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아내와 T남편, 이 부부가 싸우게 되는 이유
[이준목 기자]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행복한 순간은 돈이 안 든다. 시간도 많이 들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일상들이다.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딱 잡아야 한다. 나의 기억으로 잡아서 남겨놔야만 평생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아내와, 극단적으로 과묵하고 이성적인 남편, 서로 너무나 다른 성향 때문에 고통받는 부부에게 전한 오은영의 조언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3월 11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67회에서는 '우주최강 감정형F VS 사고형T, FFTT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김병국-유재영 부부는 결혼 30년 차 50대 부부로, 대학 선후배로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와의 잦은 의견충돌로 인한 스트레스를, 사연을 신청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부부의 일상이 VCR로 공개됐다. 부부는 함께 브랜드 멀티숍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내가 성격이 급하고 활달한 편이라면, 남편은 과묵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지나치게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에 오히려 불만을 드러냈다.
알고보니 아내는 신혼 때부터 남편의 지나친 정리-청소 습관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신혼 시절에 남편은 새벽에 머리맡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청소를 하고 난 뒤에야 다시 잠을 청한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아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상황에서도, 남편은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는 것.
오랜 세월 한이 맺혔다는 아내는 "남편이 청소하고 있으면 솔직히 발로 차버리거나 막 어질러놓고 싶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아내가 가게를 비웠을 때만 정리와 청소를 했다.
놀랍게도 부부는 24시간을 같이 붙어 있으면서도 대화가 거의 없었다. 남편은 "아내와 대화를 한다면 가게나 집안 문제일 텐데, 금세 언쟁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화를 잘 안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함께 있어도 각자 휴대폰만 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깊었다. 일상적인 '부가세 신고' 문제를 놓고 아내는 남편에게 "건물관리비는 부가세 신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알려줬으나, 남편은 아내의 말을 신뢰하지 못 하고 지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이에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다.
반면 남편은 "아내가 나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된다. 확인을 철저히 않으면 나중에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털어놓으며 아내를 믿지 못 하는 속내를 밝혔다.
깜짝 놀란 오은영은 "이 부부는 정말 위기의 부부"라고 진단하며 우려를 금하지 못 했다. 오은영은 "남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청소와 정리정돈이다. 그 자체로는 좋은 일이지만, 부부간에는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고 쌓여온 갈등과 오해들이 분출되는 통로가 되어 버렸다"고 지적하며 "실제는 청소가 아니라 그 밑면에 있는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젊은날의 아내는 이미 육아와 가사만으로도 힘에 부치던 시기에, 남편이 청소를 요구하는 상황이 거듭되며 힘들고 서러웠던 기억들이 많았다고. 아내가 청소 이야기만 나오면 과거 생각이 떠올라 남편에게 미운 감정이 솟구치는 이유였다. 남편은 청소와 정리정돈을 못 하게 하는 아내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 했다.
오은영은 "아마 부부가 30년간 수없이 이야기를 했을 텐데도 이면에 있는 이유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지 못 한다.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만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내에게는 30년간 쌓여온 케케묵은 상처가 힘들고, 건드리면 너무 아픈 것이다. 비수가 꽂히면 비슷한 단어와 상황에도 그때의 상처가 떠오른다"고 아내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남편은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자신의 성향이 부부간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오은영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남편은 과거에 비하면 성향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아내를 불편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청소를 못 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반박하며 아직도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 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오은영은 "남편이 잘못을 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특성이 강하구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걸 모르면 청소는 나쁜 게 아닌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한편으로 남편은 본인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아내가 과거의 일 때문에 여전히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남편은 "청소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면 할 수는 있는데, 과연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더러운 걸 봐도 외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지"라고 방법을 모르겠다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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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또다른 불만은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과묵한 남편과는 정반대로 말이 많고 감정적인 성격이었다. 특히 아내는 한 번 말문이 터지면 상대의 이야기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는 성향이 있었다. 최근 갱년기가 찾아온 이후에는 감정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화가 폭발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아내는 남편과 부부간의 문제에 대한 대화를 먼저 제안했다. 아내는 과거 출산 때나 무릎수술로 힘들 때 남편이 일을 내세워 자신의 곁을 지켜주지 않아 서운했던 일화를 하나하나 소환했다. "남편이 30년 동안 내 편이라고 느껴본 적 없다"면서 아내는 끝내 눈물까지 터뜨렸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차분한 남편은 감성적인 아내의 이야기와 대화 속도를 따라잡지못하고 엇박자를 드러냈다. 남편은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 하고 하품을 하거나 두통을 호소하는가 하면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심지어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휴식을 요청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분개했다. 대화를 할수록 감정이 점점 악화된 아내는 급기야 폭발하여 촬영까지 거부하고 "더이상 같이 살지 말자"고 선언하며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다.
