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보완수사권 강화해놓고, 20억 배임 혐의 제대로 조사 안 했다"

구영식 2024. 3.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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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지방국세청장, 수해 건물 공사비 부풀리기 고소...경찰·검찰도 무혐의 처분

[구영식 기자]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 뒷 건물은 서울고등검찰청(서울고검).
ⓒ 권우성
"고소인 소환 조사도 안하고 무혐의 때리는 게 정상적인 사법시스템인가? 저처럼 고위공직자 출신도 이렇게 억울한데 일반사람들은 어떻겠나?"

오랫동안 국세청에서 조사 업무를 했던 전직 지방국세청장 출신 A씨는 지난 2월 19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K빌딩'의 관리위원장과 빌딩 수해복구공사 업체의 20억 원대 배임 의혹(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을 고소했지만 경찰에 이어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생애 첫 고소사건이 이렇게 처리되자 검찰의 수사방식에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검찰은 고소내용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 '수사'를 해야 하는데, 고소인도 소환하지 않고 자료검토만 한 뒤에 무혐의를 통보했다. 검사 출신 형사소송법 전문가도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것은 수사가 아니다'고 하더라."

수재보험금 83억 원 중 24억 원가량 '배임 혐의' 주장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인해 사망사건이 일어났던 강남의 K빌딩 지하3층.
ⓒ 오마이뉴스
 
수도권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인명피해가 이어졌었던 2022년 8월 8일. 서울 서초구 소재 K빌딩 지하주차장에서도 한 남성이 폭우로 인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지하주차장 2층에서 자신의 차량을 확인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사흘 만에 지하주차장 3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K빌딩은 지하 5층부터 지하 2층 바닥까지 물에 잠겨서 차량 70대가 침수되고, 기계시설 등이 파손됐다.

K빌딩은 지하주차장 입구와 건물 주변에 차수막(차수문)을 설치해 운영해왔다. 빌딩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강남 지역 일대가 상습침수구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수막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사고 당일 차수막이 떠내려갔고, 이로 인해 사망과 침수 등의 심각한 피해기 발생했다. 이후 K빌딩은 수재보험금(수해복구지원금) 83억 원을 받았다.  

빌딩 수해복구공사에는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S사 등 8개 업체가 참여했고, 이들에게는 총 60억 원가량의 공사비가 집행됐다.
빌딩 구분소유자(區分所有者)였던 A씨는 가장 큰 공사비가 집행된 S사에 대한 제보를 받아 K빌딩과 S사의 거래내역을 바탕으로 배임 혐의를 파악했다.

세무와 공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세금계산서와 공사내역서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S사에 집행된 공사비는 32억 원이었는데, 재료비와 노무비, 이윤 등을 포함해 실제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8억 원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케이블, 수배전반 등의 공사에 들어간 공사비와 노무비 부풀리기 등을 통해 총 24억 원가량의 배임을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A씨와 또다른 전직 지방국세청장 출신 B씨(해당빌딩 구분소유자)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사고 당일 K빌딩 관리위원장이었던 C씨(D건설 대표)와 빌딩 수해복구공사 업체 S사 대표 D씨를 '20억 원대 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2023년 8월 14일).

A씨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서 고소하게 된 것이다"라며 "내가 직접 고소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하주차장) 사망자에게는 한 푼의 위로금도 지급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경찰도 검찰도 20억 원대 배임 의혹 '무혐의 처분'
 
 경찰에 이어 검찰도 강남의 K빌딩을 둘러싼 20억 원대 배임혐의 사건에 대해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 오마이뉴스
 
2023년 9월 11일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약 한 달 반 동안 수사를 진행한 끝에 다음달인 2023년 10월 31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씨가 고소장을 통해 제기한 20억 원대의 배임,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에 따르면, 경찰은 핵심 혐의인 20억 원대의 배임와 관련해 "D씨가 공사금액을 과다하게 부풀렸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C씨와 D씨가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고 D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라고 판단했다.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공사금액을 책정해 정상적으로 시공했다"라는 수해복구공사 업체 대표 D씨의 진술을 "배척하기 어렵다"라며 그대로 수용했다. 

이에 A씨는 20억 원대 배임 의혹에 대한 직접증거를 보완해 지난 1월 검찰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다. "배임금액 24억 원 중 10억 원은 제출한 직접증거만으로도 입증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도 무혐의('불기소') 처분했다(2월 16일). 고소인에 대한 소환조사도 없이 이의신청 한달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이의신청서 내용을 토대로 불송치 사건기록 및 추가 송부서 등을 면밀히 검토하였으나 사법경찰관의 불송치 결정을 변경할 만한 이유나 자료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억 원대 배임 의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2023년 4월에 변경된 공사금액은 25억 9600만 원이고, D씨가 제출한 공사재역서 및 관련 증빙자료에 따르면 S사에서 강남빌딩 수해복구공사를 하면서 지출한 비용은 22억7000만 원 상당이다. 그 차액은 3억 2600만 원 상당이고, 이는 계약금액의 12% 수준으로 공사업체인 S사의 수익금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검찰은 "S사의 지출내역은 자재납품 관련 거래처와의 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 계약서, 일용직 근로자 임금대장, 건강보험 및 연금보험 납부내역, 장비사용료에 대한 세금계산서 등 근거자료가 충분한 바, 고소인의 주장대로 공사대금이 부당하게 부풀려졌다거나 피의자들이 이를 공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고소인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
 
