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담배연기, 그러려니 해” 흡연에 무뎌지는 아이들 [안전하길(路)②]

임지혜 2024. 3. 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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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주변 금연거리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학원 끝나고 집에 돌아가다 보면 학교 앞에서 담배 피우는 어른을 많이 봐요. 학교 앞은 금연구역이라고 알고 있지만 (흡연자를) 한두 번 본 게 아녜요. 이제는 별생각 없죠.”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김모양)

지난 4일 설레는 개학날, 순수한 눈을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버린 것은 아니지만(비흡연자) 부끄러웠다. 학교 앞을 금연구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 담배꽁초를 학교 주변에 그대로 버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말문이 막혔다.

가방 속 구겨져 있던 비닐봉지를 꺼내 서울 동대문구의 A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땐 이렇게 담배꽁초가 많은지 몰랐다. 학교 담장 아래 메말라 구겨진, 짤막하게 닳아 버려지거나 발길에 쓸려 찢긴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다. 학교 담장을 따라 나무젓가락으로 담배꽁초를 집고 비닐봉지에 열심히 담고 있을 때였다. 교문 맞은편 빌라 앞에 선 한 시민이 담배를 태웠다. 오후 1시 아이들이 교문 앞을 오가는 하교 시간에 학교를 바라보며.

이른 새벽 환경미화원들이 각종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을 수거해 대체로 깨끗했던 통학로 위로 누군가 버리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 불씨가 붙은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학교 주변 금연거리’라는 문구가 곳곳에 보였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근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화단이나 나무 옆은 물론 보도블럭, 빗물받이 등에는 담배꽁초가 박혀 있었고, 구강암, 폐암 등 경고 그림이 그려진 담배갑이 나뒹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거닐며 담배꽁초를 주었다. 비닐봉지에 꽁초가 쌓일수록 묵은 담배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사진=임지혜 기자

겨우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허리와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팠다. 학교 담장 아래 담배꽁초를 발견할 때마다 허리를 굽히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다. 다 주운 줄 알고 일어서면, 눈 앞에 담배꽁초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그만큼 버려진 담배꽁초가 많았다. 우스꽝스럽지만, 아예 쪼그려 앉은 상태로 조금씩 전진하듯 발을 움직이며 담배꽁초를 주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아이들 다니는 학교 앞에서 담배를 왜 이렇게 피우는지. 쯧쯧.”

담배꽁초를 줍던 기자 옆에 선 한동네 주민이 “좋은 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1개 학교 담장 주변만 걸었을 뿐인데 비닐봉지 절반이 버려진 담뱃값과 담배꽁초로 가득 찼다. 꽁초가 쌓일수록 봉투에서 올라오는 묵은 담배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비닐봉지 끝을 꼭꼭 묶고 버릴 곳을 찾았지만, 학교 근처에선 쓰레기통을 찾기 어려웠다. 걸어서 5분여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야 담배꽁초 쓰레기를 버릴 수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니 손가락과 소매에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서울 신촌, 홍대와 같은 번화가를 옆에 둔 학교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 서대문구의 B초등학교 인근은 식당, 술집, 카페가 밀접해 이곳을 찾는 어른들의 흡연 문제가 심각했다. 버젓이 ‘금연거리’라고 적혔지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은 어른들의 담배 연기 사이로 지나다닐 정도라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에 담배꽁초들(빨간 동그라미)이 줄지어 버려졌다. 사진=임지혜 기자

건강도 환경도 망치는 담배꽁초, 여전히 아이들 곁에

담배의 유해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한폐암학회에 따르면 담배 연기에는 유해 물질인 타르와 니코틴이 들어있다. 이외에도 4000가지의 유해물질과 약 40가지의 발암물질이 포함됐다. 더구나 땅에 버려지고 하수구로 흘러간 담배꽁초는 곳곳에 미세 플라스틱을 흩뿌린다.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담배꽁초로 발생하는 화재 위험도 크다. 소방청이 지난해 발간한 ‘2022년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2013~2022년 화재 건수는 41만2573건으로, 주요 원인은 ‘부주의(50.0%)’였다. 부주의 요인으론 ‘담배꽁초’가 30.5%로 1위였다.

일부는 알면서도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 대한금연학회지의 ‘금연구역에서의 담배제품 사용 실태와 연관 요인 : 2019년 지역사회건강조사를 이용한 연구(2022)’에 따르면 금연구역임을 인지하는 흡연자 4명 중 1명(23.3%)이 금연구역에서 담배 제품을 몰래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번화가 인근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흡연하는 어른들. 사진=이예솔 기자

흡연구역·지자체 예산 확대 등 필요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 아이들이 다니는 금연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금연거리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한다.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선 똑똑하게 버리고, 잘 수거해야 한다.

시가랩(꽁초 밀봉 용지) 캠페인을 진행하는 최재웅 어다인 신사업부장은 “환경미화원이 청소를 열심히 해도 담벼락 아래는 청소가 어렵다. 찾아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 담배꽁초가 많다”며 “특히 차에서 창밖으로 던지는 담배꽁초가 의외로 많다. 학교 담벼락에 맞고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고 말했다.

어다인 측은 하루 동안 땅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를 1억개 이상으로 추정한다. 하루에 소비되는 담배 약 2억개 중 절반가량이 땅바닥에 버려진다고 보는 것이다. 최 부장은 벌금 상향 필요성과 지자체의 예산 확대를 강조했다. 국내 담배제조사가 환경부에 납부하는 담배 한 갑당 폐기물부담금은 24.4원으로, 연평균 850억 원 규모다. 이 금액이 온전히 담배꽁초 문제 해결에만 쓰이지 못하고 있는 만큼, 담배꽁초를 수거하는 책임을 가진 지자체에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금연구역만큼 관리를 강화하고, 흡연구역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현지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쓰줍인) 대표는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지정했을 때, 각 구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고민할 문제”라며 “예컨대 금연구역에서 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봐도,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어 이런 행동을 신고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금연 장소에서 흡연하면 처벌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신고를) 할 수 있지 못한 제도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흡연 교육 필요성 △플라스틱 대체 연구 개발 등을 제시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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