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명 몰리던 '부동산 테크'…이제는 스타벅스 빌딩도 '텅텅'

김원 2024. 3. 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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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향동지구의 한 지식산업센터. 한 개층 60여개 호실 가운데 입주한 곳은 10곳 남짓이었다. 김원 기자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최근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수도권의 신축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를 한푼도 들이지 않고 매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분양자가 분양가의 10~20% 가량인 계약금까지 포기하고 매물로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남은 잔금은 모두 사업자대출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 이자가 웬만한 사무실 임대료보다 저렴하다"는 말에 매물을 보러갔지만 A씨는 결국 매수를 포기했다. 그는 “입주를 시작한지 몇개월이나 지났지만 생각보다 공실이 너무 많았다”고 설명했다.

고금리 등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지식산업센터와 같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과잉 공급’에 따른 공실 문제가 심각하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절 아파트에 집중된 겹규제를 피해 시중 유동자금이 지식산업센터·상가·오피스텔·생활형숙박시설 등 수익형 상품 분양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청약에 수만명 몰렸고, 수천만원의 전매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것도 예사였다.

김경진 기자


과거 모델하우스 주변을 서성이던 이른바 ‘떴다방’도 유입됐다. 이들은 청약 당첨자에게 프리미엄을 붙여 전매해준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와 달리 보유에 따른 규제가 거의 없는 데다 분양가의 최대 90%까지 대출을 해주면서 지식산업센터가 일종의 투기 상품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시행·건설사들도 수익이 기대되니 공급을 늘렸다. 지난달 기준 전국에 공급된 지식산업센터(설립승인 기준)는 1548곳으로 집계가 시작된 2020년 4월(1167곳) 이후 381곳이 늘었다.(한국산업단지공단)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택지지구 개발시 지자체가 주거와 산업이 결합된 자족기능을 확보한다며 지식산업센터 등을 지을 수 있는 자족용지를 수요 예측없이 과도하게 요구한 영향”이라며 “최근 공실률이 50%를 넘는 남양주 다산·별내, 구리 갈매, 고양 향동 등 수도권 택지지구에 지식산업센터 과잉 공급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경기 고양시 향동의 한 지식산업센터 1층의 빈 상가에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원 기자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자 공실이 대거 발생했다. 실제 12일 방문한 경기 고양시 향동의 한 지식산업센터의 1~2층 상가는 텅 비어있었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바로 옆 지식산업센터의 11층에 올라가보니 62개 호실 가운데 실제 입주한 건 10여곳에 불과했다. 향동 택지지구에만 분양이 끝난 지식산업센터가 7곳이며 이 중 4곳이 준공됐다. 이곳의 한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은 60대 B씨는 “노후자금에 대출까지 더해 3년 전 3개 호실을 한꺼번에 계약했다”며 “아직 임대인을 구하지 못해 대출이자만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임대에 애를 먹으니 사려는 사람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서울 지식산업센터 거래액은 6000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2021년 거래액 1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60% 감소했다.(알스퀘어) 경매는 급증했다. 지난해 경매 시장에 나온 지식산업센터는 688건으로 2022년 403건에 비해 70%나 늘었다.(지지옥션)

지식산업센터와 함께 각광받던 상가 공실도 심각하다.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2년 4분기(10~12월) 6.4%에서 2023년 4분기 7.3%로 증가했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도 이 기간 13.2%에서 13.5%로 높아졌다.(한국부동산원)

세종시 금강 변의 한 상가에 매매, 임대 전단이 붙어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특히 상가가 과잉공급된 세종시, 동탄·위례·미사 등 수도권 신도시, 택지지구 등에서 공실률이 높다. 최근 방문한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 앞 한 복합상가의 경우 1층에 스타벅스가 입주할 정도로 입지가 뛰어나지만 2층 이상에는 공실이 넘쳐나고 있다. 이 건물 시행사 관계자는 “임대료를 일정기간 받지 않는 렌트프리 등으로 임차인을 모으고 있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구석상가 등의 분양이 쉽지 않다”며 “그래도 세종시 등과 비교하면 동탄은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세종시의 지난해 4분기 상가 공실률은 23.9%로 같은 해 3분기 공실률(25.7%)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상가 공실 역시 과잉 공급이 주요 원인이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신규로 공급된 상가는 10만4978실로 연평균 3만실이 넘었는데, 2020년 이전에는 연간 2만여실 내외였다.(부동산R114)

김경진 기자


이들 수익형 상품이 건설사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던 서울 성수동 현장도 지식산업센터를 짓는 사업이었다. 이처럼 지식산업센터로 인허가를 받고도 미분양 우려 등으로 자금 조달을 못해 착공이 지연된 사업장도 여럿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부동산 시장에 돈맥경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필수재(財)인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선택재인 수익형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향후 3기신도시에서도 지식산업센터, 상가 등의 과잉 공급 문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합수 교수는 “계획된 3기신도시 자족용지 비율이 13.8%”라며 “자족용지, 상업용지 등을 공공주택 용지로 전환하는 비율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면 과잉 공급 문제가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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