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비판' 오스카 수상소감에 유대인들 반발
[윤현 기자]
▲ 영화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가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한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 논란을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
ⓒ 가디언 |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을 비판한 유대인 영국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의 수상 소감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미국 홀로코스트생존자재단(HSF)은 12일(현지시각) 데이비드 섀스터 회장 명의로 발표한 '조너선 글레이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글레이저 감독의 소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섀스터 회장은 "나는 아우슈비츠 지옥에서 3년 가까이, 부헨발트 지옥에서 1년 가까이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나는 당신이 아카데미 시상식 연단에서 무고한 이스라엘인에 대한 하마스의 광적이고 야만적인 잔인함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어렵지만 필요한 정당방위를 동일시하는 것을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봤다"라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한 측근은 글레이저 감독에 대해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최악의 자기혐오 유대인"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유대인 감독이 홀로코스트 영화로 상 받아놓고..."
앞서 글레이저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지휘관인 독일군 장교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보여준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지난 10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그는 트로피를 받으며 "우리는 지금 그들의 유대인성(이스라엘 민족성)과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에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영화는 비인간화(dehumanisation)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희생자이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이든 모두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섀스터 회장은 "당신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점령'은 홀로코스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며 "유대인의 존재와 이스라엘 땅에서 살 권리는 홀로코스트보다 수백 년 앞선 것으로, 오늘날의 정치 및 지리적 상황은 유대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과거 아랍 지도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반박했다.
이어 "당신은 유대인이고,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라며 "하지만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150만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수치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유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국가의 창설과 존재, 생존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점령'과 동일하다면 당신은 분명 그 영화를 만들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도 "글레이저 감독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라며 "그는 쇼아(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를 폄하하고 가장 극악한 테러를 변명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조너선 그린블랫 이사는 별도의 글에서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로 상을 받은 사람이 홀로코스트를 축소하려는 것은 너무 실망스럽다"라고 강조했다.
▲ 2024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화상을 수상한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
ⓒ A24 |
반면에 글레이저 감독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퇴역 군인 단체인 '침묵을 깬다(Breaking the Silence)'는 "글레이저 감독의 발언은 유대인 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점점 더 많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유대인 단체 '지금이 아니면(IfNotNow)'도 "글레이저 감독의 발언은 가혹했지만, 공평하고 균형 잡혔다"라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반유대주의 등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공동 설립자 시몬 짐머맨은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의 공포를 무시하기로 한 사람들에 관한 오싹한 영화"라며 "따라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려는 사람들이 패배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최근 영화 시상식에서 일부 수상자들이 소감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하면서 논란이 되자 독일 베를린영화제는 수상 소감에서 정치적 발언에 대한 규정 마련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의 유대인 매체 <쥬이시텔레그래픽에이전시>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둘러싼 유대인 사회의 내부 분열은 이례적 현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 홀로코스트를 해석하려는 물결 속에서 글레이저 감독의 메시지는 유대인이 역사상 가장 큰 집단학살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려는 사람들과 유대인도 어떤 상황에서는 집단학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실존적인 불화로 이어졌다"라고 짚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진보 성향의 랍비(유대교 율법학자) 마이크 로스바움은 이번 논란에 대해 "글레이저 감독이 말한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한 척하는 사람들 중 누가 더 실망스러울까"라는 말로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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