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간첩죄' 체포 첫 한국인…악명높던 '피의 숙청' 구치소 수감
러시아 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은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구치소는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벌인 공포정치의 상징으로, 고문과 처형이 자행됐던 곳이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한국인 백모씨가 올초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가기밀을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로 체포된 후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됐다.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법원은 이날 백씨의 구금을 6월 15일까지 3개월 연장했다. 타스는 백씨와 관련된 형사 사건 자료가 '일급기밀'로 분류돼 혐의에 대한 세부 내용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백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지난 1월 중국에서 육로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입국한 뒤 며칠간 생활하던 중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백씨는 지난 2022년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간첩 혐의로 체포된 외국인 중 우크라이나 출신을 빼면 두번째라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다. 앞서 지난해 3월 간첩 혐의로 구금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지국의 미국 국적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가 첫번째다. 당시 FSB는 "게르시코비치는 미국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 군산 복합 기업 중 한 곳의 활동에 대한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게르시코비치도 현재 백씨가 구금된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됐다. 워싱턴포스트(WP)·AP통신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 내 동쪽에 있는 이 곳은 1881년 러시아 제국 시절 군 교도소로 지어졌다. 1930년대 스탈린이 반대파를 대거 축출하기 위해 실행한 '피의 숙청'의 본거지가 되면서 악명을 얻었다.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이 이곳에서 간첩 혐의자와 정치범을 가두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이 구치소는 지난 2005년부터 법무부 관할이 됐으나 사실상 FSB가 통제해 여전히 공포와 억압의 상징으로 악명 높다. FSB는 간첩 혐의로 체포한 사람들과 부패 혐의로 기소된 정부 관료 등을 재판 전 이곳에 구금한다.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집권 당시 반체제 인사들, '방사능 홍차 사건'으로 독살된 FSB 출신 반체제 인사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등이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구치소는 최대 200명의 수감자를 수용할 수 있는데, 주로 독방에 가둬놓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감자들은 심문, 건강검진, 재판 등을 할 때만 감방을 떠난다. 다만 옥상에서 산책은 어느 정도 허용된다고 WP는 전했다. 방문, 전화 통화 등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나 당국이 신청을 거부할 수 있어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 건 가능하나 한두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간첩·반역 혐의를 받는 용의자를 주로 맡고 있는 예브게니 스미르노프 러시아 변호사는 AP에 "FSB 간첩 수사는 일반적으로 1년에서 1년 6개월가량 이어지며 재판은 비공개로 열린다"며 "간첩·반역 혐의로 무죄 방면된 경우는 1999년 이후 없었다"고 전했다.
게르시코비치는 지난해 3월부터 1년째 구금 중이다. 미 해병대 출신으로 미·영 이중국적자인 폴 웰런은 간첩 혐의로 2018년 체포돼 2년 동안 이곳에 있다가 2020년 징역 16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러시아 형법에 따르면 간첩 혐의가 인정되면 10~2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백씨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자 외신은 최근 러시아와 한국 관계에 주목했다. 로이터는 관련 보도에서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국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했지만, 전쟁에 사용할 수 있도록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북한과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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