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파견근로자 지위 인정… 소 제기 12년 4개월 만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에 파견된 근로자들이 '현대제철의 근로자임을 확인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사실상 최종 승소했다.
앞서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회사와 묵시적 근로계약이 체결됐거나 이번 사건 소 제기로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이유로 '현대제철의 근로자임을 확인해달라'는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한 반면, 입사일로부터 2년을 초과해 순천공장에서 계속 근무한 원고들의 경우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회사에 직접 고용 의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피고 회사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는 예비적 청구를 인용했는데, 대법원이 이 같은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11년 11월 23일 160여명의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지 12년 4개월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2일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 회사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근로자파견 성립에 대해 "원심은 원고들이 피고의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돼 피고의 순천공장에서 냉연강판 등의 생산에 필요한 지원공정 업무나 차량경량화 제품 생산공정 업무를 수행한 것이 피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라며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근로자파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2부는 113명의 근로자(4명 1심 도중 소 취하)가 청구한 사건과 또 다른 근로자 51명(3명 1심 도중 소 취하)이 청구한 사건 등 2개 사건을 선고했다. 하급심에서 여러 건의 사건이 병합됐다.
다만 재판부는 소송 진행 도중 사망한 2명의 근로자에 대해서는 소송 종료를 선언하고, 소송 도중 단체협약상 정년(만 60세가 되는 해의 연말)에 도달한 일부 원고들과 직접 고용이 이뤄진 일부 원고들에 대한 부분은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각하했다. 또 회사가 지급해야 할 금전과 관련 통상임금 청구소송에서 확정된 인용금액을 공제한 부분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광주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2심 법원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원고들 중 기계정비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과 일부 전기정비 업무를 맡았던 근로자, 유틸리티 업무(각 공정에서 사용하는 용수, 증기, 압축공기, 질소 및 수소, 냉각수 등을 공급하고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는 공정)를 수행한 원고들에 대한 부분은 파기하고 광주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기계정비 업무는 피고의 생산공정에 밀접하게 연동되는 업무가 아니고, 피고는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정비 작업은 사내협력업체가 담당했기 때문에 피고의 근로자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가 수행한 업무는 어느 정도 구분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원심이 설시한 이유만으로 기계정비 업무를 수행한 원고들이 대상 근무기간 동안 피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하이스코 주식회사는 순천, 당진, 울산에 공장을 두고 냉연강판, 강관, 철강재, 자동차 부속품 등의 제조·판매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고, 원고들이 근무했던 나머지 피고 회사들은 현대하이스코 주식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순천공장에서 담당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협력업체들이었다.
한편 현대제철 주식회사는 2013년 12월 31일 현대하이스코 주식회사의 업무 중 냉연강판 제조 및 판매업 부분을 분할합병했고, 2015년 7월 1일 현대하이스코 주식회사의 나머지 사업부문까지 모두 합병한 후 이 사건 소송절차를 수계했다.
앞서 1심 법원과 2심 법원은 ▲피고 회사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피고 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협력업체들이 근로자들의 인사 및 근태상황에 대한 결정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협력업체의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협력업체들이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따져본 뒤 "원고들은 피고 협력업체들을 비롯한 각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 회사의 사업장에서 피고 회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급심 법원은 원고들을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업체에 파견된 근로자로 볼 수 있는 근거로 ▲원고들을 포함한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은 피고 순천공장의 냉연강판 등 생산과정의 일부라 볼 수 있는 공정에서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면서 피고로부터 작업수행에 관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피고는 상세한 내용의 작업표준 등을 작성해 사내협력업체에 교부했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피고가 정해주는 작업방법, 작업순서, 작업내용, 작업속도, 작업장소를 위반하거나 임의로 변경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점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는 순천공장의 냉연강판 등 생산과정의 흐름과 연동돼 함께 작업이 진행돼야 할 필요가 있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시간과 휴게시간이 피고의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정해지는 등 각 공정별로 피고의 근로자들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사실상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점 ▲피고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인사, 근태상황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고, 사내협력업체가 폐업하고 새로운 사내협력업체가 도급계약을 체결해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실질적인 작업 내용의 변경 없이 기존 근로자를 승계해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등 사내협력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게 업무배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사내협력업체들은 해당 도급업무에 관한 전문성과 기술력이나 업무수행에 필요한 물적 시설과 고정자산을 갖추지 않은 채, 피고 순천공장에서만 사업을 영위했고, 그 대부분은 피고와의 용역도급계약을 위해 설립됐다가 그 계약이 해지된 후에는 곧바로 폐업한 점 등을 들었다.
반면 하급심 법원은 이미 현대제철과의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는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에 대해서는 "원고들은 고용의무발생일(파견근로를 개시한 입사일로부터 2년이 만료된 날의 다음 날) 이후에도 피고 회사가 원고들의 근로를 계속 제공받았으므로 피고 회사와 원고들 사이에 이미 묵시적으로 근로계약이 체결됐거나, 원고들의 이 사건 소장 부본의 의사표시로서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이유로 주위적으로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하나,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게 묵시적으로 근로계약 체결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른 근로자의 권리는 사용자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구할 수 있는 청구권이지 근로자 일방의 의사표시에 의해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는 형성권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따라서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 이미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노조 "재판부 판단 환영"… "불법파견 인정하고 사과하라"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전국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직 지위를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지회는 "오늘 대법원은 현대제철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라고 확정판결했다. 소송이 시작된 지 무려 12년 8개월 만에 대법원 판결 선고를 받은 것이다"라며 "현대제철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차 집단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대제철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 순천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61명은 현대하이스코(현 현대제철) 대상으로 2011년 7월 19일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9월 20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라며 "1심과 2심에서 모두 전원 승소했지만 현대제철은 법원 판결도 모르쇠, 2021년 2월 10일 정부의 직접고용 시정명령도 불복, 교섭이라도 해보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간절한 요구마저도 무시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의 출발이 법치주의라 외치지만 민주노조를 탄압할 뿐 현대제철을 비롯한 대기업의 불법파견 범죄행위는 방관하고 있다"라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바꾸고 노사 법치주의를 말하고자 한다면 현대제철의 불법파견 범죄행위부터 처벌해야 하고 고용노동부 시정명령을 이행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이 끝내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양심 있는 시민단체 및 진보 정치 세력과 함께 투쟁해서 끝까지 우리의 요구를 관철해 나갈 것이다"라며 현대제철을 상대로 불법파견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것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즉각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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