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도널드 트럼프와 빅토르 오르반

전웅빈 2024. 3. 1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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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애머스트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실망감(바이든 승리 시 50%, 트럼프 46%)을 가장 많이 표출했다.

상대가 이길까 봐 무섭다는 유권자 심리는 이번 대선이 미국 사회의 거대한 변혁을 놓고 벌이는 승부임을 암시한다.

트럼프 의제는 그가 지난 15일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으로 초대한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의 승리 의제와 빼닮았다.

트럼프는 그런 오르반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자 보스"라고 흠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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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워싱턴특파원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애머스트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실망감(바이든 승리 시 50%, 트럼프 46%)을 가장 많이 표출했다. 두려움(38%, 41%) 슬픔(36%, 35%)이 뒤따랐고, 네 번째로 안도(각 35%)가 꼽혔다. 상대방이 패배해서 다행이라는 이 감정은 행복(27%, 28%) 자부심(13%, 19%) 등 희망의 마음을 앞섰다. 이런 감정은 예상대로 극히 양극화돼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유권자는 상대의 승리를 실망(75%, 83%)과 공포(71%, 69%)로 여겼다.

상대가 이길까 봐 무섭다는 유권자 심리는 이번 대선이 미국 사회의 거대한 변혁을 놓고 벌이는 승부임을 암시한다. 바이든은 ‘미국 영혼을 위한 싸움’이라고 부르며 ‘국가를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과 미래로 나아가려는 세력 간의 경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 전역에 퍼진 ‘아메리카 퍼스트 민족주의’와 그에 대한 신자유주의 세력의 저항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민자에 대한 반감은 전 세대와 계층으로 침투 중이고, 우크라이나 지원이 너무 많다는 고립주의 견해도 지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모두 트럼프가 주도한 것들이다.

트럼프 의제는 그가 지난 15일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으로 초대한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의 승리 의제와 빼닮았다. 오르반은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경제로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총리가 됐다. 당시 반(反)유럽연합(EU)을 표방한 민족주의 극우 정당 요비크와 연합했다. 선거 승리 후 기본권 축소, 사법부 권한 제한 등을 담은 개헌에 성공했고, 국가 정신을 해치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보도를 한 언론을 규제하는 미디어법도 개정했다. 오르반이 독재자 별명을 갖게 된 건 이때부터다.

오르반은 그러나 2014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그리고 그해 7월 루마니아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유주의에 기초한 사회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국가는 반자유주의 민주국가”라는 문제의 연설을 했다. 그는 반대세력을 외국 이익을 위하는 정치 활동가라고 몰아세웠다. 유럽 사회를 흔들고 있던 이민자 문제에 대한 반감을 확대하기 위해 “이민자는 유럽의 독(毒)”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나라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발언도 했다. 오르반은 EU에선 왕따 취급을 받았지만, 내리 4연임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그런 오르반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자 보스”라고 흠모했다.

트럼프의 인기는 미국도 헝가리처럼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시골 복음주의 기독교인, 더 보수화한 공화당원, 65세 이상 노령층으로 구성돼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개신교계 보수 단체 ‘신앙과 자유(Faith & Freedom)’는 “이민자가 미국 혈통을 오염시킨다”고 말한 트럼프 선거운동을 위해 6200만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

‘예수와 존 웨인’의 저자 크리스틴 코베스 두 메즈 칼빈대 역사학 교수는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1960~70년대 공산주의와 페미니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남성 우월주의 보호자를 받아들였다.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용인하고 무자비한 권력 행사를 정당화했다”며 “트럼프 리더십 스타일은 이들 이상형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사법리스크는 그래서 지엽적인 문제다. 트럼프 꿈이 이뤄지면 민족주의 미국이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지더라도 밑바닥에서 확대되고 있는 아메리카 퍼스트 열망은 사그라지기 힘들어 보인다.

전웅빈 워싱턴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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