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아니라 생존 달린 일, 녹색 철강 향해 뛰어라"
[노광준 기자]
▲ 포스코 불개미연대와 빅웨이브가 3월 12일 서울 강남 포스코 센터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기후솔루션 |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의 포스코센터. 몇몇 청년들이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포스코 신임 회장의 얼굴 가면을 쓴 한 명은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다. '그린철강 느림보 포스코'라는 피켓을 들고 포스코의 느린 기후 대응 행동을 풍자한다.
한편 그 옆에는 '그린철강 8천조 시장'을 향해 뛰어가는 외국 기업들을 풍자했다. 스웨덴의 S사, 독일의 T사, 일본의 N사, 하나같이 포스코의 경쟁 철강기업들이다. 이들은 탄소 배출 없는 그린 철강으로의 전환을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고, 포스코 혼자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
청년들은 곧이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들은 포스코 홀딩스 주식을 보유한 청년 주주들과 기후단체들이다. 이들이 단지 탄소배출을 절감하라는 캠페인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이 말하는 포스코의 기후대응은 지구를 위한 착한 일이 아니라 포스코의 미래 명운이 달린 '생존전략'이었다.
"포스코홀딩스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은 환경을 위한 '착한 일'이 아니라 기업 생존이 달린 일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녹색철강 시장규모는 2022년 1억 9864만 달러(약 2577억 원)에서 2032년까지 약 6조 244억 1400만 달러(약 8170조 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와 포스코 불개미연대는 작년부터 포스코홀딩스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의 일환으로 결성된 연대조직이다. 이들은 이달 말로 예정된 포스코홀딩스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장인화 신임 포스코 회장 후보의 기후 리더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고로 포스코홀딩스는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이다. (2022년 기준 7019만 tCO₂e 이산화탄소 환산톤) 이들은 포스코홀딩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구에 대한 커다란 책임일 뿐 아니라 결국 기후리스크, 즉 포스코 자신의 주가하락과 비용 증가 등으로 되돌아올 '부메랑'이 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 피해로 인해 1조 3400억 원 영업이익 손실이 발생하며 당시 주가가 21만 원 선까지 하락했던 것은 포스코가 당면한 기후위기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물리적 피해 뿐 아니라 (향후)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적용 등 점차 증가하는 탄소비용으로 인해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는 분명 (포스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포스코 불개미 연대 기자회견)
지금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는 더더욱 영향을 미치게 될 기후위기 리스크, 기자회견장에서는 실제로 포스코 홀딩스 청년주주로 참여하며 기업에서 ESG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원 A씨가 참여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부터 기후공시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포스코가 지금처럼 탄소중립을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행동을 지속한다면 더 이상 ESG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신임 회장이 보다 책임있는 기후 리더십과 행동을 보여야 그린워싱 리스크가 줄어들 것입니다."
해외 경쟁 기업들은 '녹색철강' 향해 전력질주
이들은 포스코가 지금처럼 느림보 전환을 하면 해외 경쟁 기업들에 약 8천조 시장에 달하는 녹색(그린) 철강 시장을 선점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녹색철강은 뭐고 외국 기업들의 행보는 어떨까?
