소가 강하고 화제성이 높아 첫 번째로 공개했다”며 “가격 접근성이 좋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강남점은 올해 안에 와인 전문관과 프리미엄 식당 등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달 1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에 고객들이 몰려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백화점에서 식품은 가격이 낮은 상품에 속하지만, 연관 구매율(다른 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다. 현대백화점 식품 구매고객의 연관 구매율은 2020년 61.7%에서 지난해 65.2%로 상승했다. 이들은 화장품, 영패션, 여성의류 등(연관 구매율 순)을 함께 샀다. 10명 중 6명 이상은 백화점에 먹거리를 사거나 외식하러 왔다가 화장품이나 옷도 산다는 뜻이다. 백화점이 필요한 물건만 사서 나가는 ‘목적형 소비 공간’에서 ‘체류형 공간’으로 변하면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더현대 서울에 용리단길 핫플 ‘테디뵈르 하우스’를 오픈하고 압구정본점엔 일본 시폰 케이크 브랜드 ‘마사비스’ 국내 1호점을 여는 등 디저트 맛집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중동점 식품관 리뉴얼을 앞두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마사비스’ 매장. 일본 도쿄의 시폰 케이크 브랜드로, 이곳에 국내 1호점을 냈다. 사진 현대백화점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내 '테디뵈르 하우스' 매장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도 스위트 파크 오픈 후 강남점 전체 매출이 30%가량 올랐다. 특히 20·30대가 즐겨 찾는 스포츠·아웃도어(72%), 뉴스트리트 패션(49%) 카테고리도 함께 신장했다. 스위트 파크 영향으로 MZ세대 고객 방문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백화점 역시 지난해 잠실점에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노티드 월드’를 선보여 각각 월평균 15만 명, 12만 명이 방문하는 핫플로 자리 잡았다. 두 매장 구매 고객의 50% 이상은 패션 등 다른 상품군에서도 추가 구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런던 베이글 뮤지엄 오픈 후 3개월간 같은 층(1층)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소비 침체와 해외여행 증가로 명품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백화점은 고객 수를 늘려 매출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6.5% 증가했지만 명품은 0.5% 증가에 그쳤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이어도 고객들이 발을 끊게 해선 안 되는 백화점들이 체류 효과가 큰 식품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소비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디저트 등 식품관이 고객을 다른 품목으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내 '노티드 월드' 매장에 고객이 몰려 있다. 사진 롯데백화점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런던 베이글 뮤지엄' 매장 모습. 사진 롯데백화점


백화점 내에서 식품 바이어의 위상도 달라졌다. 롯데백화점은 2022년 푸드 부문을 대표 직속으로 분리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F&B 전담 신입사원도 채용해 인력을 보강했다. 업계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의 꽃은 패션이었으나, 최근 식품이 ‘앵커 테넌트’(핵심 점포) 역할을 하며 식품 바이어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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