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5학년이 6학년 수학을... 이게 다 학교 덕분이었는데

임은희 2024. 3. 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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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부터 4학년까지 해 온 서울시교육청 점프업 프로그램, 올해 예산 부족으로 사라져

[임은희 기자]

작은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으로 진급했다. 지난 3월 3일, 개학을 앞둔 아이의 표정에서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학년을 시작할 때마다 걱정하고 초조해하던 모습의 과거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이의 1학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십 더하기 일은 뭘까?'
'어… 백십일? 아니면 일십?'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코로나19로 인하여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습 수준은 심각했다. 공부가 어려웠던 아이는 점점 공부를 싫어하게 되었다. 싫어하니 안 하고, 안 하니 못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초등학생이 바로 우리 집 둘째였던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고 정상적인 등교를 시작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교육청에서 시작하는 학습프로그램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아이가 따로 하고 있는 수업이 있나요?'

요긴했던 '점프업 프로그램'

아이는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참여한 것은 학력격차 해소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편성한 기초학력 예산으로 운영되던 '점프업 프로그램'으로 무료 방과 후 수업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 수업 대신 학원을 선택해 공부하는 동안 우리 집 아이를 비롯한 소수의 학생들은 학교에 남아 담임선생님과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기 시작했다.
 
▲ 2023년 점프업 프로그램 신청서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유료 방과 후를 신청하지 않은 학생들은 무료 방과 후인 점프업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보충수업을 진행하였다.
ⓒ 임은희
 
수학 실력은 서서히 늘었다. 덧셈, 뺄셈을 거의 틀리지 않았고, 문제를 읽을 땐 밑줄을 치며 꼼꼼하게 살폈다. 모르는 문제는 별표를 쳤고 틀린 문제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다시 풀며 복습했다. 아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엄마인 내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복기노트 쓰는 법을 가르쳤다.

복기노트에는 아이의 즐거운 학교생활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재미있는 수업 자료를 보여주셨는지, 아이들과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오늘 급식은 무엇이 맛있었는지, 그리고 점프업 시간에 받은 간식이 취향에 부합했는지 등을 아이만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기록했다. 

2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는 구구단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3학년이 되자 점프업 말고 키다리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수학을 꾸준히 공부했다. 3학년 선생님은 2학년 선생님과는 수업 방식이 달랐다. 학습지가 아닌 개인이 선택한 문제집을 가지고 오면 아이들이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엄마, 나 문제집 사야겠어, 서점 가자!'
 
▲ 수많은 수학 문제집들 수학을 싫어해서 기초가 부족했던 아이는 여러 문제집을 꼼꼼히 살펴보며 자신의 수학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골랐다. 학기마다 아이가 선택하는 출판사는 달랐고 문제집의 문제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다.
ⓒ 임은희
 
3학년 2학기에도 아이는 학력격차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했다. 답안지를 보며 스스로 채점하기 시작했고, 친구가 어려워하는 문제의 풀이 과정을 설명해 주고 집에 와서 친구를 도와주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3학년 진급 후 처음으로 단원평가에서 100점을 맞았다. 

아이의 수학 실력이 많이 좋아져서 4학년 때는 키다리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 교사의 도우미 역할을 하며 다른 친구의 학습을 보조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열성적인 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학원 일정이 없는 학생들을 학교에 남게 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좋지 못한 학생들을 섞어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부를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이는 그런 담임선생님을 존경했다.

단원평가를 앞두고 아이가 처음으로 배운 것들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록했던 복기노트에서 수학 관련 부분을 살펴보고, 교과서 문제들을 다시 풀어봤다. 큰아이가 사용하는 인터넷 강의용 탭의 초등학습파트에 들어가 예비 시험도 보았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학교 시험 일정을 확인하며 스스로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5학년 1학기 과정을 예습하고 있는 작은 아이  서술형 수학 문제를 더 잘 풀고 싶어 하던 아이는 국어 예습도 함께 진행했다. 국어 지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 독서 시간을 계획하고 꾸준히 책을 읽었다. 아이는 필요에 의해 공부의 범위를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으로 겨울방학을 보냈다.
ⓒ 임은희
 
4학년 2학기가 끝났고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아이는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자신이 풀 문제집을 골랐다. 아이는 1, 2, 3단계와 복습집, 학교시험예상문제집으로 구성된 책을 선택했다. 아이의 공부 과정은 다음 순서를 따랐다.

