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이재명식 시스템 공천
공천 잡음이 일 때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스템 공천’을 강조한다. 2016년 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처음 도입해 물려준 전가의 보도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비명횡사’ 논란에 대해 “이전, 그 이전 총선에서도 이미 적용했던 공천 룰이다. 마음대로 장난칠 수 없다”며 “다 시스템에 따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해킹이라도 당한 걸까. 시스템은 족집게처럼 비(非)이재명계를 속속 걸러냈다. 홍영표·기동민 의원은 일찌감치 컷오프(공천 배제)됐고, 강병원·전혜숙·박광온·윤영찬·정춘숙·김한정 의원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가까스로 결선에 진출했던 박용진 의원마저 끝내 탈락했다. 민주당의 오랜 당직자들은 이번 공천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변화에 주목하라고 귀띔한다.
우선 의원평가 방식의 변화다. 각 의원실이 제출한 활동 자료와 동료 의원의 다면평가, 지역구 여론조사를 기계적으로 합산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평가위원의 ‘정성평가’ 항목을 22%로 늘렸다. 평가위원장엔 친명 색채가 강한 송기도 전북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그러고는 ‘하위 평가자’는 경선 득표수의 최대 30%까지 감산하도록 해 불이익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하위 평가자’엔 비명계가 대거 포함됐고, 이들 대부분이 경선에서 패했다. 과거엔 ‘하위 명단’에 이렇게 비주류만 일방적으로 포함된 적이 없었다. 과거 공천 업무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정량평가로 하면 특정 그룹에만 페널티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며 “이번엔 정반대였으니 뒷말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당원·지지층의 변화다. 지난해 6월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은 245만 명인데, 이 중 절반(129만명)가량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 가입했다. DNA의 절반이 이미 바뀌었다. 이들은 여론조사 번호를 미리 공유하고 “수박을 박살 내자”고 서로 독려한다. 서울 강북을(박용진·정봉주)이나 은평을(강병원·김우영)처럼 ‘비명 현역’과 ‘친명 원외’가 맞붙을 때마다 ARS 여론조사 응답률이 치솟은 이유다.
이재명 대표는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을까. 누구보다도 두뇌 회전이 빠른 그가 모르진 않았을 거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정책간담회를 마친 뒤에도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변화해야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다”며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변화’를 택했다는 뜻이다. 그의 선택 또한 4월 10일엔 국민평가를 받는다. 그게 대한민국 시스템이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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