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탄생의 과정만큼, 비극적인 한국정치 무능의 본질

구교형 2024. 3. 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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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정치개혁이 최고의 진보이고, 가장 선명한 정치다

[구교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 이념 갈등이 너무 심하다!' 늘 듣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 한국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이념의 본고장인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 큰 게 아니다.

우선,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부터가 그렇다. 전쟁을 방불케 한 두당의 대립각을 생각하면 둘 사이의 이념적 편차가 하늘과 땅 차이로 느끼기 쉽지만, 정강, 정책, 내세우는 지지층 등 실제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두 당을 '보수 양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념적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같은 보수 안에서의 정도 차이일 뿐이다.

지금 유럽의 큰 골칫덩이로 등장한 극우 정당들은 히틀러를 추종하거나, 이민과 난민, 외국인, 무슬림을 대놓고 반대하고, 순혈주의를 부르짖지만, 한국에는 그런 정당은 없다. 또, 틀림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프랑스에는 좌파인 사회당뿐 아니라 공산당도 당당히 의회에 진출하곤 하지만, 한국에서는 꿈도 못 꾼다.

그런 유럽의 정치 기준으로 본다면 녹색정의당이나 진보당 정도가 좌파적 이념 정당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훨씬 이념적 격차가 큰 유럽의 경우 성향이 다른 정당 사이에도 큰 틀의 합의를 만들어내는 일이 적지 않은 반면, 한국 정치는 그리 크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도 아예 대화도 못한다.

지금 심각한 의사 수급 및 의료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기에 양당이 국민 현안을 풀어내는데 얼마든지 머리를 맞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선 상대 당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두 가지 독특성 때문이다.

왜 거대양당은 싸우기만 할까?
 
 2020년 7월 29일 당시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임위 내 법안심사 소위이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을 상정하고 토론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며 윤호중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첫째, 비극적 한국 현대사 및 정치사의 독특성 때문이다. 1945년 해방 후부터 선거에 의한 첫 번째 여야 정권교체가 있던 1997년까지 50여 년 한국 현대사(헌정사) 대부분은 강력한 독재정권(국민의힘 계열)의 기득권과 부패에 항거하는 만년 야당(민주당 계열)의 투쟁으로 이어왔다.

초대 이승만 정부(12년)에 이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 정부(30년), 그리고 비록 군사독재를 끝낸 첫 번째 민간정부였지만 군부 기득권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등장한 김영삼 정부에 이르도록 대한민국은 50년 동안 합법적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4.19 혁명(1960년), 5.16 군사 쿠데타(1961년),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6. 10항쟁(1987년) 등 그동안 독재와 민주 사이의 너무 선명한 구도였기에 여당과 야당은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선과 악, 의와 불의, 기득권과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었다.

게다가 한쪽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한국 주류정치를 대표하는 영남/경상도 여당 정치가, 다른 편은 김대중과 80년 광주로 대변되는 호남/전라도 야당 정치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더욱 협력하기 어려웠다. 비인간적, 살인적, 폭압적 독재정권 앞에서 정책은 무의미했다. 일단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 정치는 서로를 적으로 삼고 용납하기 힘들다는 '일리 있는 관성'이 생겼다. 그게 30~40년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자기 쪽 부패는 모두 덮고, 상대편 의혹만 철저히 파헤치는 윤석열 정부의 '검사 독재'를 보면 여전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달라진 것도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불의해도 시대 자체가 달라졌다. 더는 누구도 탱크와 장갑차, 경찰을 동원하여 국민을 일방적으로 체포, 구금, 고문할 수 없으며, 그것을 용납할 사회 분위기도 아니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더 보수적이거나 더 진보적인 여론 조성이 가능하지만, 특정 견해 외에는 입도 뻥긋 못하는 시대는 아니다. 윤 대통령보다 더한 이가 틀어막으려 해도, 대한민국 국격과 국민의 민도, 사회 분위기가 이미 크게 달라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민주당도 이미 예전 민주당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민주니, 개혁 같은 상품을 팔고 있지만, 당내에서조차 소통이 실종되고, 대표 리스크 방어를 위해 당헌, 당규, 절차도 쉽게 바꿔버린다.

