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돕던 선교사 잡아가둔 러…김정은에 주는 푸틴의 '보답'인가
박현주, 이유정, 정영교 2024. 3. 12. 16:45
지난 1월 러시아가 한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는 사실이 러시아 관영 매체를 통해 뒤늦게 공개된 가운데, 해당 한국인이 현지에서 탈북민 지원 활동을 하던 선교사였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러시아가 물심양면으로 자국의 전쟁을 돕는 북한에 주는 '반대 급부'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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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부터 하나씩 까는 러시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12일(현지시간) 수사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체포된 한국인의 실명이 '백광순'(Пэк Кван Сун)이라며 "백 씨가 자신을 작가로 소개하며 국가 기밀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백 씨는 53세로 어린 자녀를 둔 기혼자"라며 "2020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실을 둔 여행사를 운영했다"며 신상을 상세히 보도했다.
전날 "백 씨가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금됐고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고 처음 보도한 데 이어 관련 정보를 하나씩 공개하는 방식이다. 타스통신은 이날 "백 씨의 아내 또한 체포됐지만 풀려나서 한국에 머물고 있다"며 가족 관련 내용까지 전했다.
타스통신은 "백씨의 형사 사건 자료가 '일급 기밀'로 분류됐다"면서도 법원의 비공개 심리에서 나온 내용과 구금·이송 정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러시아 관영매체는 정부와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는데, 당국이 확보한 정보를 언론을 통해 흘리며 외교적 압박 수위를 올리는 식으로 사실상의 '인질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 씨는 지난 1월 중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했고 얼마 뒤 러시아 연방보안국에 체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법원은 비공개 심리에서 백 씨의 구금 기간을 6월 15일까지 연장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현지 공관은 체포 사실 인지 직후부터 변호사 선임, 영사 접견 면담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국내의 백 씨 가족들과도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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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구출 돕던 선교사"
백 씨의 신분과 관련해선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탈북민을 지원해온 선교사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현지 소식통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백 선교사는 최소 10년 넘게 러시아를 오가며 북한 관련 활동과 선교 활동을 했다"며 "러시아 당국이 보기에 국가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할만한 행위가 있었고 나름의 근거를 확보한 뒤 관련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활동하다 추방 당한 경험이 있는 한 선교사는 "북한 당국에 적지 않은 상납금을 내는 외화벌이 노동자들을 딱하게 여기고 이들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백 씨가 북한 노동자들을 구출하는 작업에 관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정보 소식통은 "백 선교사는 71년생으로 오랜 기간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활동하며 북한 노동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극동 지역에서 북한 노동자의 탈북을 지원하는 경우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인사가 중간에 끼는 경우가 많다"며 "간첩 사건의 일환이라는 보도 내용을 고려하면 탈북민 구출과 관련된 사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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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베푸는 푸틴의 보답
이와 관련, 중국이 지난해 10월 탈북민 수백명을 대거 강제북송한 데 이어 러시아도 탈북민 지원을 하던 한국인 선교사를 구금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일종의 '보답'을 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정권이 우려하는 해외 노동자 이탈을 차단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파견 노동자를 통한 외화벌이가 절실한 북한과 극동 지역 개발에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한 러시아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줄 수 있는 비교적 '손쉬운 보답' 중 하나가 탈북민 지원에 관여하던 한국인 선교사 체포였을 수 있다. 북한은 한·미에 전면전을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무기고를 비우며 러시아를 적극 지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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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지원 말라" 경고도
동시에 이는 서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확대를 요구 받는 한국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 있다. 한국이 살상 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깨고 전장에 발을 들일 가능성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러시아가 한국인을 인질로 붙잡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구금해두고 외교적 압박의 수단으로 삼는 건 러시아의 오랜 수법이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의 유력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를 1년 가까이 붙잡아두고 있는데, 이와 관련 지난해 4월 WSJ은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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