(1) 내용을 공부하고 1단계를 푼다.
(2)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인강을 듣거나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며 다시 공부한다.
(3) 2단계 문제를 푼다.
(4) 3단계 문제를 푼다.
(5) (개학 후 일정) 학교 수학 진도에 맞춰 복습을 진행하며 6학년 예습을 진행한다.

아이는 분수와 소수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며 5~6학년 통합 과정 문제집을 골랐다. 2013년에 태어나 이제까지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살았던 아이가 인생 최초로 선행을 하기 시작했다. 2024년 2월 29일, 아이는 5학년 1학기 전 과정과 분수, 소수 부분의 초등학교 전 과정을 끝냈다. 교과 과정에 따른 학습 일정까지 모두 짜놓고 새 학기를 맞이했다.
 
▲ 초등학교 5학년의 복기노트 학교에서 배우거나 활동한 것들을 기록한 복기노트.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5학년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촬영을 허락한 아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임은희
 
아이가 학교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의 수많은 '시작'에 도움을 준 분들을 생각했다. '아주 못하진 않지만 알아서 공부하진 않는다'며 학습동기를 부여하셨던 선생님,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와 간식 이야기를 하며 친근하게 다가가서는 부족한 연산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선생님, 어떤 점수를 맞던 '괜찮다' 하시며 아이를 응원해 주셨던 선생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예산을 책정한 이름 모를 교육자들에게 모두 감사했다.

곳간 빈 학교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런데 서울시 전체에서 점프업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예산 부족 때문이란다. 키다리 프로그램은 기초학력 예산에 포함되어 있지만 학급수가 많은 학교들은 협력강사를 구하기에도 빠듯한 돈을 배정받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 학년에 3학급이 있는 작은 학교가 1500만 원, 13학급이 있는 학교는 2000만 원을 받았다. 학급수가 많으면 부진학생도 많을 텐데 단순히 비교해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 학력격차 프로그램이 소중한 이유 학생들의 보충학습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담임교사들이었다. 누구보다 학생들을 잘 이해하는 다정한 교육전문가들이 학생별 맞춤지도를 진행했다. 우리 집 아이는 선생님들을 사랑했고 존경했기에 점프업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다.
ⓒ 임은희
 
어떤 교사들은 예산 지원이 없어도 부진학생들을 성심성의껏 지도할 것이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정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교육자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들이 사비를 털어 교육자료를 마련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것을 칭찬하기보다는 안타깝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몇몇 교사의 희생을 모든 교사들에게 강요할 순 없기 때문이다. 

부족한 예산은 우선순위를 정하게 만든다. 가장 시급한 학생들에게만 학력격차 예산이 배정되면 우리 집 아이처럼 학습 부진 학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은 학력 수준이 크게 떨어지거나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또한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담임선생님과 교류하고, 동급생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귀한 시간들도 사라져 버린다. 교육청의 상급기관인 교육부와 정부는 이런 상황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2023년 불용예산은 무려 45조 7000억 원이다(출처 : 기획재정부). 공립 초등학교들은 예산부족으로 협력교사 확충과 학력격차 수업도 빠듯하게 진행하는데 정부는 국회가 승인한 예산도 다 못 썼다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2023년, 정부는 교육교부금을 11조 삭감하며 시도교육청을 재정적으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교육교부금 11조 줄이겠다는 정부… 시도교육청 "이럴 수가").

학교 교육만으로도 아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믿음을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부족하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며 예산을 자꾸 줄이면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곳간이 텅텅 빈 학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다.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귀한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 예산에는 인색한 정부가 야속할 따름이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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