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채운 '56부남'...여전히 그대로입니다
'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고은 기자]
▲ 국회에 여성과 청년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유권자의 DM |
ⓒ 오마이뉴스 |
22대 국회의원 후보자분들께
아-아- 잘 들리시나요? 이번 총선에서 특히 묻혀있던 이야기를 꺼내려니 확성기가 절실한 심정입니다. 20대 청년이자 여성 유권자로서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어 DM(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냅니다.
발터 벤야민의 철학적 유언장과 같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나오는 장기판 앞에 앉은 터키 인형 일화를 들어보셨을까요. 이 인형은 자동기계인데요, 사람이 어떤 수를 두든 반대 수로 응수해 언제나 판을 이기게끔 고안되어 있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앞선 일화를 몰랐다며 놀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이 인형 안에는 장기의 명수인 난쟁이가 들어앉아 인형의 손을 끈으로 조종하고 있거든요. 벤야민은 이 인형을 타락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유물론'에 비유했습니다. 언제나 이기지만 알고 보면 왜소하고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거죠.
4.10 총선을 앞둔 정치 상황을 보며 저는 터키 인형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제 앞에 놓인 게 광장이 아니라 장기판이어서겠죠. 양당이 총선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으로 대하면서 장기판이 과열되는 중입니다. 민주당에게 4.10 총선은 윤석열 정권 심판과 더불어 일명 '검찰 독재'를 막는 사활이 걸린 판이죠. 국민의힘도 여소야대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국회 의석을 되도록 많이 확보하는 게 급합니다.
여기까진 선거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니 저는 이번 총선에서 다른 곳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재명 당대표가 대선 당시 약속했던 '선거제 개혁'이 유효하길 바랐죠.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비례성을 강화해 세대, 성별, 계층, 지역 등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약속한 바 있으니까요.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비극을 낳았던 일을 돌아볼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 "양당 담합 규탄" 목청 높인 정의당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비례의석 축소 양당 담합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 남소연 |
이재명 대표는 '상대가 권투 경기에서 칼을 들고 나오면 냄비뚜껑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일갈했습니다. 국민의힘에 맞서 진보당 및 새진보연합과 함께 위성정당을 만들었으니 정당방위라는 좋은 명분도 있습니다.
정치 상황이 바뀜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내려지는 결정. 최근 여야가 선거구획정안 재획정 요구서를 의결하며 비례대표 47석을 46석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무적의 정치 논리. 거대 양당이 나란히 앉아 터키 인형의 탈을 쓰고 '정치 개혁'을 막아서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답답합니다. 모두 각자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결과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로 이어지니까요.
▲ <뉴스타파>가 기획한 챌린지로, 청년과 여성의 국회 도전 상황을 개표일까지 매일 업데이트해 알려준다. 전체 후보자 1553명 중 청년과 여성 비율은 순서대로 5.1%, 15.8%에 그친다. |
ⓒ 뉴스타파 |
선거 때면 되면 돌아오는 청년과 여성 정치인을 늘리겠다는 말, 언제까지 공허한 말뿐으로 끝날 건가요. 유권자 비율이 청년과 여성 각각 약 30%, 50%지만 지난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 비율은 청년이 2.4%, 여성이 11.5%로 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단순 비교만 해봐도 대표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민주당 당헌에는 '지역구 선거구 여성 30% 이상 공천', 당규에는 '청년 후보자 10% 이상 공천'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고안한 2024 총선 챌린지 자료에 따르면, 국회에 도전하는 청년과 여성 후보자의 비율은 민주당 후보 전체의 3.7%, 14.4%(24.3.5 기준)에 그칩니다.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밀실 공천' 논란이 비례대표로 번진 지금, 과연 당 지도부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구 공천에서 부족했던 청년과 여성 후보자의 비율을 비례대표 공천에서 높여보겠다며 뒤늦게 '국민추천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정당 내에서 인재를 키우고 영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체계적인 당원 교육을 병행하며 당에서 내보일 젊은 정치인을 성장시키는 데 정당은 자원을 쏟지 않았다는 뜻이죠. 지역구 단수 공천을 받은 청년 또한 상당수 당선 가능성이 낮은 험지로 출마하는데요, '청년'이 새로운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게 우리 정치가 처한 현실입니다.
▲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전경 |
ⓒ 국회사무처 |
대선부터 총선까지, 한 진영이 몰락해야만 끝날 것 같은 양당의 적대 정치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변화를 꿈꾸는 청년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있습니다. 다음 국회를 끌어갈 22대 국회의원분들에게 변화를 위한 3가지 약속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이유입니다.
하나, 주류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힘써주세요.
국회가 '50대 부자 남성'으로 대표되는 일을 막으려면 구조적 변화가 절실합니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거나 국회의원 정수를 350석으로 늘리는 등 선거 제도 개편이 이루어질 때 표심이 왜곡되지 않고 반영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당이 몇 석을 가져갈 것인가?"에 집중해 선거 제도 개편을 끝끝내 미루는 모습, 다시 목격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둘, 청년 정치인분들은 '지금 청년의 문제', '미래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보여주세요.
청년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가 기존 정치인에 동화된다면 존재 이유가 흔들릴 거예요. 가까운 이의 전세 사기 피해를 통감한 정치인, 지방 대학에 재학하며 지역 소멸을 피부로 느낀 정치인이라면 청년 앞에 놓인 시급한 문제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셋, 선배 정치인분들은 '청년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키워주세요.
지금은 기득권이라고 비판받는 5060 정치인들 또한 20년 전에는 청년 정치인이셨습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젊은 피 수혈론에 힘입어 송영길 의원님도 영입되셨지요. 원희룡 전 정관, 오세훈 시장도 신진 엘리트 영입으로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당을 성장시킬 인재로 청년들을 육성해야만 다음 총선에서는 '최고령 국회 갱신'이라는 타이틀을 벗을 수 있을 겁니다.
각 당의 공천 또한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여성과 청년 후보를 최대한 비례대표에 담겠다는 말이 어떻게 지켜질지 끝까지 보겠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여론조사에 응답하고 경선 투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집 앞 사거리에 색색의 현수막이 걸려있겠지요. 기대감보다 두려움이 더 큰 총선, 결과까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쓰이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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