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충격적 대화... 윤 대통령은 본인이 쓴 글 기억할까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9일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시장 내 한 과일가게를 방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비싸서 못 가져와요. 도매 시장도 좋은 건 한 송이 1만 5000원이 넘는데 얼마에 팔 수 있겠어요? 못 팔면 재고되고... 그나마 수입 과일이 싸요"
새벽마다 주차장 한쪽에서 야채와 과일을 파는 아저씨는 샤인 머스켓을 찾는 손님에게 도매시장에서도 날마다 과일값이 오른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너무 오른다. 딸기는 한 팩에 8000원이고, 청양고추는 100g에 2000원이라고 한다. 고추를 조금 담았다 생각했는데 3000원, 세어보니 18개다. 그나마 저렴한 것 몇 가지를 담아도 2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설 명절 지나면 나아질 거라던 과일과 야채값이 오히려 더 올랐다. 서민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날마다 두렵다. 대체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살라고 경제도 물가도 이 모양인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1~2월 식료품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7% 올랐다. 채소·과일 등 55개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 급등했다. 지난달 과일 물가지수는 38.3% 올라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또한 통계일 뿐 현실에서의 절박함은 더 크다. 사과 하나에 만 원, 대파 한단에 7000원. 겪어보지 못했던 가격이다. 더 절망적인 소식도 있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나고, 이를 증명이라고 하듯 국제 유가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최근의 물가상승과 관련, 특히 서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품목들의 가격 급등 현상과 관련하여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문재인 정부는 서민에게 중요한 식료품이나 생활물가 상승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가격이 오른 후에서야 황급히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11월 15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문재인 정부, 돈 뿌리기 그만하고 물가 대책에 주력하십시오>라는 장문의 글을 SNS에 올려 문재인 정부 경제 실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성 돈 뿌리기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이때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고도 했다. '코로나 지원금' 등이 물가를 끌어 올리고 나라 살림살이를 위태롭게 한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줄기차게 이어온 경제 실정 논리였다.
돈풀기 정책보다는 집권 2년 동안 긴축재정으로 국민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한 윤석열 대통령.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의 고통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문재인 정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한 듯하다. 생활 물가 상승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황급히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고 나무랐던 윤석열 후보였다. 하지만 집권 3년 차 윤석열 정부는 물가고를 미리 대비하지도 못했고, 이미 오른 물가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이렇게 직격했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서민의 삶을 위협합니다.' 그 말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되돌려 주고 싶은 요즘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은 서민의 삶을 위협합니다'라고.
19차례 민생 토론회를 열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이 가장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는 없다. '돈 뿌리기 포퓰리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물가가 오르냐' 묻는 참석자도, 물가 대책을 어떻게 세우겠다는 설명도 없다. 물가 관리는 민생 안정의 기초다. 소득 하위 20% 국민들은 식비가 가처분소득의 절반을 넘고 있다.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위태로운 국민들의 삶에 공감도, 해결 의지도, 대책 마련도 내비치지 않는 민생 토론회. 이러니 외상으로 표 구걸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관권선거라고 눈총을 받는 것이다.
총선이 30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이나 물가고를 해결하라는 주장은 언론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주가조작 의혹도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벌써부터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획득을 넘어 압승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떠돈다.
그러나 선거는 유권자인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선택이다. 사과 한 개 만원이 넘어가는 물가고에도 아랑곳없이 전국을 누비며 '민생 없는 민생 행보'를 이어가는 대통령. 총선의 심판대에 가장 먼저 올라야 할 대상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이다.
▲ 2020년 4월 14일 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옐로카드 선거' |
ⓒ 조선일보 PDF |
"내일 있는 선거는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는 선수(집권 세력)의 퇴장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고 반칙에 대한 옐로카드를 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자리다. 선거에서 패배해도 문 정권은 그대로 있다. 적어도 2년은 그렇다. 다만 더 이상 나라의 경제를 파탄 내고, 안보를 멋대로 재단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좌파 이념 몰이'는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중간 평가의 자리다." (<조선일보>, 2020.04.14. [김대중 칼럼] 옐로카드 선거 중)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하루 앞두고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쓴 칼럼이다. 문재인 정부를 윤석열 정부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글이다.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패한다고 해도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유권자는 공정성을 잃은 법 집행, 폭등하는 물가고, 부자와 기업들에게만 혜택을 집중하는 부자 감세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도 국민도 모두 불행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민을 불행하게도 행복하게도 해줄 수 있는 게 선거다.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를 멈출 수 있는 것도, 가속 페달을 밟게 할 수 있는 것도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김대중 주필은 같은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알 만큼 알아왔다. 매일 보고 듣고 살아왔다. 결론은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경제정책의 잘못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중략) 그는 국민 앞에 어려움을 털어놓고 솔직히 이해를 구하는 인간성을 보여준 적도 없다.' 이 말은 지금 시점에 대입해도 송곳 같은 지적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숱한 실정과 경제 난맥상에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이해를 구한 적이 없다.
결국은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부자 감세, 긴축재정,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 폭등하는 물가고와 멈춰버린 내수 경기... 이대로 살 수 없다면, 그 의사를 보여주는 선택을 하면 된다. 누구도 아닌 국민을 위해서 투표해야 하는 총선이다. 과일이 사치품이 되어버린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를, 그린벨트·군사보호 지역 해제와 같은 뜬구름 잡는 약속과 바꿀 것인지 또한 유권자의 선택이며 권리이자 책임이다. '정치는 왜 이 모양인가?' 이런 하소연은 과거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됐다.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요즘이다. 선택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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