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에 울었던 흥국생명 "현대건설 좀 이겨줘"
페퍼저축은행에게 발목을 잡혔던 여자배구 흥국생명이 이제는 열렬히 응원한다. 기적 같은 정규시즌 1위 여부가 페퍼에게 달렸다.
흥국생명은 12일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이겼다. 2위 흥국생명(27승 8패·승점 76)과 1위 현대건설(25승 10패·승점 77)의 차는 1점.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은 나란히 1경기씩을 남겨뒀다. 흥국생명이 자력으로 우승할 수는 없지만, 현대건설 경기 결과에 따라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두 팀의 승점이 같을 경우엔 다승을 따지기 때문에 흥국생명에게도 희망이 있다.
현대를 이겼지만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8일 광주에서 열린 최하위 페퍼저축은행전에서 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 경기를 이겼다면 현대를 꺾으면서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아본단자 감독은 "여전히 지난 경기 생각이 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 오늘 승리를 즐기겠다"면서도 "아쉽긴 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현대건설의 마지막 경기 상대도 페퍼저축은행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압도적인 최하위를 달리다 조 트린지 감독이 경질됐다. 그러나 흥국을 상대로 시즌 네 번째 승리를 따냈다. 이경수 대행 체제로 바뀐 뒤 주포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와 세터 박사랑의 호흡이 좋다. 주장 박정아도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다. 특히 시즌 홈 최종전을 맞아 무료 입장 이벤트를 진행한다.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대로 현대건설은 주축 양효진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아 모마에게 공격이 쏠리고 있다.
흥국생명으로선 페퍼저축은행이 또 한 번 이변을 일으켜주길 바란다. 아본단자 감독은 "우리가 다음 경기(15일 GS칼텍스전)에서 승리한 뒤, 현대건설-페퍼저축은행전(16일)을 지켜보겠다"며 "과일바구니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에이스 김연경은 경기 뒤 취재진에게 "현대건설 우승을 보러 오셨는데 죄송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페퍼에게 지고 광주에서 (숙소인)용인까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힘들었다. 다음 날 훈련 분위기도 안 좋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강하게 선수들을 독려했다"며 "우리가 먼저 승점 3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최근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더라. 야스민과 박정아가 모두 좋다"고 했다.
김연경은 한국배구연맹 SNS를 통해 페퍼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야스민 듣고 있지?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해서 해주셨으면 좋겠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남자부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카드가 12일 현대캐피탈전에서 1-3으로 지면서 우승 축포를 터트리지 못했다. 우리카드(23승 12패·승점 69)와 대한항공(22승 13패·승점 68)도 승점 1점 차다. 대한항공은 14일 KB손해보험, 우리카드는 16일 현대캐피탈과 경기한다. 승점이 같아질 경우 다승, 세트득실률(우리카드 1.519, 대한항공 1.588) 순으로 따진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남녀부 1위가 결정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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