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문학 중심 인물로 기억되길…" 박목월 미발표 시 대거 공개

이종길 2024. 3. 12. 19: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작노트 사후 46년 만에 모습 드러내
장남 "새로운 시도, 미발표작에 더 많아"
유작품발간위 "박목월 문학 새로움 돋보여"

"시인인 아버지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살피는 데 필요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문학 거장 박목월(1915~1978)의 미발표 시 290편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부친이 남긴 노트 여든 권에 담긴 1930~1970년대 미발표 시들을 후배 학자들의 도움으로 정리해 공개했다. 사후 4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창작 노트는 박 교수 자택에서 소장한 예순두 권과 경북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보관한 열여덟 권이다. 완성된 형태의 작품만 318편이 쓰여 있다. 기존에 발표된 시들을 제외하면 290편이다.

이날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주제가 다양하며 창작의 변화 과정이 잘 드러난 166편이 공개됐다.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으로 구성된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가 지난해 8월부터 분류·분석해 선별한 것들이다. 박 교수는 "새로운 시도나 시에 대한 실험성이 이번 (미발표) 작품들에 더 많은 듯하다"며 "(아버지가 시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한) 과정도 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뭐하러 했노?' 그러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겁이 난다. (미공개 원고를 생전에) 발표하기 싫어서 하지 않으신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어길 수는 없겠단 생각이 있었다. 아들이기 때문에 문학적 평가를 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했고. 노트를 쓰신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봐왔다. 밤에 (시를) 써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하셨다. 그런 것들이 노트 속에 순서대로 다 나타나 있다. 부친은 생전에 시집을 내는 걸 매우 어려워하셔서 시집도 몇 권 못 내셨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창작 노트는 모친 고(故) 유익순 여사 덕에 온전히 보관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다. 경주, 대구, 서울로 옮겨 다니고 6·25를 맞았고 피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변고도 겪었다"면서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부친의 노트를) 보따리에 싸 가지고 다니셨다"고 회고했다. "시인의 아내로서 잘 보관해야겠다는 일념이셨다. 부친이 작고한 뒤에도 20년 동안 장롱 밑에 잘 넣어두셨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미발표된 시들의 주제는 생활과 일상, 기독교 신앙, 가족과 어머니, 사랑, 제주와 경주, 동심, 시인의 삶 등이다. 1939년작 '모춘(暮春)'은 시어를 선택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노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박목월의 초기 창작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1950년대 후반에 쓴 '폐원'은 박목월이 서울 정동의 돌층계에서 추억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다. 이를 비롯해 '눈물', '1958' 등 동시기에 쓴 시편에는 슬픔과 상실의 정서가 물들어 있다. 묶음에는 '콩꼬투리' 등 완성된 형태의 동시 약 서른 편도 있다. 박목월은 동요로 널리 알려진 '얼룩송아지' 등 많은 동시를 남긴 바 있다.

유작품발간위는 "시의 산문적 형식, 역사적 격변기인 해방과 전쟁, 종군문인단 활동, 조국과 미래를 위한 희망, 내면적 슬픔과 상실의 실체 등이 이번에 발굴된 작품에서 나타난 박목월 문학의 새로움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 미디어와 접목해 시 문화의 대중화를 이루겠다"며 "윤필(潤筆) 시의 원본성이 훼손되지 않고 문화유산으로서 후대에까지 널리 보존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연구를 거쳐 육필 노트를 공개하고, 박목월의 문학세계를 알리는 활동을 다각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박 교수는 "부친은 전 생애가 시에 얽히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해방 뒤 암흑기에서 시작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한국 현대 시문학 1세대의 중심적 인물임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목월은 '나그네', '청노루', '이별가', '윤사월' 등을 남긴 한국 시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서정시인이다.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를 많이 썼다. 해방 직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펴내 청록파 시인으로 불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