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갑작스런 지주사 신설…계열 분리 속도?
재계 31위 효성그룹이 지주사를 추가로 신설하기로 하면서 재계 눈길이 쏠린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삼남 조현상 부회장의 ‘형제 공동 경영’ 체제에서 ‘각자 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어떤 식으로 계열 분리 수순을 밟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조현상 주도 첨단소재 사업 이끈다
효성그룹 지주사 ㈜효성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효성첨단소재,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효성홀딩스USA, 효성토요타, 비나물류법인(베트남) 등을 인적분할해 신규 지주사 ‘효성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신설 지주사 경영은 조현상 부회장이 총괄한다.
효성은 존속법인이 신설법인을 자회사로 두는 ‘물적분할’이 아니라 존속법인 주주들이 일정 비율로 신설법인 지분을 나눠 갖는 ‘인적분할’ 방식을 택했다. 기존 지주사 ㈜효성은 조현준 회장이 그대로 대표를 맡는다. ㈜효성에는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효성ITX, 효성TNS 등 주요 계열사가 남는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기준으로 ㈜효성 0.82 대 효성신설지주 0.18이다. 지난해 ㈜효성 매출은 3조4366억원을 기록했다. 분할 시 존속법인 효성의 매출 규모는 약 1조8000억원, 신설지주사 매출은 약 1조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효성그룹은 오는 6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 분할 안건을 승인한다. 7월부터 두 개 지주사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상 부회장과 함께 안성훈 효성중공업 부사장이 신설지주사의 사내이사 겸 각자 대표이사를 맡는다. 신덕수 효성 전무도 사내이사로 합류한다.
효성이 갑작스레 지주사 분할에 나선 배경은 뭘까.
혹여 발생할 수 있는 ‘형제 갈등’ 불씨를 끄고 조현준, 조현상 형제의 독립 경영 안착을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지주사별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신속한 의사 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효성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형제의 난’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직원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혐의로 고발한 데서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수년간 법정 분쟁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후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그룹을 떠났지만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이후 효성은 2017년 조현준 회장이 부친 조석래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오너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2018년에는 지주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형제 공동 경영을 이어갔다. 지주사 효성과 더불어 섬유·무역 부문인 효성티앤씨, 중공업과 건설을 담당하는 효성중공업, 첨단 산업 자재를 생산하는 효성첨단소재, 화학 부문인 효성화학 등 4개 사업회사로 분할됐다.
맏형 조현준 회장은 섬유, 중공업, 건설, 화학 부문을, 삼남 조현상 부회장은 첨단소재를 맡는 등 주력 분야를 명확히 구분 지었다. 지분 구조를 봐도 조 회장은 효성티앤씨 지분 14.59%를 보유했지만 조 부회장은 지분이 전혀 없다. 반대로 효성첨단소재는 조 부회장이 지분 12.21%를 보유한 데 비해 조 회장 지분은 전무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추후 나타날 수 있는 경영권 분쟁 여지를 없애면서 후계자의 경영 능력을 판단하겠다는 조석래 명예회장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故 조홍제 창업주가 설립한 효성그룹은 앞서 2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도 계열 분리를 거친 바 있다. 1980년 그룹 계열 분리로 기존 효성그룹은 첫째 아들인 조석래 회장이 이어받았고, 한국타이어그룹(현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양래 회장 몫으로 돌아갔다.
“효성 ‘형제의 난’ 파장이 상당했던 만큼 오너 일가들은 더 이상 불미스러운 사태가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이번 지주사 분할은 효성과 사촌 관계인 한국타이어그룹 오너 형제가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인 점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6년간 공동 경영이 잡음 없이 안착한 만큼 더 늦기 전에 ‘각자 경영’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조현상, 탄소섬유 등 성장동력 발굴
신설지주사를 맡는 조현상 부회장은 효성첨단소재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조 부회장은 2000년 효성그룹에 입사한 후 첨단소재의 전신인 산업자재PG장, 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부터 효성첨단소재의 사내이사를 맡으며 책임 경영에 나섰다.
효성첨단소재는 타이어 형태를 잡아주고 내구성을 보강하는 섬유 재질의 핵심 소재 ‘타이어코드’ 세계 1위 업체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주력 시장인 북미, 유럽 수요가 줄어든 만큼 타이어코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효성첨단소재는 최근 SK케미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함께 순환 재활용 페트(PET)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전용 타이어 ‘아이온(iON)’을 내놓기로 했다. 재활용, 재생 등 지속 가능한 원료 비중이 45%에 달하는 타이어다. 이 과정에서 효성첨단소재의 타이어코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기차는 400㎏ 넘는 배터리를 싣고 다니는 만큼 무게를 버티기 위해 가볍고 내구성이 우수한 타이어코드가 각광받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친환경 타이어 시장 규모는 지난해 336억8000만달러에서 2033년 857억9000만달러로 연평균 9.8%씩 성장할 전망이다. 여세를 몰아 신흥 시장인 인도 타이어코드 생산공장 투자도 늘릴 계획이다. 조현상 부회장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인도를 타이어코드 핵심 생산기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재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효성첨단소재의 본업인 타이어코드 수요가 점차 회복되는 모습이다. 이번 지주사 분할을 통해 효성첨단소재와 효성화학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경영난에 빠진 계열사 지원 등 재무 구조 관련 우려가 종식됐다는 점도 호재”라고 말했다.
