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붕괴 시국선언' 쓴 교수 "전공의 사직에 책임감 느낀다"

남수현 2024. 3. 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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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온라인 웹사이트에 게재된 '의료붕괴를 걱정하는 시국선언' 에 12일 오전 7시 기준 7521명의 의사들이 서명했다.


"전공의들이 벗어난 상황에 대해 교수들이 책임을 느끼고 있어요. 80시간 이상 근무를 당연하게 치부해온 것에 우리 책임도 있는 거죠."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1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의료붕괴를 경고하는 시국선언' 작성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8일 공개된 시국선언 작성에 참여했다. 김 교수를 포함해 서울아산병원 등 8개 수련병원 소속 16명의 교수가 실명으로 동참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우려하고 비판했다. 현재 개설된 온라인사이트에서 연대서명을 받고 있는데 7000명이 넘는 의사들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김 교수는 "교수 사회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분위기"라면서도 "의대 증원이나 필수의료 패키지(종합대책)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사와 국민이 납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에 겉도는 이야기(의대 증원)만 하면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교수들의 시각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문답.

Q : 선언문 작성은 어떻게 하게 됐나
A : 혼자 주도적으로 작성한 건 아니고 같이 작성했다. 나는 시국 선언을 추진한 16명의 교수들 중 1인일 뿐이다. 16명 모두가 내용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갔다. 이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가치 등에 있어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세심하게 고쳤다. 16명 교수들은 어떤 특정한 조직이나 학교라 얘기할 수도 없고 학회도 아니다. 공통점이라면 현재 일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환자들을 보고 있는 교수들이라 할 수 있다.

Q : 필수의료 종합패키지 내용은 어떻게 보나
A : 정부가 계속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는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이 왜 이렇게 엇나갔는지를 좀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본적인 원인은 근거가 너무나 부족한 의대 정원 2000명을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Q : 전공의들의 이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A : 교수들 사이에 자기반성이 있다. 교수들은 굉장히 큰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80시간 이상 과도한 근무 환경에서 환자를 보는 것을 우리도 다 경험을 했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식으로서 치부돼 온 부분들이 상당히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수들의 책임도 있고 의료계를 조금 더 잘 발전시켜야 할 정부의 책임도 있다.

Q : 많은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의한다고 보나
A : 이것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일 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생각보다 많이 동의를 하시더라.

Q :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어떻게 느끼나
A : 교수사회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너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저는 교수들이 조금 더 사회와 잘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회적인 책무의 하나라고도 보고 있다. 좀 용기 있게 얘기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들이 의료계에 대해서 가지는 아쉬움이라고 하면 의료계가 보였던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다. 불친절부터 시작해서 3분 진료까지 다양하다. 그런 국민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더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또 이번 계기로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바람직한 의료의 방향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교수

■ 의료붕괴를 경고하는 시국선언 전문

「 전국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전문의 시국선언 (전국 5천여명 연대)
2024년 의료 붕괴를 경고하고 의료개혁을 촉구하는 전국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지도전문의 시국선언

현재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 정책 추진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의료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는 최일선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빠른 시일 내에 이 사태가 종식되지 않을 경우 전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히 위협받을 것임을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의료 현장의 전선에서 헌신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국 의과대학 및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지도전문의들은, 우리의 양심과 직업적 소명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우리는 필수의료의 붕괴와 지방의료의 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자 한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탁월한 의료를 자랑해오면서, ‘값싼 의료’의 뒤에 숨겨진 의료진의 과도한 부담은 간과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의료계가 필수의료의 쇠퇴와 그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음에도 정부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다.

2. 우리는 정부가 필수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중증, 응급, 그리고 지역 의료 붕괴이다. 일방적인 ‘필수의료 지원’ 정책이 결국 현장에서 외면 받고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늘도 이를 반복하며 의료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3. 우리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포함한 의료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도 열려 있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정부는 급격한 증원이 수반하는 실질적 문제와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4. 우리는 정부에게 전공의들을 향한 위압적 발언과 위협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전공의들은 피교육자로서 더 이상의 수련을 포기했을 뿐 환자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님을 천명하는 바이다. 전공의들이 각각 흩어진 것은,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를 완전히 단절하고 통제와 억압만으로 어떠한 저항이나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 극심한 좌절감과 무기력함의 절박한 표현이다. 우리는 그 심정을 깊이 공감하며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지할 것을 약속한다.

5. 우리는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와 지방의료 몰락을 구제할 대책을 제시하여 전공의들과 현장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비판적 의견 또한 수용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가 이러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보이지 못하고 의료 대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국민들은 정부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모습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6. 우리는 국민, 의료계, 그리고 정부의 협력을 통한 진정한 의료 개혁의 시작을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의료의 핵심 주체로서 시민적 가치에 부합하는 책임과 윤리를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의료계 전반이 더 높은 수준의 전문가 정신을 바탕으로, 용기 있는 자기 성찰과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극 참여할 것을 선언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올바른 의료개혁과 미래의료의 발전을 추구하는 주체로서 필요한 책임을 다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의료체계의 가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부는 의사들을 척결의 대상이 아닌 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의 토끼몰이식 강경대응이 초래한 의료 붕괴는 결국 국민에게 고통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이성을 되찾고, 정부와 의료계 대표는 함께 허심탄회하게 합리적 방안을 논의하여 해법을 도출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환자를 위해 현장에서 사력을 다하며 매일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며, 최악의 의료 파국이 임박하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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