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화려한 꽃봄, 화엄매에서 초의매·일지매까지

이돈삼 2024. 3. 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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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요사채, 돌담, 교회건축과 어우러지는 남도 매화 면면 보니

[이돈삼 기자]

 화엄사 각황전 옆에 핀 홍매. 지난 1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매실나무다.
ⓒ 이돈삼
 
남도의 화려한 '꽃봄'이 시작됐다. 꽃봄의 중심에 매화가 자리하고 있다. 손에 꼽히는 매화는 지역마다 다 있다. 남도에선 화엄사 화엄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를 비롯 금둔사 납월홍매, 전남대 대명매, 송광사 송광매, 무위사 만첩홍매, 죽설헌 죽설매, 대흥사 초의매, 운림산방 일지매 등을 꼽는다.
전라남도 담양과 광주광역시의 접경지역에 자리한 가사문학권의 환벽당매, 소쇄매, 계당매, 독수매, 와룡매도 있다. 저마다 지조를 지키는 군자를 닮아 고결하다. 옛 선비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 이 곳들을 찾았다.
  
 화엄사 각황전 옆에서 활짝 핀 홍매. 지난해 봄 풍경이다.
ⓒ 이돈삼
    
 화엄사 길상암 앞 백매. 수령 450년 된 들매화로 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구례 지리산 화엄사의 홍매화는 각황전 옆에서 핀다. 가지마다 연지곤지 찍은 것처럼 붉은 꽃망울을 피운다. 붉은 화사함으로 절집의 위엄을 한순간에 흩트린다. 단청하지 않은 각황전, 석등, 석탑과 한데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지난 1월 자연유산(천연기념물)으로 지정됐다.
오랜 전통의 화엄매도 있다. 화엄사에 딸린 길상암 앞 작은 연못가에 위태롭게 서 있다. 수령 450년 남짓 추정된다. 하얀색 홑꽃으로 핀다.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들매화(野梅)'로 불린다. 천연기념물로 일찍 지정됐다. 대한민국 4매에 꼽힌다.
  
 금둔사 납월홍매. 섣달부터 피기 시작한다. 매화 가운데 가장 일찍 핀다.
ⓒ 이돈삼
  
 순천복음교회 홍매. 꽃이 교회 건축과 어우러져 색다른 멋을 안겨준다.
ⓒ 이돈삼
 
매화를 어디보다 일찍 피우는 곳은 순천 금둔사다. 엄동설한 납월(臘月)에 꽃이 핀다고, 납월매로 불린다. 꽃잎은 두 겹, 향기도 진하다. 순천 매곡동 탐매(探梅)마을도 있다.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 집인 '홍매가헌(紅梅佳軒)'을 중심으로 탐매마을이 형성됐다. 옛 선교사의 흔적인 근대건축과 버무려져 고즈넉한 멋을 뽐낸다.

순천 왕지동엔 교회 건물과 어우러지는 매화도 만난다. 순천복음교회다. 넓은 마당과 연못 주변에 청매, 홍매, 백매, 능수매 등 10여 종이 핀다. 수령 100∼200년 된 고매도 있다. 교회와 만난 매화가 색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선암매를 피우는 절집 선암사도 순천에 속한다. 선암사는 수령 100∼300년 된 매실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운다. 매화는 무우전, 성보박물관, 공양간, 돌담, 해우소 등 장소 가리지 않고 흐드러진다. 선암사 매화는 꽃을 늦게 피운다. 무대가 끝날 무렵 나오는 주인공처럼, 먼저 핀 매화가 꽃잎을 떨굴 때쯤 피기 시작한다.
  
 선암사 홍매. 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꽃이 늦게 핀다. 5년 전 봄날 풍경이다.
ⓒ 순천시
  
 품격이 다른 고불매. 장성 백양사에서 핀다.
ⓒ 이돈삼
 
장성 백양사 고불매도 기품 있다. 수령 300년 된 나무와 세 갈래로 뻗은 가지에서 고매의 품격을 엿볼 수 있다. 1947년 백양사가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고불매'로 이름 붙여졌다. 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남대학교 대강당 앞에서 피는 대명매는 광주시민과 학생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수령 440년가량 된 매실나무가 분홍빛 겹꽃을 피운다. 온갖 풍상을 겪었지만, 수형이 아름답고 건강하다. 나무는 학교에서 60여 년째 살고 있다.

담양 창평에 살던 월봉 고부천이 명나라 희종황제한테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명매'로 이름붙은 이유다. 고부천의 11대 후손 고재천이 1961년 전남대에 기증했다. 고재천은 당시 전남대 농과대학장이었다.

앞마당엔 홍매, 뒷마당엔 백매
  
 백양사 고불매. 천년고찰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소쇄원에 핀 매화를 띄운 찻잔. 소쇄원 제월당에서다.
ⓒ 이돈삼
 
조선시대 민간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담양 소쇄원 소쇄매도 기품 있다. 소쇄매는 오곡문 앞에서 한아름 꽃다발처럼 이룬다. 분홍매화가 오래 전부터 흙담과 하나된 듯 어우러진다. 제월당 앞마당에 홍매, 뒷마당에 수수한 백매도 핀다.

소쇄원 옆 지실마을에 계당매도 있다. 계당(溪堂)은 송강 정철의 4남 기암 정홍명이 1616년에 지었다. 집앞으로 흐르는 시냇가에 매실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 350년 됐다. 백매를 피우는 나무는 일직선으로 뻗었고, 홍매는 몸을 비틀어 올라 두 갈래로 갈라진다. 느지막이 겹꽃을 피운다.

같은 마을에 와룡매도 있다. 수령 200년 된 나무의 형태가 누워서 춤추는 용을 닮았다. 매화가 주변 돌담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소쇄매, 계당매, 독수정매, 죽림매, 명옥헌매, 하심매, 장전매와 함께 담양8매로 불린다.

해남 대흥사엔 초의매가 있다. 천불전 뒤쪽에서 꽃 피우는 초의매는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 200년 된 백매다. 초의선사가 심은 매실나무가 진도 운림산방에도 있다. 일지매(一枝梅)로 이름 붙여졌다. 대흥사 일지암에 머물던 초의선사가 소치 허련에게 선물한 나무의 2세목이다. 세상 풍파 이겨낸 선비의 고결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운림산방 일지매. 가지가 한쪽으로 뻗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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