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품위 있는 노후, 집에서 맞는 죽음
정든 집에서 임종하길 원해
'재가서비스' 부족으로
집에서 돌봄 가능한 노인들도
요양시설로 내몰리는 상황
내년이면 초고령 사회 진입
노후돌봄 최우선 과제 삼아야
‘죽음, 그리고 죽음의 정숙함이야말로 우리 미래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하며 모두에게 평등하다.’(프리드리히 니체)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미래다. 우리 모두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의 마지막을 맞고 싶어 한다. 요양시설의 학대와 방임도 아닌, 자식들 등골 빠지게 하는 간병비 부담에서도 자유로운,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싶은 게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오래 살던 정든 집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사망자의 75% 이상이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에서 숨을 거뒀다. 젊은 시절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들도 늙고 병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거추장스러운 환자가 돼 버린다. 삶의 끝자락에서 많이들 요양원 같은 시설로 보내진다. 자식들은 부모 간병비에 소득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는다. 이토록 힘들고 비참한 노후는 안 된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000만명이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집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정리할 수는 없는 걸까.
요양원에 대해 들려오는 얘기는 대체로 흉흉하다. 입소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치매 환자가 숨졌다. 배변이 범벅된 기저귀를 덧대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휠체어에 몸을 묶어놓고, 툭하면 때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죽하면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릴까.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곳이라는 인식도 상당하다. 그런데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10명 중 7명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건강은 괜찮은데 단지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원하지도 않는 시설에 들어갔다는 건데, 어떻게 된 일일까.
우선 보험체계부터 들여다보자. 건강보험과 달리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질병이 아닌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보험이다. 두 개의 목적이 다르다. 장기요양보험 체계에서 정부는 요양원에 들어갈 사람, 집에서 돌봄을 받을 사람을 구분해 각각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재원을 써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장기요양보험이 출범할 때 요양원과 기능이 비슷한 요양병원을 장기요양보험 체계로 끌어들이지 않고 건강보험에 내버려뒀다. 요양원은 치료가 아닌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다. 원칙적으로 노인장기요양등급에서 전체 5등급 중 건강기능 상태가 나쁜 1, 2등급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요양원보다 의료 서비스가 추가돼 더 중한 환자가 가야 할 것 같은 요양병원은 등급과 무관하게, 아예 등급이 없어도 갈 수 있다. 입원이 쉽다. 그러다 보니 2008년 장기요양보험이 출범할 때만 해도 1만 병상 정도이던 요양병원은 지금 20만 병상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확 커졌다.
반면 요양보호사가 직접 집을 찾아가 목욕 청소 세탁 등을 도와주는 ‘재가(집)서비스’는 시간이 길지 않아 이용에 한계가 있다. 장기요양보험 1등급 기준 요양보호사의 돌봄 서비스는 하루 최대 4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절반 수준이다.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노인에게 4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 8시간은 돼야 실효성이 있다. 요양보호사의 재가서비스 부족이 집에 있어도 될 노인까지 시설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요양원에 가야 하는 건 당사자인 어르신이나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건강 상태가 똑같다면 집에 있든 입원하든 시설에 들어가든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공정하다. 지금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는 게 집에 있는 것보다 배 이상 지원을 받는다. 그러니 재가서비스 시간과 종류를 늘리는 게 답이 될 수 있다. 요양보호사뿐 아니라 의료진의 왕진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부 정책의 방점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집에 있어도 되고, 집에 있고 싶은 사람은 굳이 시설로 갈 필요가 없도록 살던 집에서 충분히 돌봄받을 수 있도록 하자. 여기에 더해 요양원 폭력과 방임 실태, 치솟는 간병비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 할 최우선 순위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내 부모의 문제이며 동시에 나의 일이고, 나아가 자식 세대의 과제다. 품위 있는 노후, 집에서 맞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를 위한 정책 논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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