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시선] 폐지할 건 여성가족부 아닌 여성 불평등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에 나서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달 김현숙 전 장관이 물러난 뒤 후임을 공석으로 둔 채 차관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여가부 실·국장급에는 다른 부처 출신 공무원들을 임명할 계획이다. 윤 정부는 4·10 총선에서 승리하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부에선 여가부가 시대적 소임을 다 했기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가부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오며, 사회적 갈등을 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가부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건 사실이다. 여가부는 2011년 청소년의 심야 시간대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해 청소년들의 반발을 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서는 여가부가 젠더 갈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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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소득 격차 세계 꼴찌 수준
노동시장 차별에 최악의 저출생
여성 평등 위해 여가부 할 일 많아
」
윤 정부는 여가부가 없어지면 여가부 담당 업무들을 다른 부처에 배당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여성 일자리 문제는 고용노동부, 청소년과 여학생 문제는 교육부와 지자체, 여성 보건과 아동 양육 문제는 보건복지부, 성범죄 문제는 경찰·검찰 등에서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정말 시대적 소임을 다해 없어져도 될 조직이 됐는가. 한국의 직장과 사회에서 성별 격차가 사라지고, 출산과 보육에서 남녀가 공평하게 책임지고 있는가. 현실은 정반대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6일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의 노동참여율, 남녀 고등교육·소득 격차, 고위직 여성 비율, 육아 비용, 남녀 육아 휴직 현황 등의 지표를 반영해 2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수를 산정한다. 2013년 지수를 처음 발표한 이후 한국은 12년 연속 꼴찌다.
한국의 남녀 소득 격차는 31.1%로, 지난해에 이어 29위였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남성보다 17.2%포인트 낮아 27위를 기록했다. 관리직 여성 비율(16.3%),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12.8%) 모두 꼴찌에서 둘째였다. 이는 한국 여성이 다른 선진국 여성보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겪고 있고, 노동시장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며, 사회적 권한 역시 작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지수에서 아이슬란드·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1~4위를 차지했다.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는 세계 최악의 저출생율(지난해 4분기 기준 0.65)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고용 불안정, 저임금, 성차별적 채용 등 복합적인 차별 구조에 놓여있어 이를 해소하는 것이 실질적인 저출생 대책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남녀 고용률 격차는 20대에 2~3%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출산·육아를 경험하는 30대에 들어서면 30%포인트 수준으로 벌어진다. 지난해 기준 30대 남성 고용률은 90%에 육박하지만, 30대 여성 고용률은 54.6~64.4%에 그쳤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남성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는 반면 여성은 25~29세 사이에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가 30대에 하락하고, 40대 이후에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남녀의 비정규직 규모 차이도 높다. 지난해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남자 정규직은 70.2%, 비정규직은 29.8%이다. 반면 여자 정규직은 54.5%, 비정규직 45.5%로 나타났다. 또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중은 30대 초반부터 지속해서 증가하지만, 남성의 비정규직 비중은 50대에 들어선 뒤에야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적 인식·문화 등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점이 저출생이라는 사회문제로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임금·성별 격차 등은 정부가 노력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여가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 시대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증가는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게 하는 건 여성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발전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예전에 비하면 여성 인권이 개선됐다지만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선진국과 엄청난 격차가 있는 여성 평등을 증진하려면 이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인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는 건 현실을 무시하고, 세상 절반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이다. 폐지해야 할 건 여가부가 아니라 여성 불평등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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