"기존의 철강 제조 공정은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반면, 수소환원제철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그린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탄소배출이 제로에 가깝다. 스웨덴의 철강회사 SSAB는 이 기술을 적용해 스웨덴의 자동차 회사인 볼보와 협력하여 무화석연료 철강으로 만든 자율주행 전기차를 2021년 10월에 생산한 바 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는 2026년까지 25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미탈은 작년 3월에 데모플랜트 설계에 이미 들어갔다." (기후솔루션, 2024.3.12)
이 날 기자회견에 함께 한 빅웨이브 김민 대표는 "포스코홀딩스는 작년 이차전지 주식으로 재조명받아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가에 근접하며 친환경 비즈니스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있다"며 "해외 주요 철강사들이 8000조 원 그린철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2050년이 아니라 2030년 이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비롯해 철강 탈탄소 로드맵을 강화하는 행동을 보여야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뺏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친환경 제철은 대한민국의 경쟁력
포스코의 녹색철강 행보는 단지 포스코만의 경쟁력이 아니라 철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 조선 등 모든 산업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오는 2026년부터 강화될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응하는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저탄소 철강 확보를 하려고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볼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세계 주요 다국적 자동차 제조사들이 저탄소 철강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철강 원재료와 생산방식에 따라 탄소배출 기준값을 부여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예고에 따른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오는 10월부터 시범 기간에 돌입하는 CBAM은 2026년 이후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서울파이낸스, 2023.9.5)
한국에서 생산한 철의 절반 가량은 한국의 자동차, 조선, 건설 등 한국 내에서 소비되고 있기에 저탄소 철강을 이루면 한국 경제 자체가 저탄소 경쟁력을 확보할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 선박 회사인 머스크의 고위 간부는 지난해 12월 한국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저탄소 자산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로 2050년까지 연간 3조 5000억 달러의 신규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생산 철강의 절반 이상을 국내 기업이 구매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기업이 구매하는 철강을 2050년까지 100% 녹색 철강으로 조달한다면 한국은 녹색 철강 시장을 조성하고 탄소 중립을 가속화해 한국을 탄소 중립 철강의 본거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브라이언 포크스가드 머스크 해양자산 및 전략총괄)
머스크는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계획을 세웠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 선체에 사용되는 철강의 탄소배출량 줄이기여서 2050년까지 100% 탄소 중립 철강을 구매하기로 약속하는 '스틸제로(Steel Zero)'에 동참했고, 기업의 구매력을 활용해 한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머스크의 넷제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철강을 제공하는 한국 기업의 그린철강 전환이 꼭 필요한데 만일 여의치 않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청년 주주들의 6가지 제안
이날 빅웨이브와 포스코 불개미연대는 포스코홀딩스 신임 회장 앞으로 6가지 제안사항을 담은 공개주주서한을 전달했다.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권고하는 25%까지 상향할 것을 포함해 태풍 힌남노 당시 조업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배출권 판매수입 311억 원을 그린철강인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에 재투자할 것 등이다.
- 작년 공개주주서한 회신내용에서 약속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3곳의 해외 사업장 탄소감축 계획을 올해 상반기 내 발표할 것을 제안합니다.
- 2020년 이후 목표를 수립하지 않은 '배출원단위 목표', 석탄 기반의 고로에서 수소환원제철로 대체하는 '설비 전환 계획'이 담긴 구체적인 2050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연내 발표할 것을 제안합니다.
-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 국내 배출권거래제 등 향후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천억 ~수조 원의 탄소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권고하는 25%까지 상향할 것을 제안합니다.
-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자의 탈탄소 요구에 적극 대응하고 향후 증가할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포스코그룹 주요 5개 계열사*의 RE100 가입을 연내 선언할 것을 제안합니다. (주요 5개 계열사는 포스코홀딩스,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퓨처엠, 포스코이앤씨)
- 국가 배출권거래제의 본래 취지를 존중하고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태풍 힌남노로 인해 발생한 2022년 온실가스 배출권 잉여분에 따른 판매수입 311억 원을 수소환원제철 R&D에 재투자할 것을 제안합니다.
- 작년부터 시작한 탄소중립 NDR(기업설명회)을 해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 및 소액주주들을 대상으로 개최하고, 탄소중립 NDR 관련 IR 활동을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공개할 것을 제안합니다.
[참고자료]
- '포스코 청년 주주들, 탄소비용 분명 주가 영향 미칠 것…장인화 회장 후보에 '기후 리더십' 촉구' (기후솔루션 보도자료, 2024.3.12)
- 문영재, '세계車업계, EU규제 앞서 탈탄소 철강 확보 비상···현대차·기아는?' (서울파이낸스, 2023.9.5)- 브라이언 포크스가드, '한국을 녹색 철강의 근거지로' (서울경제, 2023.12.27)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4년 3월12일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 매일 편성되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매일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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