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치 때문에... 조직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일우의 지방의회에 대한 소소한 생각(아래 '이지소')>은 8년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겪은 필자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이지소'에는 필자의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에이원북스, 2022)」를 수정·보완하여 기초의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 지방의회를 좋게 바꾸고 싶다면 우선 지방의회를 오래 자세히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이일우 기자]
"전문위원님,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를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국장님, 의장님과 운영위원장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아니, 정말로 그렇게 할 거예요?"
"네..."
휴대전화기 너머 의회 관계자 S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2019년 12월 말 OO구의회가 임시청사에서 신청사로 이사하던 때였다. 의회 신청사의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가 잘못됐다며 두 번이나 전화를 건 S의 요청을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일을 저지른 것이다. 6급 별정직 전문위원이었던 필자는 왜 상관의 좌석 재배치 요구를 거절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내 행동은 '이불킥'을 할 만했다. 위법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칠만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이 일이 있고 3개월쯤 지나 직장을 다른 구의회로 옮겼다. 이직하게 된 구의회 전문위원이 5급이라 승진의 의미가 컸지만 소위 '사내정치(社內政治)'에 서툴렀다는 자책도 적지 않았다.
책상 배치의 정치학
그렇다면 나는 왜 좌석 배치를 관행대로 하지 않았을까? 새롭게 입주할 의회 신청사 3층에는 전문위원실이 별도로 조성됐다. 기존 청사 전문위원실은 의회사무국 사무실과 나란히 있어 의원보다 사무국 직원과 훨씬 자주 마주치는 동선이었다.
신청사에서는 의회사무국 사무실이 1층에 있고 전문위원실은 의원실과 같은 층인 3층에 있다. 신청사 입주 며칠 전 임기제인 동료 직원과 전문위원실을 둘러보던 나는 책상을 어떻게 배치할지 가장 먼저 고민됐다.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는 전문위원실 구성원들이 협의하면 될 뿐이지 윗선의 결재를 받을 사항은 아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이니까.
당시 전문위원실에는 5급 행정직 전문위원과 임기제 전문위원이 모두 공석이었으므로 구성원은 6급 별정직 전문위원인 나와 6급 임기제 입법지원관, 7급 행정직 주임 2명이 전부였다. 신청사 입주 시점이 2019년 12월 말이고 2020년 1월 초중순이면 공무원 정기 인사발령에 의해 구청에서 구의회 사무국으로 5급 행정직 전문위원이 올 예정이었으며, 5급 임기제 전문위원은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관행대로 직급이 가장 높은 5급 전문위원 2명의 좌석을 출입구에서 가장 멀게 배치하고, 차례차례 나와 임기제 입법지원관의 좌석을 둘 것인가 아니면 '의회만의 기준'으로 좌석을 새롭게 배치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여기에서 '의회만의 기준'이란 구청이 아니라 의회에서 채용돼 오래 근무한 직원을 우대한다는 뜻이다. 즉 의회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고 의원들의 인정을 많이 받았던 내가 가장 안쪽에 앉고 그다음 좌석부터 차례대로 5급 행정직 전문위원, 5급 임기제 전문위원, 6급 임기제 입법지원관 순으로 앉는 것이었다. S가 발끈했던 이유다. 6급이 감히 가장 상석에 앉는 셈이니까.
▲ 서대문구의회 신청사 준공 직후 전문위원실 출입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
ⓒ 이일우 |
하지만 이 좌석 배치는 필자가 다른 구의회로 이직하자마자 고참인 5급 행정직 전문위원이 가장 안쪽 책상에 앉는 식으로 즉시 원상복귀됐다. 미움받을 용기까진 아니더라도 17년의 임기제 공무원 경력 중에 처음으로 해본 필자의 '또라이짓'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인사권이 의장에게 주어진 최근에는 덜하겠지만 의회사무기구는 수십 년 동안 본청 산하에 있는 사업소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인사권자인 시장·군수·구청장의 눈에 자주 띄어야 승진 가능성이 큰데 의회사무국(과)으로 발령받는다는 것은 조직에서 승진과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기관장의 눈 밖에 나서 승진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육아, 자기계발, 퇴직 준비 등으로 개인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행정직 공무원에게 기초의회 사무기구는 잠시 쉬었다 가는 조직에 불과했고 '본격적인 일'은 나중에 집행기관으로 복귀해서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기초의회 사무기구는 쉬러 가는 곳?
지난 7년 동안 기초의회에서 행정직 전문위원 11명과 근무했다. 그런데 그들은 주로 퇴직 준비라는 명분으로 검토보고서 작성과 같은 고유업무가 아닌 화분 돌보기, 경제TV나 바둑TV 시청하기, 의회사무국(과) 고참 팀장들과 노닥거리기,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공부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정년퇴직이 1, 2년 정도 남은 5급 행정직 과장들은 의회사무국(과)을 선호했다. 공무원 경력상 상대적으로 업무 집중도나 성취욕구가 낮은 시기인 것이다. 어찌 보면 '군 전역 말년' 고참 직원을 구의회 전문위원으로 발령내는 이런 인사관행은 압도적인 집행기관 우위의 구도를 보여주는 구청 간부와 구의원의 합작품인 셈이다. 나는 의회 신청사 입주를 앞두고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제는 전문위원실이 구청에 휘둘리지 않고 의회 입장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을 집행기관 등에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관료조직의 보수적인 서열문화는 필자도 익히 알고 있었다. '계급이 깡패이고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말처럼 조직에서 직급은 권한과 책임의 크기다. 우스갯소리로 공무원들은 식당으로 갈 때도 직급이 높은 순서대로 삼삼오오 이동한다고 할 정도다.
가장 높은 직급인 과장이 출입문에서 먼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창문을 가까이에서 등진 채 팀장 책상을 두면 팀원들은 팀장 책상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 보게 책상을 배치하는 식이다. 전국 어디든 구청·시청·군청의 어떤 부서에 가든 그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책상 배치만 보고도 금방 맞힐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이런 관행적 책상 배치가 못마땅했다. 실제 업무능력과 별로 상관이 없이 권위주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의회사무국 전문위원실은 흔한 관료조직과 다르게 의회만의 고유한 기준을 적용하길 바랐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나 혼자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전문위원실 책상 배치 과정에서 소위 관료조직의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가 그렇게 갈등을 일으키며 조급하게 추진할 사안이었을까? 내 편인 줄 알았던 의원 중에는 직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가며 훈계하는 이도 있었다. 사면초가가 따로 없었다. 결국 얼마 동안 불안과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지나갔다.
늘공과 어공의 이분법을 넘어
요즘은 무조건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을 적대시하고 '어공(어쩌다 공무원, 임기제 공무원)'을 아군으로 여기는 이분법을 경계한다. 행정직 공무원 중에도 공익 마인드를 의식해 직업적 사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직원이 일부 있는가 하면 임기제 공무원 중에도 늘공보다 더 사내 정치에 관심이 많은 비전문가가 적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사람의 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선악이 불분명할 때도 흔했다. 지방의회 사무기구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단체장에서 의장에게 넘어오면서 아주 조금 변화가 보이기도 한다.
기회든 불운이든 모두가 사람을 통해서 온다. 부족한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JTBC 드라마 <송곳>에서 적극 공감한 대사가 있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새로운 조직에서 일하게 된다면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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