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도 너무 모르는 티빙, 아직 준비가 안됐다

이준목 2024. 3. 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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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선수 이름, 야구용어 등 역대급 실수 남발... 유료화 코앞인데 어쩌나

[이준목 기자]

▲ 사직구장 가득 메운 관중들 10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와 SSG랜더스의 시범경기. 관중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연합뉴스
올시즌 KBO리그 독점중계권을 확보한 티빙(TVING)이 시범경기부터 역대급 황당 실수 남발로 야구팬과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최소한의 '전문성'도 확보되지 못한 티빙이, 아직 프로야구를 중계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3월 4일 CJ ENM의 OTT 서비스인 티빙(TVING)과 KBO리그 유무선 중계방송권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6년까지 3년이며 계약 규모는 역대 최고액인 1350억 원(연평균 450억 원)에 달했다. 이로써 티빙은 경쟁자인 네이버 등을 제치고 KBO리그 전 경기의 국내 유무선 중계방송 권리와 함께 중계방송권을 재판매 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보유하게 됐다.

그동안 무료 중계에 익숙해져있던 시청자들에게는 아쉽지만, 현실적으로 프로스포츠의 유료 중계는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 흐름이었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던 KBO리그를 기점으로 한국 프로스포츠의 유료 중계화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KBO는 CJ ENM과 계약을 통해 중계 품질 향상과 다양한 콘텐츠의 제공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CJ ENM은 시범경기 개막일인 3월 9일부터 4월 30일까지 티빙에 회원가입한 이용자들에 한해 KBO리그를 무료로 생중계하며 시청자들을 위한 적응 기간을 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야구팬들은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많았다. 앞으로는 돈을 주고 야구를 시청해야 한다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프로야구 중계 경험이 전무한 티빙의 중계 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황당한 실수들 속출한 티빙의 시범경기 중계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려는 현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티빙이 지난 9일부터 시작한 2024시즌 KBO리그 시범경기 중계는, 품질 향상은 고사하고 수준 미달의 콘텐츠와 황당한 실수들이 속출하며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티빙의 시범경기 중계와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오류들이 쏟아졌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 이름이나 야구용어를 잘못 표기하는 일이 예사였다. 주자가 베이스에 살아들어갔다는 의미의 야구용어인 SAFE(세이프)를 SAVE(세이브)로 잘못 쓰는가 하면, 한화 이글스의 타자 채은성과 이재원을 소개하는 자막에는 타순과 등번호를 혼동하여 '22번 타자 채은성' '32번 타자 이재원'이라는 어이없는 자막을 각각 내보내기도 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의 이름을 '전근우'로 표기한다거나, SSG 랜더스 외국인 선수 길레르모 에레디아의 이름은 '에레디야'로 표기됐다. 뿐만 아니라 티빙 공식 유튜브에서는 '꼴데'나 '칩성' 등 온라인에서 누리꾼들이 특정 팀을 비꼬는 멸칭으로 쓰는 단어들을 버젓이 사용하여 해당 구단팬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빈번한 자막 오류는 단순히 우발적인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티빙 제작진이 야구에 대한 상식과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야구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이해도가 있었다면 최소한 야구용어나 선수와 팀을 비하하는 용어 정도는 구분했어야 한다.

자막 실수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콘텐츠의 품질 역시 좋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다. 시청자들은 하이라이트 영상에서의 메인 스폰서 로고가 삭제된 것, 하이라이트 영상 업데이트가 늦고 편집도 부실하는 등의 지적을 잇달아 쏟아냈다.

야구팬들은 티빙 제작진이 시범경기를 단순히 정규시즌을 대비한 연습기간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한 게 아니냐 의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료보다도 못한 유료중계'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무료보다도 못한 유료중계' 불만 잠재울까
 
▲ 발언하는 최주희 티빙 대표 최주희 티빙 대표가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OTT-방송영상콘텐츠 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연합뉴스
 
티빙은 여론이 악화되자 12일 지난 서울 상암 CJ ENM 사옥에서 'K-볼 서비스 설명회'를 열고 문제점과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티빙의 최주희 대표는 "송구스럽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사과하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바로 해결 가능한 부분들은 조치를 취했고, 나머지 부분들을 개선해 정규 시즌 개막 때는 제대로 된 중계를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제작진의 '야구에 대한 무지'가 단기간에 개선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최 대표는 "앞으로 철저한 검수와 프로세스를 강화해 야구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정규시즌 개막까지는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더구나 5월부터는 논란의 유료화가 시작된다. 자막이나 영상편집에서 초보적인 오류가 쏟아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 속에, 고품질의 콘텐츠와 서비스 제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팬들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편리하게 온라인 중계를 즐기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야구 자체에 대한 애정과 무료라는 장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수준 높은 양질의 콘텐츠를 경험하면서 야구를 즐기는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됐다. 오늘날의 야구팬들은 동시간대에 여러 곳에서 열리는 경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고,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기록이나 선수들의 정보 및 기사, 누리꾼들간의 소통까지 즐기면서 소비하는 '디지털 스포츠 중계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다.

하지만 티빙이 중계권을 가져가면서 중계의 품질과 서비스가 눈에 띄게 퇴행하고 있다는 데 야구팬들은 깊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수준 낮은 방송사고와 콘텐츠 품질저하가 계속된다면, 그저 돈만 보고 섣불리 사업권을 넘겨버린 KBO(한국야구위원회) 역시 팬들의 질타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CJ와 티빙은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했던 프로야구 산업의 인기에 편승하려다가 오히려 찬물만 끼얹은 방해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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