조현상 부회장은 탄소섬유도 신성장동력으로 키운다는 밑그림을 그린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무게가 4분의 1 정도로 가볍지만 강도는 10배 이상 강해 자동차 부품, 고압용기 등에 주로 쓰인다. 2013년부터 탄소섬유를 생산해오면서 연산 1만1500t 생산능력을 갖췄다. 향후 1조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생산능력을 2028년 2만4000t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조 부회장이 이끌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이 회사는 스토리지, 정보통신기술(ICT), 클라우드 사업 등을 통해 디지털 전환(DX),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AI 연산 환경과 고성능 데이터 처리, AI 솔루션을 제공해 ‘데이터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포부다. 이와 함께 비나물류법인을 활용해 베트남 등 글로벌 물류 사업을 키우는 데도 힘쓸 계획이다.
장남 조현준 회장은 효성그룹 핵심 계열사 중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 3개 회사를 맡는다.
이 중 핵심 회사는 효성티앤씨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영업이익이 각각 7조5269억원, 213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5.3%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72.7% 증가했다.
효성티앤씨는 스포츠 의류 등에 쓰이는 합성섬유 스판덱스 부문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30%가량을 차지하는 독보적인 1위 기업이다. 전 세계 스판덱스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부터 효성티앤씨의 스판덱스 가동률도 90%를 넘어섰다.
효성중공업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578억원으로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무엇보다 미국 시장 분위기가 살아났다. 효성중공업의 미국 테네시 멤피스 공장 ‘효성HICO’ 법인의 지난해 매출은 8500만달러 수준으로 전년(4670만달러)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붐이 분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전력 소모가 막대한 AI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향후 전력기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애물단지 계열사 효성화학이 경영난에 처한 점은 변수다. 효성화학 부채비율은 3474.7%, 차입금 의존도는 78.6%에 달한다. 실적도 불안한 모습이다. 효성화학은 지난해에만 1888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이번 지주사 신설 이후 존속지주 산하 기업의 연 매출액은 약 19조원, 신설지주 산하 기업 매출은 7조원으로 존속지주 계열 매출이 훨씬 높다. 다만 효성화학 경영난으로 수익성은 신설지주 산하 기업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효성화학이 경영난에 빠지자 지주사까지 나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자금 지원을 했는데 그럼에도 경영 여건이 좋아지지 않으면 조현준 회장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형제 지분 정리해야 계열 분리 마무리
효성이 신설지주사를 설립하기로 했지만 아직 각자 경영 체제가 안착된 것은 아니다. 향후 두 지주사가 각각 이사진을 꾸린 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서로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완전한 계열 분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두 형제가 독자 경영하던 계열사를 포함해 효성그룹 계열사 54곳이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계열 분리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두 형제가 보유한 ㈜효성 지분은 조현준 회장 21.94%, 조현상 부회장 21.42%로 큰 차이가 없다.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 방식을 택한 만큼 효성 지분 21.94%를 쥔 조 회장이 효성신설지주 지분 21.94%도 자동으로 갖게 된다. 조 부회장도 마찬가지로 효성과 효성신설지주 두 회사 지분을 각각 21.42%씩 보유하는 구조다.
결국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형제가 서로 보유한 지분을 깔끔히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분 맞교환 방식이 거론된다. 조 회장은 효성신설지주 지분(21.94%)을 조 부회장에게 내주는 대신, 조 부회장이 보유한 효성 지분(21.42%)을 가져오는 식이다. 다만 두 회사의 분할비율이 0.82 대 0.18로 큰 차이가 나는 만큼 단순 교환보다는 장내 매각이나 개인 간 블록딜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LG-LX그룹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도 구광모 회장과 구본준 회장이 비슷한 방식을 택했다. ㈜LG 지분 7.72%를 보유한 구본준 회장은 이 중 4.18%를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구광모 회장 등이 보유한 LX홀딩스 지분 32.32%를 약 3000억원에 매수했다. 덕분에 기존 7.72% 지분을 보유한 구본준 회장의 LX그룹 지배력은 곧장 40%로 뛰었다. 효성 오너 일가가 어떤 방식으로 지분 관계를 해소할지는 효성신설지주 재상장 후 시장 가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부친 조석래 명예회장이 보유한 ㈜효성 지분(10.14%)이 어디로 이동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두 형제에게 균등 배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혹여 한쪽에 몰아줄 경우 경영권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수년 전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가 회사를 떠난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또다시 지분을 요구하는 등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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