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왔…습니다" 경북 고교 특별한 입학식
지난 11일 경북 영주시 휴천동 한국국제조리고등학교 강당. 급식실 리모델링 때문에 다른 학교보다 며칠 늦게 열린 이날 입학식에서 낯선 장면이 등장했다.
행사 도중 신입생 90명 가운데 학생 4명이 호명돼 무대에 올랐다. 남학생 2명과 여학생 2명은 외모만 봐서는 다른 학생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기소개를 한국어로 외워 왔지만 긴장한 탓에 모두 잊어버리고 결국 몽골어로 말했다. 통역이 대신 말을 전달해주자 전교생이 환호했다. 이에 몽골 유학생들은 수줍게 웃었다.
“외운 한국어 까먹어 당황…반겨줘 감사”
몽골에서 유학 온 이들 학생은 테물엔(16)·한길(16) 등 남학생과 난딘에르덴(15)·마랄(16)등 여학생이다. 이들은 몽골 현재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옛 수도 하라호름에서 왔다. 난딘에르덴은 “입학식에서 외운 한국어를 까먹어 당황했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줘 너무 고마웠다"라며 "친구들이 도와주면 한국어도 금방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생 외국인 유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12일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경북지역 9개 고교가 올해 외국인 유학생 65명을 선발했다. 해당 학교는 한국해양마이스터고와 의성유니텍고·신라공고·경주정보고·경주여자정보고·명인고·한국철도고 등 8개 직업계고와 자율형 사립고인 김천고 등이다. 외국인 유학생 국적은 인도네시아와 태국·베트남·몽골 등 모두 4개국이다. 선발된 학생은 최근 해당 학교에 입학해 정규 교육과 함께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을 받는다.
올해 처음 입학한 ‘고교 외국인 유학생들’
이들은 무상 교육을 받는 한국 학생처럼 학비를 내지 않는다. 다만, 기숙사비나 체험학습비 등 추가 비용은 국내 학생과 동일하게 부담한다. 경북 지역 특성화고 유학생은 국내 학생처럼 입학 때 연간 장학금으로 72만원을 받는다.
교육청 등 정부나 공공기관 차원에서 정식 입학 전형을 통해 고교 유학생을 유치한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국내 고교에 개별적으로 입학하거나 위탁 교육 형태로 형태로 유학한 외국인 학생은 일부 있었다.
교육자치법에 따르면 시·도교육감이 입학전형기본계획에 외국인 유학생 전형을 포함하면 학교별로 선발할 수 있다. 경북교육청은 2024학년도 입학전형기본계획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경북지역 고교는 입학 전형 요강을 만들고 각국 정부기관과 협약을 맺어 지난해 현지에서 학생을 선발했다.
외국 현지 채용 과정에서 한국 유학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국제조리고등학교는 4명 모집에 40여 명이 몰려, 경쟁률 10대 1을 기록했다. 이들 학생은 면접과 서류 전형 등 3차 과정을 통해 선발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한국이 K-컬쳐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중문화를 보유한 선진국이라는 인식 때문에 유학을 오려는 학생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교육청이 외국인 고교 유학생 선발에 나선 것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차원이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산업 현장의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졸업 이후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계속 머무르는 선순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경북교육청은 내년에도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최근 발표한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수는 올해 513만1218명에서 2026년 483만3026명으로 줄어 500만명 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경북 지역은 학령인구가 2023년 34만6150명에서 2040년 19만2429명으로 44%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경북은 22개 시·군 중 15곳(68%)이 인구 감소 지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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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까지 이어지려면 “비자제도 개선을”
고교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할 조짐이다. 경북교육청에 이어 최근 전북·부산·강원 등이 지자체 차원에서 고교생 유학생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내년에는 전남교육청도 직업계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김종원 한국국제조리고 교장은 “지난해 경북 영주와 인근 지자체 봉화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00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며 “인구가 감소하는 다른 지역 고등학교도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찬주 안동대 교수는 “국내 전체 산업에서 고졸 이하 수준 인력이 필요한 분야가 80%에 이르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하면 산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외국인 유학생은 졸업 후 한국 기업 취업을 희망하지만, 현행 취업비자 제도로는 곧장 취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교 졸업 예정자나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비자가 없어 졸업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비자 발급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김미정 경북교육청 창의인재과 장학사는 “앞으로도 외국인 고교생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들이 국내에 취업할 수 있도록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취업 비자는 대졸자에게만 나온다“며 “취업비자 규제 완화, 해외 사례 등에 대해 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김정석 기자, 최민지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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