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30분 야구장 오픈런, 이게 ‘류현진 효과’
“와, 벌써 사람들이 저렇게 줄을 선 거예요? 류현진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시범경기가 열린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경기 시작 3시간 전인 오전 10시쯤 손님을 싣고 이곳에 도착한 택시기사는 야구장 주변 풍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평일 오전인데도 대로변 상점가까지 긴 줄이 이어져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했다.
팬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이유는 간단했다. 12년 만에 금의환향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4)이 이날 복귀 후 처음으로 KBO리그 공식 경기에 출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대전구장 등판은 2012년 10월 4일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4172일 만이었다.
평일 시범경기는 관중이 무료로 선착순 입장한다. 더 좋은 자리에서 류현진을 보려는 한화 팬들의 발걸음이 새벽부터 이어졌다. 그 대기 줄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회사원 신우재(26)씨는 “오전 5시 30분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류현진 선수가 던지는 모습을 중앙 테이블석에서 보고 싶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서둘렀다”고 털어놨다. 대전에 사는 신씨는 류현진을 직접 보려고 하루 휴가까지 냈다고 했다.
신씨는 이날 새로 산 류현진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지켜봤다. 최근 한화가 야구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류현진의 오센틱(선수들과 동일한 제품) 유니폼은 초도 물량 200장이 하루 만에 동났다. 레플리카(복제품) 유니폼도 하루 평균 200벌씩 팔리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이례적인 판매량이다. ‘류현진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비가 오락가락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3500명의 팬이 입장했다. 돌아온 에이스가 흰색 한화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 팬은 12년 만에 대전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류현진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기도 했다. 류현진은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함성이 커서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재미있게 던졌다”며 “시범경기인데도 팬들이 많이 찾아오시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기다려주시는 걸 봤다. 나도 그 마음에 최대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KIA는 이날 류현진을 상대하기 위해 베스트 라인업을 내세웠다. 이범호 KIA 감독은 경기 전 “류현진은 마운드에 서 있기만 해도 선수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투수”라며 “주전 타자들에게 류현진의 구종과 구질을 가장 먼저 체크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류현진은 1회 1사 후 이우성에게 우월 2루타, 김도영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고 1실점 했다. 그러나 그게 위기의 전부였다.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이 증명한 류현진의 날카로운 제구력에 양팀 선수들의 감탄사가 쏟아졌다.
3루수 자리에서 류현진의 투구를 직접 본 팀 후배 노시환은 “내가 본 모든 투수 중 제구가 가장 좋았다. 모든 구종을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지는 능력을 갖추고 계셔서 수비할 때도 정말 편했다”고 했다. 류현진을 상대로 유일한 적시타를 친 KIA 김도영도 “값진 경험을 했다”며 “모든 구종이 완벽했다. 특히 제구력이 워낙 뛰어났고, 직구도 구속에 비해 힘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류현진의 이날 성적은 4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1실점. 최고 구속은 시속 148㎞까지 나왔고, 직구 평균 스피드는 시속 144㎞였다. 류현진은 “생각보다 스피드가 잘 나왔다. 체인지업 제구가 조금 흔들린 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만족한다”며 “앞으로 투구 수와 이닝 수를 늘리면서 주 무기인 체인지업을 조금 더 보완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류현진이 4이닝 동안 구위와 제구 모두 안정감 있는 투구를 보여줬다”며 흡족해했다.
류현진은 오는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부산 시범경기에서 마지막 실전 점검을 할 계획이다. 이날 투구 수를 최대 80구까지 끌어올린 뒤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대전=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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