 전직 지방국세청장인 A씨가 강남의 K빌딩 20억 원대 배임혐의 관련해서 검찰에 제출한 증거자료들 중 일부.
ⓒ 오마이뉴스
 
경찰에 이어 검찰마저도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A씨와 B씨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하는 한편, 검찰총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항고이유서에서 "세무서에 제출하지 않은 거래명세서를 객관적인 증빙으로 본 것은 세법의 기본도 모르고 내린 부실수사이고, 타사업장의 노무비 지급 관련 증빙을 강남빌딩건이라고 인정한 것은 증거판단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특히 검찰의 수사행태를 이렇게 비판했다. 

"배임혐의 금액 약 24억 원 중 10억 원은 직접자료를 확보해 제출해서 직접기소가 가능하고, 나머지 14억 원은 수사를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소인에 대한 단 한차례의 조사도 없이 20일 만에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지방검찰청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고소인의 증거자료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내린 전형적인 부실수사의 결과이고, 피고인에게 면죄부를 준 처분이다." 

이들은 항소이유서에서도 "검찰의 수사준칙이 2023년 11월 1일부로 개정되면서 고소사건에 대한 이의신청시에는 검사가 직접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경찰에 보내어 수사지휘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믿었다"라며 "그런데 검찰은 경찰과 다를 줄 알았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라고 토로했다. 

"무혐의 처분 이유가 '증거불충분'이라는 다섯 글자로 되어 있는데, 경찰의 수사종결 후에 명백한 범죄의 증거가 추가로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증거들에 대한 담당검사의 의견이 어떤지, 왜 증거가 불충분한다고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고, 심지어 증거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을 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이 시행령(수사준칙) 개정 등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인 소환조사나 직접증거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 등을 전혀 하지 않고 자료검토만으로 20억 원대의 배임혐의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수사준칙을 개정하면서까지 검찰의 직접수사권한을 확대한 것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법무부' 검찰 보완수사권 확대했지만... 
 
 2023년 7월 26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2023년 10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이 일부 개정됐다(11월 1일부터 시행). 개정된 수사준칙에는 ▲ 수사기관의 고소·고발장 접수 의무화 ▲ 검사의 보완수사요구 및 재수사요청에 대한 경찰의 수사기한 설정(각 3개월) ▲ 검사의 보완수사요구 시한 설정(1개월) ▲ 보완수사 경찰 전담원칙 폐지 및 검·경의 보완수사 분담에 관한 기준 마련 ▲ 재수사 사건의 처리절차 개선 등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경찰 불송치사건에 대한 검사의 재수사 요청이 이행되지 않으면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를 종결하고,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는 한 달 안에 하며, 경찰은 검찰의 보완수사와 재수사 요구를 3개월 안에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고소·고발장을 의무적으로 접수해야 하고, 접수한 사건은 3개월 안에 수사해 결론을 내야 한다. 당시 법무부는 수사준칙 개정 이유에 대해 "2021년 개정 수사준칙 등 시행 이후 일부 수사기관의 고소 고발장 접수 거부, 수사기관 사이의 '핑퐁식 사건 떠넘기기' 등으로 수사지연과 부실수사가 만연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 1월 검경수사권 조정(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인해 원칙적으로 경찰이 전담해오던 보완수사를 사안에 따라 검사도 맡을 수 있게 된 점이 윤석열 정부에서 개정한 수사준칙의 핵심이다. 즉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제한하고, 검찰의 재수사권한을 확대·강화한 것이다.

30여 년 동안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업무를 해왔던 한 수사전문가는 "필요한 수사의 정도, 수사의 적합성, 수사기간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해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이번 (개정된) 수사준칙을 통해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 역할을 강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확대·강화했는데, 검찰이 20억 원대 배임 의혹 사건에 대해 고소인 소환조사나 추가증거의 사실여부 확인을 위한 수사 등을 진행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한 것은 수사준칙 개정안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수사를 보완하기 위해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확대·강화했는데 오히려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라는 것이다. 

검찰 재직 시절 '특수통 검사'로 평가받았던 한 법조계 인사는 "고소인이 이의신청을 해서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한다"라며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고소인 소환조사도 안 하고, 보완수사를 통해 추가 제출 증거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수사준칙이 검찰에 부여한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 전직 경찰 고위간부는 "고소인이 검찰의 수사방식에 항의할 수는 있지만, 검찰이 고소인을 소환할지 말지는 수사기관의 재량권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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