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위성정당 참여 유감... 양당 독점 더 강화될 것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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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우]
최근 수년간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퇴행'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권혁용 교수에 따르면 민주주의 퇴행이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주의 제도를 합법적으로 활용하여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 규범과 제도를 내부로부터 잠식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행정부 권력 증대', '야당 탄압', '선거 방해' 등의 특징을 갖는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운동 내 일부는 윤석열 정부가 자행하는 '민주주의 퇴행'을 근거로 정권심판 선거에 나서자고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과 일부 '진보'정당, 시민사회로 구성된 더불어민주연합도 반윤·여당심판을 핵심 공통기반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의 최대치 활용(탄핵까지도)을 위해 최대치 연합을 주장한다. 위성정당 논란에도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4년 전과 달리 위성정당을 정치연합이라 옹호해가며 심판에 온 힘을 모아야 할 정도로 비상한 상황이 도래한 걸까.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 퇴행의 주범인 것일까.
우선 행정부의 권력 증대 차원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는 의회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를 빈도 높게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조직법이 아니라 시행령을 개정해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행안부 경찰국을 설치하고, 수사준칙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복구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이미 민주화 이후 최다 건수(5회 9개 법률안)를 기록했다. 또한 야권 세력을 집요하게 '공산 전체주의'로 낙인찍거나, 독립적인 국가기구인 감사원을 활용하여 전 정부의 정책활동을 범죄화한다. 진보운동으로선 묵과할 수 없는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 퇴행적 특징이 현 정부에서만 목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는 논문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권력의 절제는커녕 소수파를 보호하기 위해 보장된 권력기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정치적 압박이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권력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희대 김윤철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로부터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선한 군주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의존성이 한층 강화된 듯한 양상을 보인다"고 평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백승아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
ⓒ 공동취재사진 |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두 정치세력은 공통의 방법론과 유사한 자원을 활용하여 민주주의 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의 통치 행태 외에도 21대 국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양당은 입법과정 중 '연성 가드레일'인 정치규범을 너무도 손쉽게 무너뜨렸다. 권한의 무제한적 활용은 쉽게 용인되었다. 법사위를 우회해 법안을 직회부하고, 위장탈당을 통해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으며, 회기 쪼개기를 통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한 것도 우리가 목격한 규범의 훼손이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제도를 개정한 것은 의회 구성의 룰을 일방이 정한 것으로 심각한 민주주의 퇴행의 사례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게임 규칙의 일방적 변경'을 민주주의 규범 파괴의 대표 유형이라고 말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후과를 겪고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이관후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의 의회정치가 제도적 측면에서는 일정한 발전을 이뤘지만 정치의 모든 것이 제도로 환원되면서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악화되는 역설이 발생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치문화나 정치행태에 의한 제도 형해화가 21대 국회 전반에 걸쳐 벌어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처한 곤경은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두 정치세력 모두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독재' 운운하며 심판을 위해 민주·진보의 힘을 모으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연합을 주장하는 이들은 '당파적 호전성', 즉 정치적 양극화와 더불어 극단적인 '우리 대 그들'이라는 단일 균열로 우리 정치·사회를 전쟁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는 보수세력과의 대결, 즉 반윤으로의 집결은 민주주의 퇴행에 맞서는 답이 아니라 민주주의 퇴행 그 자체다. 퇴행의 주범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다른 주범을 잡겠다고 같은 편에 서는 모습은 진보운동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주주의가 퇴행의 경로를 당장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강성 지지자들에 의해 포획된 당파적 정치인이 당의 주류를 형성한다. 더욱이 우리 정치는 강력한 대통령제와 약한 정당제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 강한 당파성과 그에 근거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러한 정치구조에 대한 해결책으로 비례대표제가 주목받았다. 사표 방지를 위해 중도 유권자들이 두 정치세력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고, 그렇게 형성된 제3의 힘이 적대적 당파성과 정서적 양극화도 감축시키리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현재 더불어민주연합의 한 축인 시민사회(정치개혁과 연합정치를 위한 시민회의)도 그런 이유에서 '정치개혁' 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고 뒷문으로 위성정당을 불러옴으로써 완전히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 시민회의’(연합정치 시민회의) 발족 기자회견이 1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시민사회단체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 권우성 |
크고 강하다는 건 사회적 기반과 체계적인 연계를 가지며 수직적·수평적 책임성을 갖추고 여론에 휩쓸리지 않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이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어떠한 '선진적인' 선거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제효과를 발휘하기 힘들고 몇몇 정당에 의해 형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비례대표제는 사회적 타협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에서는 잘 작동하지만, 정당이 약한 이탈리아나 남미에서는 정당 난립에 의해 국정 마비나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연합정치 시민회의'의 주장이 정반대 효과를 낳았다는 건, 이러한 논리에서 그들이 제도의 현상유지에만 초점을 두고 반윤이라는 목표를 위해 위성정당을 용인함으로써 기존의 정당구조를 더 약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즉 소수정당들의 민주당 의존성, 정치 양극화와 양당 독점력은 더 강화될 것이다. 소수정당은 의석 획득이라는 생살여탈권을 민주당에게 내어주고 질식 아니면 종속이라는 양자택일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제도를 구한다는 미명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내다 버린 것이다.
▲ 김건우 / 참여연대 정책팀장 |
ⓒ 김건우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건우는 참여연대 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의제점검과 조정, 논의와 토론조직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의 성찰과 혁신, 사회변동과 민주주의 퇴행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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