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위기? 이젠 'K없는 한류' 온다"
[김병기 기자]
▲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김병기 |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하 진흥원, KOFICE) 원장의 분석이다. 최근 사회 일각에서 한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존재하지만, 한류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 원장은 "이제 K 없는 한류는 '비욘드 K' 즉 K를 넘어서야 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한류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월 23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진흥원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인 정 원장을 만났다. MBC에서 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시사교양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던 그는 2021년부터 진흥원 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한류 활성화를 위한 각종 활동을 해왔다.
▲ [이 사람, 10만인] “한류 1등 공신의 한명은 김대중 전 대통령”...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인터뷰 #한류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김병기 |
우선 정 원장은 "한류는 30년 전 동북아에서 시작되었지만 동남아, 중동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됐고, 그 사이 플랫폼은 지상파에서 유튜브, OTT, SNS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됐다"면서 플랫폼이 급속도로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한류가 지속가능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류의 인기 비결은 콘텐츠의 힘입니다.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서사의 매력과 주제의 보편성으로 세계적인 호소력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나 여타 국가에서 줄 수 없는 차별점이 있고, 한국 콘텐츠만의 세계관이 있는 것이죠."
정 원장은 이어 한류 콘텐츠 힘의 원천에 대해 "격변의 한국 현대사와 압축 성장에서 오는 한국의 사회적인 문제가 작품에 완성도 높게 구현되고 있고,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류의 선행조건이었다"라면서 "여기에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창·제작자들의 고뇌와 노력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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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의 한류가 가능했던 1등 공신은 누구일까? 정 원장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 문화산업정책의 비전과 전략을 세운 김대중 대통령"부터 꼽았다. 전체 예산의 1% 이상을 문화 부문에 쓸 수 있도록 설계했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 기조를 세웠기 때문이다. 또, 많은 우려와 반대 목소리에도 일본 문화를 개방했다. 그 조치로 인해 일본에서의 한류가 점화될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정 원장은 이어 "정책과 예산은 결국 창·제작자의 노력에 힘입어 콘텐츠로 나타난다"라면서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히트작의 대열은 '이태원 클라쓰', '사랑의 불시착'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영화 쪽에서는 2020년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큰 역할을 했고,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라면서 "양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모순을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게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의 BBC는 'TV콘텐츠 혁명의 새벽을 알린다'고 했고요. 스필버그 감독은 '오징어게임은 게임 체인저'라고 말했습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세계적으로 한류 콘텐츠 언급량이 30배 이상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당시 저는 몇몇 연구자와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죠."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영화뿐만 아니라 노래 쪽으로 이어졌다. 정 원장은 "BTS나 블랙핑크가 간판스타지만, 한류 점화 및 확산과 관련해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주목한다"라면서 "2012년 7월 15일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 올라 폭발적인 인기를 끌 때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브라질에 있었는데, 이 노래의 전 지구적 신드롬을 지구 반대편에서 직접 목격했다"라고 회고했다.
▲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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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은 "이 수치는 2023년 한국 전체 수출액 844조 원(무역협회 기준)의 2.3%에 해당하는 규모"라면서 "수출과 별개로 생산유발효과와 부가가치유발효과 등 한류의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도 도출하는데, 연간 약 40조 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한류의 시작은 1994년 하얼빈TV가 중국 지방 방송 100여 개와 연결해 사실상 전국적으로 방송한 트랜드라마 '질투'와 3년 뒤인 1997년 중국 CCTV에서 방영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다. 2003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와 2005년 동아시아에서 사랑을 받았던 '대장금' 등으로 이어지면서 30년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정 원장은 "민간이 주도하는 한류에는 창의성·적극성이 있지만, 일방주의·상업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라면서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공공 부문에서 해야 하는데, 진흥원은 그간 동반성장 디딤돌, 민관협력 해외사회공헌, 해외한류 커뮤니티 지원 등을 비롯해 생활문화 모꼬지, 아시아송페스티벌, 문화잇지오와 같은 사업으로 한류의 일방성과 상업성을 보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자평했다.
정 원장은 이 대목에서 정부의 예산 삭감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화제입니다. 한류가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쿠바의 한류는 2013년 '내조의 여왕'이 점화했습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고, 자생적인 한류 팬클럽이 만들어지고 한국어 붐이 일어났습니다. 진흥원도 한류커뮤니티 지원 사업으로 쿠바의 한류동호회를 지원하는데 올해는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게 안타깝습니다."
▲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우측)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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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반한류, 혐한류 현상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정 원장은 또 "한류의 수출 효과나 한류 수지 등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 "상품으로서의 한류가 과도하게 부각되면 현지의 경계나 저항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진흥원의 전신은 2003년에 설립된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이다. 한류가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시작되던 시기였다. 2018년 국제문화교류진흥법에 의해 문체부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진흥원은 각 국가와의 수교 기념행사 등 국제문화교류 사업을 진행해왔으며, 특히 한류 활성화를 위한 각종 활동을 해왔다.
한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 원장은 "한 조사 결과에서 한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를 물었더니 문화콘텐츠 산업과 유통 플랫폼에 대한 규제 완화, 콘텐츠 수출시장 다변화, R&D 지원·세제지원 확대 등의 순으로 나타난 바 있다"면서 "실제로 진흥원은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국제문화 전문 인력 양성 사업 등으로 우리 콘텐츠를 해외에서 많이 소비하고 수용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와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이날 인터뷰를 마치며 이같이 강조했다.
"K-콘텐츠를 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소프트파워 문화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지향에는 보수든 진보든 어떤 정부든 이견이 없습니다. 한류에는 이념이나 지역, 젠더, 세대 간 입장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류 역사 30년에는 1994년 이후의 보수, 진보 정권이 포함됩니다. 각종 정책과 사람, 콘텐츠가 집적된 것이 오늘날의 한류입니다. 한류는 대한민국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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