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대정신과 영적 전쟁(1)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1. 팩트: 국론 양극화와 이념 전쟁
현대 사회에 양극화(polarization)는 전방위적으로 관찰된다. 고도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더욱 불거진 양극화는 빈부 격차의 경제 양극화뿐 아니라 세대, 남녀, 이념, 교육을 비롯해 삶의 질까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정권 쟁취라는 운명에 사는 정치권에서 만들어내는 양극화는 때로 표심을 얻는 무기가 된다. 이에 양극화는 여야의 포퓰리즘 공방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위한 숭고한 목표를 지향하기보다 종종 유권자 갈라치기, 내로남불 전술, 흑색 선전선동 등으로 갈등을 부채질하는 현상도 생긴다.
우리나라는 남북한 분단 이후 이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의 공산사회주의 체제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이 땅에서 세계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념의 전선이 된 지 오래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념의 양극화로 인하여 국론 분열과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적 고질병인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된 국론으로 상생 협치의 정치를 한다면 머지않아 강대국의 위치에 오를 희망이 보인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근본적 원인은 단연 국론 분열이다.
이 현상을 깊이 고찰하다 보면 논쟁의 핵심이 외부보다 내부에 더 심층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현재 드러나는 국론 분열은 ‘너와 나’의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대동(大同)의 통합을 가로막는 것은 시대정신(Zeitgeist)의 부정적 영향 때문이며 이 사상의 원류에는 영적 세력의 교묘한 개입과 공격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과 영적 전쟁’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무시하고 지날 수 없는 과제라 하겠다.
2.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현재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회와 개인의 삶의 방향이 또한 달라진다. 현대인들은 20세기 들어오면서 이미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며 인간성의 종말을 보았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와 해방,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고난의 시간을 체험했다.
인류는 그 고통의 후유증으로 부조리한 실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 상처를 안고 드러난 실존주의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신부재(Absence of God) 사상과 같은 현대 신학이, “신은 죽었다”(Death of God, 19세기 중반)라는 니체적 절규가 표면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실존 탐색은 본질을 향하여 의혹의 항해를 계속했는데 그때 발견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 사조(思潮)는 모더니즘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존 전통과 관념을 부정하는 탈가부장, 탈중심적 사상으로 구체화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주자로 추앙받는 니체는 ‘망치’(hammer)로 자신의 사상을 비유했는데, 그에 의하면 과거의 철학을 뒤집고 부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망치는 플라톤의 전통을 부수는 것이다.’ 이 해체주의적 작업은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삶과 문화 현장 곳곳에서 논쟁을 일으키며 전통과 유산에 대한 도전 및 격변을 시도하는 중이다. 시대정신이 국론 분열을 야기시키는 제1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께서 물으신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마 11:16) 우리의 대답은 어떠한가. 주께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시는데 현 세대의 대답은 겉으로는 현란하지만 내면은 궁색하다. 기독교 안에서도 말씀은 풍성하지만 ‘능력’이 희미해진다. 끝내는 뷰카(VUCA)라는 신조어 뒤에 숨어버렸다. 이 단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첫 글자로 현시대의 속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대정신의 다른 표현이라 하겠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이 살아가는 현대는 이렇게 풍랑이는 바다 위에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배와 다를 바 없다. 주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Quo Vadis, Domine?) 어떻게 하여 우리들이 이 미망(迷妄)의 바다까지 오게 되었는지요. 광대한 우주에서 미아(Lost in Space)가 된 상황은 아닌지요.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시 44:26)
3. 시대정신이라는 파도타기
뷰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던(Modernity) 시대를 지나오면서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타협한 결과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불러들인 결과이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변하지 않았던 역사의 한 현상이다. 20세기 초 실존주의자들도 예감하고 있던 현상이었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9) 인류는 성찰과 반성,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죄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이를 개념적으로 ‘시대정신’(Zeitgeist)이라 부른다. 시대정신은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각 시대에서 주류를 형성하며 정치 사회 역사 일상 등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구사하는 사상이나 문화를 말한다. 모던 시대의 시대정신이 합리주의였다면 19세기는 열강의 제국주의, 20세기는 이데올로기라 하겠다. 이로써 세계는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사회주의냐로 분리, 대립하는 형국이 되었으며 국제 사회에도 국론 분열과 사회적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는 속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 시대정신은 여러 다른 용어나 유사어로 옷을 갈아입고 동시대인들에게 파고들었다. 예를 들면 -주의(-ism), 담론(Discourse), 사상(Thought), 사조(Trend), 세계관(Weltanschauung), 생각의 유행(Mode), 패러다임,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등 다양한 표현 속에 작동해온 시대정신은, 거꾸로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사상가 철학가 작가 예술가 정치가 전문학자 등에 의해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4. 시대정신의 양면성
시대정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의 시대정신은 시대를 창조적, 건설적,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간다. 영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 프랑스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류 역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 역시 유럽을 넘어 인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의 독립혁명은 노예해방과 더불어 세계사에 인간의 평등과 권리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정신의 긍정, 부정의 모습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예로 든다면 더욱 확연해진다. 모더니즘의 경우 긍정적인 점은 중세 암흑기,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인간의 이성’을 발견하고 세상을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정리,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어둠 속에 갇혀있던 문명을 개화(開化)시킨 공로는 크다. 그러나 수백 년 뒤 모더니즘의 결과는 이성을 도구화하고 목적을 수단화하는 길로 나아간다. 그 결과 인간 자체가 이성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모더니즘이 가져온 부정적 현상이라 하겠다.
