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아시안게임 진출에 목숨 건 남자
[김성호 기자]
모든 스포츠가 꿈꾸는 무대가 있다. 올림픽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 대표 선수를 선발해 다른 나라와 맞붙는 꿈의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다. 내로라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여 실력을 겨루고 자신의 종목에서 최선의 기록을 위해 경쟁한다. 올림픽 위원회는 매 대회마다 올림픽에서 채택할 종목을 놓고 심사를 벌이며, 합부를 따져 일부 종목을 퇴출하고 일부를 받아들인다.
때로는 야구처럼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종목이 퇴출되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나 골프, 서핑, 가라테와 같이 대중적 인기를 가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종목들이 채택되기도 한다. 일단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기만 하면 해당 종목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다. 각 나라에서 그 스포츠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이는 자연히 산업과 시장 성장으로 이어진다. 많은 스포츠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목숨을 거는 이유다.
▲ 원 앤 온리 포스터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공식 스포츠가 된 춤, 발맞춰 제작된 영화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새로운 종목들이 대중 앞에 선을 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브레이킹이다. 흔히 브레이킹 댄스, 또는 비보잉으로 불리는 이 종목은 세계적으로 보급돼 있어야 하고, 남녀 모두가 할 수 있어야 하며, 상업성이 따라야 한다는 올림픽 종목 채택기준에 적합하단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지막 기준에서 그러했다. 오랫동안 단순한 예능으로, 나아가 예술의 한 분파로 평가됐던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꿈꿔온 세계 댄스스포츠 연맹(WDSF)의 주도 아래 국제무대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원 앤 온리>는 브레이킹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에 발맞춰 만들어진 댄스영화다. 여기서 그저 발맞췄다는 표현이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신설종목인 브레이킹을 홍보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되고 제작되었단 점 때문이다. 영화엔 유독 타 지역보다 항저우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또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임을 유달리 강조하는 모습이 수차례 반복되는데, 이 모두가 기획의도를 따른 것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천숴(왕이보 분)는 성실히 살아가는 꿈 많은 청년이다. 멋진 댄서가 되겠단 각오로 살아가는 그는 아버지가 죽으며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살아간다. 집에서 운영하는 식당만으로는 빚을 갚기 어려워 아버지가 일했던 극단 소속으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공연도 한다. 말이 공연이지 히어로 분장을 하고 춤을 춘다거나 하는 게 고작이지만.
▲ 원 앤 온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통속적 설정을 무기삼아 차근히 전진하는
이마크가 천숴를 눈여겨 본 건 그의 역할 때문이다. 이마크엔 케빈이라는 댄서가 있다. 이마크의 얼굴이라 해도 좋은 그는 지역 댄스배틀 최강자이자 전국대회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명실상부 최고의 댄서다. 심지어 그는 재벌2세로 돈까지 많아서 이마크의 연습실 대관료부터 각종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있는 보물이다. 그런 그가 잠시 팀을 이탈할 일이 생기자 대신할 멤버로 천숴를 고른 것이다.
팀을 운영하는 코치(황보 분)는 한때 날렸던 댄서 출신으로 천숴에겐 남몰래 바라봐 온 롤모델이기도 하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그의 지도를 직접 받게 된 천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간다. 본래 케빈이 없는 동안의 연습상대일 뿐 정식 입단이라고는 할 수 없던 그이지만,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에 개성 강한 팀원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영화는 이내 다음국면으로 접어든다. 천숴가 활약하는 모습을 본 케빈이 강짜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팀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급기야 팀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코치가 나서 설득해보지만 속수무책, 결국 팀은 멀끔했던 연습실을 쫓겨나 길거리를 방황하는 신세가 된다. 평소라면 하지 않던 행사무대까지도 뛸 지경이 된 팀에서 천숴는 분전하여 케빈의 공백을 서서히 메워간다.
▲ 원 앤 온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부유한 악당, 가난한 주인공
천숴는 가난한 집의 열정 많은 청년이다. 어려운 집을 도와 물려받은 빚을 갚고, 한편으론 꿈인 댄서가 되기 위하여 매일 밤 연습에 매진한다. 집에는 아픈 삼촌까지 있는데 그는 지극정성으로 그를 보살핀다. 열정적인데다 저를 희생할 줄 알며 책임감 있고 겸손한 그가 잘 생기기까지 했다. 대체 누가 그를 미워할 수 있을까.
소위 먹히는 주인공 반대엔 누구나 미워할 만한 악당이 있다.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인성은 엉망진창인 케빈이다. 그는 팀원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고 저를 떠받치는 조연이라고만 생각한다. 팀이란 언제든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그는 무려 재벌집 아들이다. 재벌이라면 존경할 구석도 있겠으나 재벌2세에게 대중이 갖는 시선이란 빤하지 않은가. 노력이며 성과 없이 앉아서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그는 저를 띄우는 무기로만 활용한다. 그러고도 다른 이에게 골탕 먹이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누가 그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원 앤 온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올림픽 정식종목, 브레이킹을 바라보다
한편으로 반가운 건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한중합작 그룹 UNIQ 멤버였던 왕이보와 미쓰에이의 페이가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한다. 아이돌의 댄스실력이야 정평이 난 만큼, 영화에서도 인정할 만한 활약을 보여준다.
브레이킹은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 댄스를 줄 세워 평가하고 점수를 받기 위해 각 기술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겠다. 기실 브레이킹을 올림픽 종목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를 주도한 협회와 오랜 기간 비보잉 문화를 키워온 이들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현실이다. 규칙이 없어 더욱 자유롭게 발전해온 하위문화를 급격히 끌어올려 규정집을 만들고 기술례를 굳히는 작업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는 불가피할 테다.
그럼에도 브레이킹의 정식종목 채택은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영화 속 천숴와 같은 댄서가 쉬이 잡지 못했던 기회, 즉 시장이 작고 이렇다 할 산업이 없어 소실되었던 아까운 재능과 열정이 제게 맞는 무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원 앤 온리>와 같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같은 흐름이 자리한다. 아쉬움 많은 영화일지라도 이 영화에 가치가 있다면 바로 춤을 춤 이상으로 이끌려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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