남편과 제작진의 만류에 아내는 간신히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쏟아냈다. 당시 영상을 지켜본 아내는 스튜디오에서도 "솔직히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남편은 남편 대로 "말을 못 하겠다"며 답답함을 털어놓으며 "말을 잘못해도, 대답을 안 해도 내 탓이 된다. 아내와의 대화는 취조를 당하는 느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부부의 대화와 행동을 분석한 오은영은 정작 "남편의 행동은 아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대화 내용에 대해) 모르는 것"이라고 뜻밖의 진단을 내렸다.
오은영은 남편의 상황을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이 아랍어로 대화하는 것"에 비유하며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와 잘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된 이유와 원인, 상황을 모른다. 여기에 아내가 홍수처럼 내뱉는 대화 방식도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은영은 "남편은 사실, 상황만 다루는 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그때의 기분, 상태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내가 아닌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분"이라며 남편의 성향을 설명했다. 남편의 문제점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거나 무시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할 때 융통성과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라는 게 오은영의 분석이었다.
남편이 "부부인데 마음으로 통하지 않나, 말로 꼭 해야 하나"라며 의문을 제기하자, 오은영은 당연하다며 "다른 사람이니까, 표현 안 하고 어떻게 알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은영은 '행복한 순간'이란, 돈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일상속에서 포착하는 기억이 한 사람에게 평생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당부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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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부부의 또다른 문제는 경제적 갈등에 대한 입장차이였다.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에서 가게 운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지만, 아내는 부부관계의 회복과 자신이 남편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치유가 우선이라며 남편의 소통 요구를 한사코 거부했다.
부부는 여러 차례의 사업실패로 인하여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은 아이들의 학비와 아내의 수술비까지 감당해야 했던 상황 속에서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누구보다 강했다. 남편은 현재의 가게를 마지막 사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개업 5개월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아군처럼 가게문제를 함께 고민해주기를 바랬지만, 아내는 도리어 '그럼 본인이 적군이었냐'고 말꼬리를 잡으며 끝내 남편의 이야기를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돈만 우선시하고 자신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편은 인터뷰에서 "인생의 1순위는 가정의 행복이다. 제가 원하는 건 평범한 수준 정도의 경제력을 갖춰서 자녀들이 결혼하고 독립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아내와 둘이서 지방에 내려가서 단란하게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몰랐던 남편의 속깊은 진심에 녹화장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아내는 남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또 핑계"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급기야 아내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MC들의 질문에도 눈을 감고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오은영은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특성이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 차곡차곡 쌓아져서 형성된 게 많다"라고 설명하면서 "나에겐 별게 아닌 게 타인에게는 큰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나의 말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오은영은 "아내는 외향적이고 쾌할하지만 한편으로 급하고 충동적인 면이 있다"는 진단을 내리며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신중하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서로의 다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부부를 위한 힐링리포트가 내려졌다. 오은영은 먼저 남편에게 '마음일기'를 써볼 것을 제안했다. 오은영은 "남편은 선한 분이지만, 타인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에 대한 기회와 경험이 부족해보인다. 마음일기를 통해 오늘 일어난 사건을 두고 나의 감정과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려보는 일기를 써보시라"고 권유했다.
또한 부부 공통으로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동업자로서, 서로 솔직하게, 화내지 않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는 "말하는 양을 줄여야 한다. 지금처럼 홍수가 쏟아지듯이 이야기를 하면 남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 '나는 그때 이런 마음이었어'라고 설명을 해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모든 솔루션이 끝나고, 부부는 서로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 못 다한 진심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럼없이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은 "앞으로 큰 욕심없이 아내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싶다. 사랑해"라며 비로소 소박한 진심을 전했다. 미소를 되찾은 아내 역시 "나도 사랑해"라고 화답했다. 대기실로 돌아가면서 부부는 앞으로는 함께 마음일기를 쓰며 변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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