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시골살이는 다 이 사람 덕분입니다

정호갑 2024. 3.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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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네 시골살이 2] 눈에 띄게 달라진 아내의 변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호갑 기자]

꿈꾸어왔던 시골살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내 덕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시골살이를 한 번쯤은 꿈꾼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면 시골살이로 옮겨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24시간을 부부가 함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24시간을 함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편안하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도 나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슈베르트는 '진실된 친구를 만난 사람은 행복하다. 자기 부인이 진실된 친구라면 그 사람은 더 행복하다<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 267쪽>'라고 했다.  이 말에 나는 온전히 공감한다.

지금까지 아내와 생각을 주고받으며, 잘못되거나 놓친 내 생각을 바로잡고, 서로 차이도 인정하고, 공감도 하면서 지내왔다. 슈베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아내의 복이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50대가 지나갈 무렵 시골살이를 꿈꾸었다. 아내도 내 뜻에 공감하고 동의했다. 퇴임 2년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며 시골살이 할 집을 찾아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보고, 생각하는 것이 내보다 꼼꼼하고, 이성적이며, 깊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생각한 집을 말하면 아내는 거기의 문제점을 말했다. 아내도 공감하여 함께 직접 찾아가면 새로운 문제를 짚었다. 집 방향과 구조, 마을 형태, 마을로 들어가는 길, 주위 환경, 등등. 처음에는 아내의 말에 공감하였지만, 시간 지날수록 나의 조급함이 발작했다. 혹시 아내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닐지.

마침 아내가 괜찮아 보인다는 집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시골살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가보고자 하였다.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도 괜찮았고, 주변 환경은 내가 꿈꾸어 왔던 곳과 거의 비슷하였다. 깔끔하고 단단한 집, 적당한 크기, 마을 형태, 계곡, 산책길, 주변 환경 등등.

집주인은 자기 집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금액을 쉽게 제시하기 어려웠다. 집을 보고 나와서 아내에게 내가 생각한 금액을 제시하였다. 아내는 5백만 원은 더 낮추어도 된다고 하였다. 나는 또 조급하였다. 아내에게 온갖 짜증을 내니 아내도 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했다. 부동산의 중개로 내가 제시한 금액으로 흥정하여 집을 계약했다.

계약한 뒤 천천히 생각해 보니 아내 말대로 5백만 원 이상 낮추었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내에게 나의 조급함을 스스로 책망하며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아내는 그때 '명품 가방 하나 샀다고 생각하면 되지'라고 하였다.

사실 아내는 명품 가방이 하나도 없다. 교사인 나의 박봉으로 아들과 딸을 다 공부시켰다. 명품 가방과 화장품, 옷에 관심을 전혀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못난 남편의 기를 살려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내는 일주일 내내 현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때도 많았다. 기껏해야 내가 쉬는 주말에 시장에서 일주일 먹거리 사는 것이 외출의 전부일 때가 많았다. 아내는 굳이 밖을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과 형식적으로 부대끼는 것도 싫어했다. 무엇보다 몸이 약해 밖에 나갔다가 오면 일정한 시간 동안 푹 쉬어야 한다. 한 마디로 저질 체력이다.

집을 산 뒤 일 년 육 개월 동안 주말마다 드나들면서 우리 집으로 가꾸어 갔다. 처음으로 손댄 것이 뒷마당이다. 뒷마당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잔디도 드문드문하여 비가 오면 걷기 불편하였다.

잔디를 걷어내고 현무암 판석을 깔기로 했다. 처음 하는 작업이라 전문가에게 맡겼다. 작업을 끝난 뒤 아내는 앞으로 웬만하면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몸도 약하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인지.
 
▲ 뒷마당 잔디가 드문드문한 뒷마당을 현무암 판석으로 교체
ⓒ 정호갑
 
먼저 다듬어지지 않았던 수돗가를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주변 잔디나 풀은 내가 걷어내고 아내는 흙을 고르고 수평을 잡은 뒤 보도블럭으로 새롭게 꾸몄다. 수돗가 앞에 쉼터도 새로 만들었다. 집을 계약할 당시 조그만 화단도 넓히고 새로 만들었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을 우리는 시골살이의 중요한 재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문에서 현관 입구의 디딤돌이 오래되어 묻혔던 것을 새로 올려놓았다. 햇볕이 들지 않아 음습한 곳은 잔디를 걷어내고 파쇄석을 깔았다. 집을 둘러볼 수 있도록 현무암을 깔아 길을 새로 만들었다. 넓은 데크 칠도 직접 하였다. 나는 묵묵히 돌쇠 역할을 하면서 아내의 놀라운 능력과 체력 거기에 맞춰 우리 집의 놀라운 변화에 그저 감탄만 하였다.
  
▲ 수돗가 계약 직후 수돗가의 어지러운 모습
ⓒ 정호갑
 
▲ 수돗가 만들기 수돗가를 만드는 아내
ⓒ 정호갑
 
▲ 앞마당 쉼터 아내가 만든 앞마당 수돗가와 쉼터
ⓒ 정호갑
  
▲ 현관으로 들어오는 디딤돌 아내가 새로 놓은 디딤돌
ⓒ 정호갑
 
아내는 찾아오는 사람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목련차, 우엉차, 가지차, 국화차를 대접하고, 손님이 돌아갈 때는 차를 선물한다. 먼 곳까지 찾아 준 고마움에 대한 아내의 작은 정성이다. 아내가 만든 차는 깨끗하고, 정성이 가득함을 곁에서 보았고, 맛도 깊었다.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내가 만든 차를 선물했다.
차를 맛본 사람들 역시 내 생각대로 맛이 깊고 깔끔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이제는 그만두었으면 하였다. 차를 만들면서 손목이 많이 안 좋아졌고, 차 만드는데 며칠씩 힘들게 매여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맛있게 차를 마셔주고,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기가 힘들다며 계속하겠다고 한다.
 
▲ 목련차 아내가 직접 만든 목련차
ⓒ 정호갑
 
나는 오늘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팔불출 짓을 했다. 그런데도 부끄럽지 않고 행복하네. 나에게 부와 명예를 얻는 능력은 없었지만 사람 그 가운데서도 동지이자 친구인 아내를 얻었으니, 그라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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