그 반동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발동하게 되었다. 긍정적 현상으로 보자면 모더니즘의 폐단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 즉 탈모더니즘의 핵심 전략으로 탈중심, 탈전통, 탈가부장적 형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모더니즘의 구습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 현상도 없지 않았으니 과도한 개인주의와 감성주의, 반지성주의, 욕망지상주의 등은 현재까지 시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고려시대에 불교, 조선시대에 유교가 대표적이며 당시 지배적인 시대정신이었다, 조선 중기에 일어난 실학사상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좋은 기회였다. 비록 당파 싸움의 피해 속에서 안타깝게 미완의 개혁으로 남게 되었으나 유교적 봉건 사회를 뒤흔든 개혁 사상이라 하겠다.
문제는 시대정신의 부정적 현상이 그 세를 떨치며 사회를 파고들 때이다. 일반 상식과 교양을 뛰어넘어 시대를 흔들고 파괴하는 사상과 운동(Movement)은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시대정신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그 심층 내부에 죄악의 씨앗을 갖고 있기에 선악의 경계를 넘어설 때 영적 전쟁의 전선이 형성된다. 여기서부터 사탄에게 틈입할 빌미를 제공하고 그들의 침략이 현실화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5. 영적 전쟁은 현재 진행형!
그리하여 영적 전쟁은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시대정신으로 인한 사회 상황이 이러 하건대, 영적 전쟁을 언급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전쟁이라는 용어 때문이다. 전쟁은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용어로, 전쟁을 반길 사람은 없다(오래전 니체가 전쟁은 인류의 폐습을 정화(淨化)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여 전쟁을 긍정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내 인생을 역전시킬 기회’라고 반긴 것은 특이한 경우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전쟁을 운운한다는 것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로 비추기에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는 기피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영적 전쟁의 경우는 다르다. 현상과 팩트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영적 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영적 전쟁(Spiritual War)은 있다!
영적 전쟁은 먼저 실존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은혜와 죄 사이에 있는 인간은 끊임없는 실존의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인간은 은혜와 죄의 경계에 위치한 경계인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를 명확히 지시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 25)
다음으로 영적 전쟁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사탄의 미혹 사이에서 벌어진다. 심각한 전쟁 상황이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적그리스도(요일 2:18)로서 보이지 않게 활동한다. 그래서 ‘사탄은 없다’는 사상이 시대정신에 만연해 있다. 파울 쉬츠에 따르면 사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므로 존재한다고 한다(참고 : 독일 나치즘에 저항한 고백교회 목사, 사탄의 자기부정, Selbst-leugnung des Satans).
사도들은 경고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이러한 권고에도 인간들은 둘 사이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영혼 안의 갈등을 넘어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 처절한 전선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영적 전쟁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된다. 즉 개인에서 가정으로, 그리고 사회(학교 직장 기타기관들)와 국가, 국제 영역에서도 영적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사회 구조는 서로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기에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마치 생물의 유기체적 순환구조와 같다. 영적 전쟁의 전선은 한 곳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양극화로 인한 갈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적 전쟁의 전선은 개인과 가정 수준의 국부적 전선에서 사회(학교, 직장, 기타 기관들)와 국가, 국제 영역으로 확산된다. 현대의 영적 전쟁은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총체적 전선으로 확장돼 있다. 전선이 특정 지역에 따로 국한되지 않고 지구촌 모든 생활, 문화권 안에서 펼쳐진 상태이다. 따라서 영적 전쟁은 이제 총력전 양상을 띤다. 이 전쟁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 완전히 끝날 것이다.
6. 오직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방법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곧 은혜와 진리에 기초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 24:6) 때와 상황에 맞는 전략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시편 기자들은 찬양을 통해 승리를 감사한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시 144:1)
주 예수께서 절대 권위로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인증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사도들도 영적 승리를 확신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고후 2:14a)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둘째, 믿음의 백성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ecclesia)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믿음 안에 ‘남은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계시므로 모든 상황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셋째,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이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무장과 같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우리가 치러야 하는 영적 전쟁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로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삼상 17:47) 육신이 약하여 잠들지 않도록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딤전 4:5) 가운데 거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순종과 충성의 제자도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할 때 시대정신으로 미혹하는 세상의 영을 이기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게 되리라.
7. 언약에 굳게 서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유효한 삶의 근거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나라와 백성을 일으키는 영적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국론 분열이나 극심한 정쟁 다툼, 교회의 신뢰도 하락, 기독교 불신시대, 가나안 교인 증가, 다음세대 감소라는 부정적 현상을 능히 극복하고 복음의 대한민국, 복음의 남북통일, 나아가 세계를 위한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대한민국으로 변혁되리라 믿는다. 오직 주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
추태화 이레문화연구소 소장은 전 안양대(기독교문화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독일 뮌헨대(석사)와 아우그스부르크대(Dr.Phil.)에서 공부했습니다. 저서로는 ‘권력과 신앙 :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문화의 미로에서 길을 찾다’ 등 14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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