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대신 햄으로…저소득층 엥겔지수 하락의 역설

정진호 2024. 3. 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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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의 식재료 구매 패턴이 바뀌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신선식품 대신 가공식품을 소비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고물가 충격을 저소득층이 많이 받으면서 소득에 따른 먹거리 불평등이 커졌다는 풀이가 나온다.


고물가에도 1분위 엥겔지수 하락


13일 통계청 가계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는 식료품‧비주류음료 구매에 월평균 25만9000원을 썼다. 전년(26만원)보다 소폭 감소했다. 전체 소비지출(127만1000원)에서 식료품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엥겔지수는 20.3을 기록했다. 1분위 가구의 엥겔지수는 전년(21.4)보다 감소했다.

통상 엥겔지수가 낮을수록 필수 품목인 식비를 제외한 다른 곳에 지출이 많다는 의미로, 가계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지난해 저소득층의 엥겔지수 하락엔 가공식품 비중이 높아졌다는 특수성이 있다. 소득은 사실상 제자리인데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값싼 먹거리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주원 기자

가공식품 소비 늘려…먹거리도 불평등


세부적으로 보면 1분위의 육류와 신선수산, 유제품·알 지출이 일제히 감소했다. 특히 생선류‧조개류 등 신선수산 지출은 1년 전보다 6.5% 줄었다. 반면 육류 가공품, 기타수산 가공품에 대한 지출은 각각 8.9%, 8.7%씩 늘었다. 예컨대 카레에 고기 대신 햄을 넣는 식으로 신선식품 소비는 줄이고, 가공식품 지출을 늘렸다는 의미다.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5분위(상위 20%)는 지난해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로 전년보다 1.1%(6000원) 많은 57만4000원을 썼다. 1분위 가구에선 감소했던 육류(0.6%)와 유제품·알(3.5%) 지출이 증가했다.


2년째 인플레…임금보다 물가 더 올라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소득 증가세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1년 10월(3.2%) 물가상승률이 2012년 2월 이후 처음으로 3%를 넘긴 이후 지난달(3.1%)까지도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11.59로 2년 전인 2021년(102.5)보다 8.9% 상승했다. 이 기간 가계가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인 처분가능소득은 378만3000원에서 404만4000원으로 6.9%(26만1000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실질적으론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가 오르면 저소득층 위주로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게 일반적인데 되레 낮아졌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임금이 그만큼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고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건 모두 줄이고 식재료까지 저가 식품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과 등 과일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는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신선식품 물가 특히 더 올랐다


지난달 과일 물가는 1년 전보다 40.6% 오르면서 32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채소 물가도 같은 기간 12.2% 오르는 등 신선식품 위주로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특히 파(50.1%), 토마토(56.3%), 사과(71%), 귤(78.1%) 등 식탁에 자주 오르는 과일‧채소류 가격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반면 가공식품 가격은 1년 전보다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라면(-4.8%), 국수(-1.2%), 소시지(-1.5%) 등의 가격은 내려가기도 했다. 신선식품의 대체재로 가공식품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주원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농식품 소비 통계 분석’에 따르면 소득 하위 25% 가구는 하루 평균 135.9g의 과일을 먹었는데, 소득 상위 25%는 206.2g으로 1.5배 차이가 났다. 채소류 역시 고소득층이 더 많은 양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소득에 따른 영양 격차는 고물가로 인해 더 크게 벌어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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