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배상]고민에 빠진 은행권...자율배상? 분쟁조정?

임철영 2024. 3. 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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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분쟁조정기준, 은행권 대부분 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
내부TF를 중심으로 금감원 기준 검토, 예상 배상규모 산정 등 분주
은행권, '배임' 사건 비화·과징금 등 제재불확실성 등 우려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 수용을 두고 금융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은행권은 기준안에 따른 자율배상 수준이 과징금 등 제재와 연계될 가능성이 큰 만큼 신속하게 이사회 논의 안건으로 상정하는 한편 예상 배상총액 산정과 타당성 법률검토 등을 내부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홍콩ELS 관련 내부TF를 중심으로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른 예상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시중은행은 예상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즉시 내부TF에서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해 이사회에 결의 안건으로 회부할 계획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안에 대한 검토를 우선 벌이고 있다"면서 "앞서 설치된 TF를 중심으로 예상되는 배상금를 산정하고, 다각도로 법률검토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 수용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금융당국이 올들어 수차례 '사적화해'를 권고해온데다, 금감원이 당장 4월초부터 대표적인 불완전판매 사례를 중심으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에 속도를 낼 방침이어서 여유를 두고 내부 의사결정를 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자율배상을 결정하고도 금감원의 대표사례 분조위에 가려져 의미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대표사례 분쟁조정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추가 사실조사 및 검토 → 분쟁조정위원회 회부 → 조정결정 통보 → 당사자의 수락 또는 불수락 → 양 당사자 모두 수락시 조정성립 등 절차를 거친다. 통상 약 2~3개월 정도 소요되는 만큼 분조위를 통한 실제 배상은 이르면 6월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은행권은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과 홍콩ELS 가입 사례별 법률검토를 위한 자문계약을 잇달아 맺었다. KB국민은행은 김앤장과 화우 두 법무법인에 자문을 시작했고 신한은행은 화우, 하나은행은 율촌·세종과 계약을 맺었다. NH농협은행은 세종과 광장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더욱이 자율배상을 택하더라도 홍콩ELS 배상 결정이 '배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가입자에게 배상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결국 판매사의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경영진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ELS 분쟁조정기준안은 굉장히 세부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판매사와 고객 모두를 고려해 케이스별로 접근할 수 있어 양호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가입자별로 워낙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다 보니 전반적인 법률검토는 물론 사례마다 추가적인 법률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부터 진행되는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내려질 과징금 등 제재에 대한 불확실성도 은행권에게는 부담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ELS 판매잔액은 18조8000억원으로 홍콩H지수가 최근 수준을 유지할 경우 금감원이 추정하는 누적 손실규모는 5조8000억원에 이른다. 현행 금융소비자법에 따르면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과징금 부과기준은 판매 금액의 최대 50%까지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속 신용회복지원 시행 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취지인데 배임 이슈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 "제도적으로 참작이 가능하게 돼 있다"고 일축했다.

은행권은 공개된 분쟁조정기준안과 향후 자율배상안에 대한 언급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ELS 등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해 "은행 산업이 앞으로 자산관리 쪽으로 갈 때 고객 선택권이 좁아지지 않도록 유의하고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배상안에 대해서는 "논의의 출발일 뿐이고 앞으로 당국·은행과 소통하겠다"는 입장만 표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기준이 절대적인 게 아닌 만큼 세부사항을 두고도 얼마든지 분쟁가능성이 있다"면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율배상에 나설지가 앞으로 은행권 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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