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응징' - '낡은 생각'... 전·현직 대통령의 전투
[권신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오른쪽) |
ⓒ 연합뉴스 |
이른바 '슈퍼 화요일'이었던 5일에는 15개 주에서 진행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가 완승하면서 마지막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물러났다. 이로써 47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성사되었다.
대선 후보 결정에 이어 양쪽의 세계관도 드러난 한 주였다. 트럼프는 5일 슈퍼 화요일 승리 직후 연설을 했고 바이든은 이틀 후인 7일 2024년 국정연설을 했다. 두 연설은 공통적으로 세계화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후퇴를 시사했다.
하지만 세계화를 마무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비전을 보였다. 트럼프가 이질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자국중심주의라면, 바이든은 미국의 생산 기능을 강화시켜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 육성, 즉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FDR)식이다.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슈퍼 화요일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플로리다 휴양지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슈퍼 화요일 압승 결과를 듣고 연단에 선 트럼프는 지지자들 앞에서 "슈퍼 화요일인 이유가 있다"라며 "오랫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것"이라고 첫 소감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두 가지 "제3세계 국가" 특성에 발목이 잡혀 있고 그 책임은 바이든에게 있다. 하나는 국경 문제다. 트럼프는 '수백만 명의 불법 이주자가 미국을 침입하고 국경 인근 도시가 그들의 범죄로 고통받는 상황에 몰려 있다'며 이는 국경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바이든의 범죄"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하나는 선거로, 지난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로 당선된 바이든 때문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통령직을 유지했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입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공격받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코로나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중산층을 비롯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며 바이든의 경제 정책에 날을 세웠다.
"다시 한번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트럼프가 내세운 정책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제거다. 공화당 대선후보 출마 선언 이후 그의 공약을 보면 우선 불법이주자 추방이 있다. 그는 지난 11월 이주자들이 "미국의 피에 독을 넣고 있다"며 재집권 시 수백만 명의 이주자를 추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대상은 노숙인이다. 지난 4월, 그는 "우리의 최우선은 열심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안전"이라며 노숙인의 도시 캠핑을 금지하고 이들을 "텐트 도시"로 이주시키겠다고 했다. 캠핑 금지 조항을 어길 경우는 체포된다.
세 번째는 정적에 대한 "응징"이다. 지난 11월 트럼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는 정치인을 "해충"이라 부르며 "뿌리째 뽑아버리겠다"고 한 바 있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총괄해 만든 '프로젝트 2025'에 따르면, 법무부에 대한 대폭적인 예산 삭감,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 해체, 교육부와 상무부 축소 등을 담고 있다. 이 기관들은 지난 3년간 트럼프를 수사하거나 비판 목소리를 낸 곳이다.
마지막은 적대국 여행 금지 재개다. 2018년 6월 트럼프가 행정명령으로 이란,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 이슬람교 국가와 북한, 베네수엘라 여행을 금지시켰지만 바이든이 이를 취소한 바 있다. 지난 7월 트럼프는 "보다 광범위하게" 여행 금지국을 정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연설에는 계층, 성별, 세대, 도시와 농촌, 인종, 교육 수준 등 사회적 카테고리가 없다. 그의 목소리는 미국의 국경, 미국 밖의 위험한 국가, 미국 내 주변화된 노숙인, 비대화된 국가 기관 등을 향해 있다. 사회적 카테고리 안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해소하고 미국에 집중시킬 수 있는 방안이 과연 있을까.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1923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연설이 처음으로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고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은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었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좀 더 많은 이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연설 시간을 저녁 9시(동부 시간)로 정했다.
효과적으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최대 약점인 고령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국정연설에서 바이든이 꺼낸 첫 주제는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대외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국 내로는 3년 전 의회 난입 사건이다. 그는 트럼프라는 이름 대신 "나의 전임자"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가 푸틴에게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하라"라고 말했으며 난입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지적했다. 물러서면 푸틴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무기 원조의 필요성을 외쳤다.
장시간 공을 들였다고 알려진 그의 국정연설은 다양한 각도로 지난해 바이든 정부의 업적을 설명했다. 연설 중간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위원장을 소개하며 자신이 지난해 자동차 파업을 지지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낙태권을 통해 여성계에 호소했고 노인층에는 집권 기간 확대된 의료 보험과 낮춰진 약값을 강조했다.
젊은세대에는 기후 봉사단과 전기차 충전소 설치 등 지난해 도입한 정책을 설명하며 미국이 기후 변화 문제에 최선두에 서 있음을 강조했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현실적인 대학 등록금을 제시했다. 경제면에서는 낮은 실업률과 진정 국면으로 들어선 인플레이션을 부각하고 경제 정의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법인세 인상과 부자세를 강조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최대 실정으로 공격하는 국경 이민자 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과 협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등의 언사로 그들을 악마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나이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시종일관 열정적이고 '전투적'인 모습을 유지한 바이든은 마지막으로 미국이 마주한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낡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혐오, 분노, 복수, 응징 등은 가장 낡은 생각 중 하나라며 이것들은 미국을 뒤로 후퇴시킬 것이라면서 '전임자'를 비판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를 향해 "당신은 미래를 향한 비전이 필요하고 오늘밤 나의 비전을 들었다"라고 마무리했다.
그러나 과제는 남아있다. 지난 중간 선거에서 그가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주요 기반인 젊은 세대와의 마찰 조짐이 그중 하나다. 그의 기후 정책은 젊은 세대와 일치하지만 이들은 바이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에 있어 비판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대선은 이제 시작이다. 어느 정도 드러난 정책대립 시점에서 양당의 선거 전략이 나타날 차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