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 BMW가 반한 K자율주행 유망주 [스타트업 창업자 열전]
지난 2년간 자동차업계를 달궜던 ‘자율주행’ 열기가 한풀 꺾였다.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눈에 띄는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 탓이다. 업계 선두 주자 테슬라는 자율주행 프로그램인 ‘오토파일럿’의 한계를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애플은 10년 동안 개발하던 자율주행차 애플카 개발을 중단했다. 무인 자동차 개발 기업 웨이모와 크루즈는 사고를 비롯한 각종 논란을 겪으며 침체에 빠졌다. 자동차·IT업계에서는 당분간 자율주행 관련 기업은 빙하기를 보낼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모두가 “자율주행은 힘들다”고 말할 때, 오히려 자율주행을 앞세워 질주하는 스타트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한빈 대표가 이끄는 ‘서울로보틱스’다.
산업용 자율주행 특화
서울로보틱스는 라이다 센서(사물과의 거리를 감지하는 기술)를 활용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이다. 2017년 이한빈 대표가 설립했다. ‘B2B용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핵심 상품이다. 일반적인 고속도로가 아닌, 공장·항만·물류센터 내 자율주행 서비스를 구축한다. 주요 고객사는 완성차 회사다.
이한빈 대표는 서울로보틱스 기술을 ‘산업용 자율주행’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공장에서 생산한 직후, ‘탁송’이라는 배송 과정을 거친다. 조립이 완료된 자동차는 공장 내 주차장에서 집결한 뒤, 수출용은 항만을 거쳐 배에 실리고, 내수용은 운반용 차에 실려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때 생산라인에서 주차장으로, 주차장에서 배와 차로 이동할 때 서울로보틱스의 자율주행 서비스가 사용된다. 원래 해당 과정에서는 기사가 직접 차에 탑승, 일일이 운전해서 차량을 옮긴다. 서울로보틱스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면 기사가 차를 운전할 필요가 없다. 관제센터에서 차량을 원격 제어, 일사불란하게 이동시키는 덕분이다.
서울로보틱스 기술의 특징은 ‘외부 제어’다. 센서를 차량이 아닌 CCTV와 기둥을 비롯한 주변 시설에 부착한다. 일반적으로 물체 인식을 위한 라이다 센서는 ‘자동차’에 장착한다. 별도 장치가 없는 일반도로를 주행하기 때문에 차량에 최대한 많은 장치를 탑재한다. 자율주행차량을 만들 때마다 라이다 부품 등을 추가로 공수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서울로보틱스의 경우 센서를 외부에 단다.
공장단지, 물류센터 등 제한된 도로만 사용하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도로에 장치와 센서를 깔고, 통신 시스템을 활용해 차량을 원격 제어한다. 이 대표는 “요즘 차량은 차 안에 인터넷, ADAS 등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이미 차량 내부에 깔린 소프트웨어와 외부 센서를 활용하면 별도 추가 장비를 차량에 달지 않아도 쉽게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로보틱스는 창사 2년 만인 2019년, 독일 BMW의 선택을 받으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서울로보틱스 기술력에 주목한 독일의 BMW가 뮌헨 딩골핑 공장에 서울로보틱스 기술을 전격 도입했다. 딩골핑 공장은 독일 내 BMW의 최대 규모 생산 공장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은 공장 라인에서 조립을 마치고 나면, 스스로 자율주행하며 지정된 창고 위치로 이동한다. 러브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BMW 외 다른 글로벌 자동차 OEM 업체 2곳이 서울로보틱스와 협업 중이다. 현재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매출 총 이익률은 55% 수준이다. 누적 투자를 통해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2800억원에 달한다.
멋모르던 공대생 취업 도전
때아닌 자금난 대출받아 지탱
지금은 잘나가는 스타트업이지만 서울로보틱스가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창업자 이한빈 대표는 본래 회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미국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수리병으로 복무를 마친 그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취업을 준비했다. 한국을 떠나 호주로의 취업 이민을 고려하는 등 창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창업 계기는 ‘공부 모임’에서 시작됐다. 취업 준비 중 당시 새로운 기술로 떠오르던 AI를 공부하기 위한 온라인 스터디를 만들었다.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원들과 대화가 잘 통하자 이 대표가 먼저 ‘창업’을 제안했다.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사업을 해보고 실패하면 취업하자는 생각으로 편하게 도전했다고.
가볍게 시작한 사업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창업 2년 만인 2019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BMW의 협력사가 됐다. 사업이 급성장하자 취업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그날부로 이 대표는 서울로보틱스에 ‘올인’했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며 승승장구했다.
꽃길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위기도 겪었다. 2022년 금리 인상 여파로 스타트업 투자가 얼어붙은 시기, 서울로보틱스도 자금난에 빠졌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직원 60명의 월급이 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대표가 연대 보증을 서고,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3개월 동안 대출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 월급은 모두 개인 지출로 처리했다.
‘사업을 그만해야 하나’라고 고민할 무렵,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 첫 고객 BMW가 자사 탁송 서비스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든 게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영상 곳곳에 서울로보틱스의 자율주행 서비스가 등장한 것.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BMW의 영상을 본 투자자들이 줄줄이 서울로보틱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영상 하나로 부족하던 투자액을 모두 채웠다. 영상에서 서울로보틱스 서비스가 워낙 멋지게 나왔다. 회사는 바로 정상화됐다. 한편, 뿌듯함도 느꼈다. BMW가 직접 홍보까지 해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차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미국·중국 시장 공략 나선다
이한빈 대표가 준비하는 다음 단계는 서울로보틱스 기업공개(IPO)다. 2025년 코스닥 시장 상장을 준비 중이다. 기업가치 1조원을 인정받는 게 목표다. 올해 2월 삼성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상장에 앞서 올해 프리 IPO 라운드를 진행한다.
상장으로 모은 자금은 인력을 확충하고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쓸 계획이다. 현재 서울로보틱스 주력 시장은 유럽이다. 규모가 큰 시장이지만, 성장성이 낮다. 보쉬, 콘티넨탈 같은 유럽 자동차 부품 대기업과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 시장 규모·성장성 등이 유럽보다 월등히 높다. 경쟁할 만한 기업이 적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인재 싸움이다. 좋은 개발자가 많아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생긴다. 창업 초기부터 인력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상장으로 확보하는 자금은 인력 확충에 집중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동력으로 쓰겠다.”
이한빈 대표의 일성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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