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월드+]전쟁이 러시아 우위로 급변하는 까닭
무기 생산역량 지속해서 확충
풍부한 석유·가스 세계 공급
美 제재에도 전쟁능력 뒷받침
주변국가들 휴전 언급 잇달아
전쟁 종식 빨라질지 주목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적인 분위기가 최근 급변하고 있다. 튀르키예(터키)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로부터 휴전과 관련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우크라이나 측에 항복과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2022년 개전 직후 다양한 국가의 휴전 중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단되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최근의 변화는 뭔가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상황의 변화를 이끈 것은 전장의 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2년 성공적으로 러시아의 공세를 방어하고 북동부 전선에서 기습적인 반격을 통해 많은 영토를 회복한 우크라이나는 2023년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들은 탱크를 비롯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번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지만 잘 준비된 러시아의 방어선 돌파는 실패로 돌아갔다. 2023년 겨울이 시작되면서 러시아는 동부전선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으며,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우크라이나의 핵심 거점들을 연이어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여러 국가는 이번 전쟁이 러시아의 우위로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중재에 나서고 있다. 전쟁에서의 휴전과 협상은 상황의 유불리가 결정된 시점에서 본격화됨을 고려해보면 여러 국가가 전쟁에서 러시아의 우위가 굳어졌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는 러시아군이 큰 피해를 보고 있으며, 러시아의 군수산업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서방의 제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큰 인명피해와 혼란을 겪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수습하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금방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었던 러시아의 한계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같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이러한 러시아의 변화는 두렵게 다가오고 있다. 152㎜ 포탄의 경우 당초 서방 전문가들은 연 200만발 정도가 러시아의 생산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속해서 생산역량을 확충해 2024년 말이 되면 400만발 이상으로 생산량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북한 등으로부터 유입되는 양까지 합해보면 러시아는 최전선에서의 사용량과 더불어 충분한 양을 비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이런 변화는 뒤늦게 시작한 전시산업으로의 재편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2023년까지의 전쟁이 비축된 물자로 한 전쟁이었다면 2024년부터 러시아는 본격적인 전시경제로 전환하면서 더 많은 물자를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 러시아 군수산업은 오랫동안 비효율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예정된 납기와 비용을 준수하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서방의 입장에서는 규모 축소와 폐업이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러시아는 정경유착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보조금 성격의 각종 비용을 지원하면서 역량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쟁은 한순간에 비효율적인 군수산업이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쟁 초기의 혼란이 지나가자 전통적으로 단순하지만 내구성이 뛰어나고 대규모 생산에 특화되었던 러시아의 군수산업은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제조업 가동률은 80%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실업률도 3% 미만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24년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7.5%로 증가하였고 전체 인구의 2.5%인 약 350만명이 방위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군수 분야의 인건비는 지속해서 상승해 기계공과 용접공은 모스크바의 변호사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막대한 병력동원 및 군수산업 활성화가 강압적 수단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금인상을 통해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화약 생산 공장의 경우 전쟁 이전 월 2만5000루블(약 37만원) 수준에 불과하던 임금이 현재는 9만루블(약 132만원)로 상승하면서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면적인 동원령을 선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장에서 필요한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 군 당국은 자원자들에게 월 20만루블(약 292만원)의 급여와 부상 및 전사 시 충분한 연금을 약속하면서 모병에 나서고 있다. 군 당국과 군수산업의 인력확보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으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산층의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풍부한 석유와 가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시장에 지속해서 공급되면서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떠받치고 있다. 러시아는 내년까지 전쟁이 진행될 경우 국방비를 70% 증가시켜 11조루블(약 161조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재원 확보를 위해 그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하던 석유 및 가스 가격을 인상하면서 관련 세수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규모 군비 지출이 본격화되면서 당연히 물가는 상승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7.5%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로서는 전쟁 재원의 추가 확보, 군비 지출 확대에 따른 사회 분야 지출 감소로 인한 국민 불만 확대, 인플레이션 억제 등의 3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후유증은 나중이며 전선에서의 러시아군의 우위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예상보다 빠른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며, 그 여파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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