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전문가 최인철 교수 "10대 정신건강 빨간 불, SNS 때문" [인간다움을 묻다⓵]
‘I Travel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
올해 초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이 유튜브에 게시한 한국 여행기 영상의 제목이다. “한국이 높은 불안·우울·알코올중독·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21세기 최악의 정신건강 위기”라고 표현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의 말처럼 한국은 정말 우울하고 불행한 나라일까. 만약 그렇다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달 29일 서울대학교에서 15년째 행복을 연구하고 있는 최인철(57)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2010년 서울대에 행복연구센터를 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제8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은 2017년부터는 카카오와 산학협력을 통해 행복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매년 센터에서 발표하는 ‘대한민국 행복지도’는 이 측정치를 바탕으로 한다. 올해는 엔데믹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기 측정한 국민의 행복 수준이 반영됐다.
Q. 행복을 측정한다는 개념이 생소하다.
A “행복은 ‘잘 산다’는 건데, 막연한 개념이라 이제껏 측정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행복을 구성하는 것을 쪼개면 측정 가능하다. 행복의 요소는 개인마다 가중치가 다를 수 있지만, 행복을 느낀 경험 그 자체는 같기 때문이다. 담백하든 달콤하든 ‘맛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측정은 행복을 완성하는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 분석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Q. 코로나19를 겪으며 행복 측정치엔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A “2018~2019년에 비해 코로나19 기간에 행복 수준이 많이 떨어졌는데, 코로나19 끝물인 2022년부터 회복 추세가 있었다. 지난해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삶의 의미·만족도·스트레스 등 모든 문항에서 전 연령대가 회복을 보였는데, 회복이 안 된 연령대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10대다.”
Q. 유연할 것 같은 10대가 회복을 못하다니 놀랍다.
A “학자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환경이다. 두 가지 모순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파생되는 문제가 너무 많다. 물질주의가 강해지니 돈과 지위를 믿게 되고, 남들과 비교하며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도 짙어진다.”
최 교수는 “지금 10대가 겪고 있는 정신적 취약성을 제대로 다루고 예방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보면, 행복도가 대체로 ‘U 커브’ 형태로 나타난다. 50대 중반이 넘어가면 젊었을 때보다 행복해진다”고 했다. “점점 관점·시야가 넓어지고 죽음을 생각하고 불필요한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되니, 회복 탄성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10대는 다르다. 그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스스로 삶을 컨트롤(통제) 하기 어렵다. 젊을수록 회복이 더딘 이유”라면서 “특히, 유한한 시간을 SNS에 쓰면 그 시기에 해야 할 운동·놀이·관계 맺기 등 다양한 활동이 박탈당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10대가 그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Q.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A “행복의 불평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인문학은 근본적인 힘이 된다.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서 주체적인 생각을 하게끔 돕는다. 문화체육관광부 인문학 프로그램 등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취약층에게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 은퇴 후 여유가 생긴 고령층, 부유층 보다는 당장 처방전이 필요한 10~20대의 인문학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Q. 기업도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A “국가에서 기업과 학교로, 기업·학교에서 가정으로, 관계 단위가 좁혀질수록 개인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 성인은 회사에서, 청소년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좀 더 밀착해서 행복을 도울 수 있다. 보통 회사에서 건강 검진은 해주지만 정신 건강은 밀려나 있다. 정신과 생산성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회사가 인지하고, 번아웃 등 정신 건강을 측정해 관리해야 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Q.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성원의 행복을 챙기기 쉽지 않을 듯 한데.
A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가 직접 국민의 행복을 챙기기는 어렵지만, 기업이 그것을 하도록 때로는 장려하고 때로는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Q. 대한민국의 행복 수준이 궁금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에 취약한가.
A “UN에서 매년 발행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보통 10점 만점에서 5점 중후반대가 나온다. 150여개 나라 중 50위권 정도다. 순위 만으로 불행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측정값, 즉 절대 점수다. 역시 쪼개서 봐야 하는데 한국은 ‘만족도’를 측정하면 괜찮은 점수가 나오지만, ‘기분·정서’를 측정하면 점수가 확 떨어진다.”
Q. 장기적인 인생은 만족하지만, 당장의 행복감이 떨어진다는 뜻인가.
A “그렇다. 두 가지는 연결돼 있지만 분리된 개념이다. 화가 나 있거나 침울하거나 아니면 비장하거나, 일상에서 정서적 측면이 굉장히 취약한 것이다. 행복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운 것을 떠올리는데, 스트레스·갈등·고통을 줄이는 것도 동시에 필요하다.”
최 교수는 “한국 문화는 전통적으로 정신력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행복은 마음 만의 문제는 아니다”면서 “마음이 힘들 때 몸을 움직이고, 식습관·운동 등 몸을 잘 가꿔 정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등 이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행복은 정신 뿐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무조건 참고 긍정적인 생각 만으로 행복을 찾는 것은 ‘인간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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