퇴보한 한국 정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국 정치가 정책과 절차, 토론과 협력에 따른 근대적 민주정치, 의회주의에서 거리가 먼 두 번째 이유는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서 다시 정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독일정치와 비교해 보자. 독일은 대표적인 의회주의 나라로 모든 면에서 나치 독일 시대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반성을 토대로 정치를 다시 세웠다.

초대 아데나워(1949~1963년)를 비롯해, 빌리 브란트(1969~1974년), 헬무트 콜(1982~1998년), 앙겔라 메르켈(2005~2021년) 총리에 이르기까지 독일정치는 독일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의 중심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비결은 방향과 정책이 분명한 정당, 일찍부터 정치를 택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훈련한 전문가 정치인들의 존재다.

특히 독일정치는 한국처럼 연예인, 아나운서, 체육인, 교수, 법조인 하다가 유명해지면 갑자기 추천되고, 벼락 공천받아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의 기초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독일은 정치인도 철저한 전문가로 준비되어야 한다.

"실제 독일의 역대 총리들은 모두 일찍 정치에 입문하여 단계적으로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 정치 입문이 다소 늦은 편인 헬무트 슈미트 5대 총리도 28세에 사민당에 입당하여 서베를린 시장, 외무장관, 사민당 총재를 지냈다. (…)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는 17세에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청소년 조직인 자유 독일 청년단 회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통일 독일에서 연방의회 의원,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 기민당 원내 총무 등을 거쳐 연방 총리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젊은 시절부터 의회와 행정부를 오가면서 정치력을 키우고 리더십을 인정받았다."(<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 양돈선, 미래의 창, 2018년, 33~34쪽)

독일은 마을과 지방도 철저히 정책 중심의 토론과 조정 속에서 정치 경험을 쌓고, 그 토대 위에서 중앙정치에 입문하고, 다른 정당과의 연립을 기본으로 하기에 설득과 토론, 협력에 능하고, 그 연장선에서 유럽 정치도 이끌어간다. 그래서 독일 정치인은 우리처럼 사기꾼, 싸움꾼의 이미지가 아니라 내뱉은 말에 책임지는 신뢰도 높은 직업인으로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높다. 한국처럼 한 정치인의 모든 것을 덮어놓고 지지하며, 종교적 광신도처럼 무조건 따라가는 팬덤 현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지적을 한국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시 말하지만, 해방 후 파란 많은 한국 현대사와 헌정사 속에서 정책보다 비인간적 독재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치단결하고, 강력한 리더에 의한 일사불란한 전열이 중요한 때가 있었음을 나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당시는 삼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비롯해 여야 모두 정치 거물들이 있어, 서로 죽을 듯 싸우면서도 누가 욕해도 각자 자기 책임 아래 필요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는 큰 정치가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전에도 군사독재 세력인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한 중요한 밑바탕을 놓기도 했다. 또, 87년 민주화 운동과 IMF 금융위기 당시에는 노동 정책과 복지 정책에 지금까지 유지되는 큰 그림을 만드는데 여야가 상당히 협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거대양당 중심의 여야는 아무리 중요한 현안이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아무것도 합의해 내지 못하면서 서로의 주장에 정확히 반대편에만 서서 세월만 보낸다. 여야 정치인들은 국가발전과 국민 편익을 위해 서로 협력할 부분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 자기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으려고 입을 닫는다.

사실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대변하기에 대립하고 싸우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는 늘 싸우는데 어떤 결과도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정치는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 가장 중요한 정치 과제는 구태와 무능, 무책임에 뒤범벅되어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양당 중심의 낡은 정치를 바꾸는 정치개혁이다. 정치개혁이야말로 최고의 진보이고, 가장 선명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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