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죽어봐라 아니냐"…서울의대 집단사직 예고에 떠는 환자들
“아침에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사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병원으로 왔어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뇌졸중 환자 박모(83)씨의 말이다. 박씨는 “(집단 사직으로 인해) 혹시 진료가 미뤄지거나 취소될까 봐 처방전을 미리 타 놓으려고 왔다”며 “원래는 당일 처방이 됐는데, 이제 안 된다고 해서 항의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약이 거의 다 떨어져서 10개 정도밖에 안 남은 상태인데 (처방을 못 받아)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18일부터 집단 사직하겠다고 밝힌 이튿날인 이날, 서울대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한목소리로 불안감을 토로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개최한 총회에서 사직을 예고하면서 “응급 및 중환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한 진료단을 구성해 필수의료를 지키겠다”면서도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단계적 진료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환자들은 교수들이 실제로 사직에 나설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80세 어머니의 간 질환이 악화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이모(53)씨는 “어제 교수들 사직 뉴스를 들을 때만 해도 병원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처음 간 2차 병원에서 상태가 안 좋으니 상급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왔다”며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는 의대 증원과 상관없이 일단 의료공백이 생길까 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간암 환자인 최모(80)씨는 “아직은 진료 일정을 조정하진 않았지만, 뉴스를 보고 이런 큰 병원에서 교수님들이 그만두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우려했다. 파킨슨병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김모(40)씨도 “오늘은 정형외과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거라 문제가 없었지만,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사직한다면 걱정이 된다”며 “의료계가 일종의 기득권이라는 점을 이용해 무모하게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공공병원인 보라매병원에 다니는 환자들도 비슷한 걱정을 쏟아냈다. 위암 절제술을 받은 뒤 추적검사를 받으러 내원한 최형식(67)씨는 “교수님들만 믿고 있었는데, 이분들까지 안 나와버리면 환자들은 어떡하느냐”며 “의사들이 증원에 이렇게까지 반대하니까 (정책에) 문제가 있나 보다 싶다가도, 환자를 두고 나간다는 건 너무나 억지스럽다 생각한다. 환자들에게 그냥 한번 죽어봐라, 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말했다.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온 박모(67)씨도 “의사 선생님들이 우릴 신경 안 쓴다고 하는 게 그 어떤 난리보다 더 무섭다.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의사들도 어떤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환자 진료를 봐가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한 황달을 보이는 70대 A씨는 “어제 엑스레이를 찍고 담도암이 의심된다고 해서 입원하러 왔는데 증상이 심해서 불안하다”며 “환자들이야 (증원이) 어떤 게 문제인지 잘 모르지만, 의사가 병원을 떠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에 정부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어머니 폐렴 치료를 기다리던 정만영(58)씨는 “교수들까지 파업한다면 환자들이 많이 불편해지긴 하겠지만, 일단 정부와 대화를 해보고 대책을 안 내놓을 경우 그렇게 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정원을 늘리더라도 순차적으로 늘려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2000명을 한번에 밀어붙이는 식으로 일처리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남수현·문상혁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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