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 보냈더니 폭동에 탈북…'김정은 딜레마' 푸틴이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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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노예 노동'…불만 폭발
이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민심 이반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중국·러시아 등에 흩어진 북한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된 탓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장기 체류한 경우가 대다수다. 수년간 인력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버는 돈 대부분을 당국에 상납하다 보니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에는 중국 지린성에서 2000여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에 반발하며 나흘 동안 봉제·수산물 가공 공장을 점거하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민인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으로부터 제기됐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노동자들에게 인질로 잡혔던 관리직 대표는 폭행당한 끝에 결국 사망했다는 보도(일본 요미우리, 지난달 17일)까지 나왔다. 이어 지난달 중국 단둥에서도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며 출근을 거부했다고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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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러시아의 경우 중국과 비교해 북한 노동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일터 안팎을 오갈 수 있다곤 해도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탈북민을 돕다 2013년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한 선교사는 "러시아 하산,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모스크바 등 전역에 북한 노동자들이 흩어져있다"며 "이들 대부분이 번 돈의 75%는 당국에 무조건 바쳐야 하는 상황인데,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돈을 가져다주려 하다 보니 자신은 1년에 100달러 정도만 쓰며 몹시 어렵게 생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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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된 해외노동자
특히 현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면서 외부 문물을 접하다 보니 북한 체제의 모순을 자연히 깨닫고 탈북을 시도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 이처럼 북한 정권의 핵심 돈줄로 역할 하던 해외 노동자가 예상치 못한 일탈 행위로 체제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상황에 처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심도 그만큼 깊어졌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수년간 해외 생활을 한 뒤 돌아온 노동자들이 일반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전하는 창구가 된다는 점도 북한 정권에겐 부담이다.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지난달 20일 보고서에서 "북한 해외 노동자의 집단 파업 사태는 '북한판 노동운동'의 태동"이라고 관측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해외 체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상 교육을 강화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해 4월 중앙일보가 입수한 사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숙소에서 김씨 일가 우상화 영상물을 시청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제 위기에 직면한 북한으로선 제재로 각종 외화벌이가 틀어막힌 와중에 우회로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는 노동자의 해외 파견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낙후한 극동 지역을 개발하고 더 길게는 종전 이후 러시아 측의 재건을 돕기 위해 노동자를 대거 파견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 국적 선교사 구속이 이런 김정은의 딜레마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북한 해외 노동자의 일탈 신호가 감지되자 러시아와 중국 등 우방국의 사법 당국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다. 실제 러시아가 탈북민 지원에 관여하던 한국인에게 최대 징역 20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간첩 혐의를 적용한 건 그 자체로 경고 메시지로 볼 여지가 크다.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소식통은 "한인 선교사가 모스크바에 끌려간 건 처음이라 혹시라도 법에 걸릴까봐 다들 몸을 낮추고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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