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측 책임으로 근로 못한 기간 증명해야 임금 청구 가능"

허경준 2024. 3. 1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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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임금 청구 소송 파기환송
"동종 근로자 없는 한국도로공사 상황실 보조원, 근로조건 다시 살펴야"

대법원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도 한국도로공사의 현장 직군 중 하나인 ‘조무원’에 포함돼 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의무가 있다는 기존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는데도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고 있던 기간에 대해 임금 등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유로 근로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로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2일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직접 고용되지 않아 정규직과 차별받은 임금을 배상해달라"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요금수납원 590여명은 외주용역업체 소속으로 도로공사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임금차액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요금수납 업무는 상시·지속적 업무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적용 대상으로 봐야 한다"며 정규직 조무원에게 적용되는 기준으로 임금차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은 2012년부터 5년간 정규직과의 임금차액으로 청구한 380억여원 가운데 일부 수당을 제외한 약 313억원을 도로공사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원고들 중 일부의 청구를 기각해 약 21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이후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의 책임있는 사유로 실제 근무를 못 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서도 임금 청구를 인용한 2심 판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제공 사실을 증명해야 임금 등을 청구할 수 있다"며 "근로제공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사용사업주의 책임이라는 것을 증명해 임금 등을 청구할 수 있고, 사업주의 책임 여부는 근로제공이 이뤄지지 않은 구체적인 사유와 경위, 그 사유에 관한 파견근로자와 사업주의 태도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도로공사 상황실 보조원 36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상황실 보조원들은 도로공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해 각 지사에서 상황실 보조와 당직 업무 등을 수행했다. 이들은 상황실 근무자의 지시에 따라 상황실에 걸려 오는 민원전화 응대와 교통사고, 고장 차량, 낙하물로 인한 교통 장애 등이 발생했다는 제보를 받아 이를 근무 중인 안전순찰원들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했다.

또 상황실 보조 업무 중간에 하루 4번에 걸쳐 시설물에 대한 순찰과 점검을 해 사무동과 그 부속 건물, 건물 주변 광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산의 도난, 화재, 무단침입 및 그 밖의 혼잡을 방지하는 업무도 함께했다.

1·2심 모두 상황실 보조원들이 도로공사가 지정한 순찰 시간 및 순찰 횟수, 순찰 방법, 순찰 대상 시설에 따라 순찰업무를 수행했고, 그 업무수행내역을 교통상황 및 근무일지에 작성한 점 등을 고려해 도로공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은 원고에 약 46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심은 47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도로공사 조무원으로 근무하는 근로자 중에 상황실 보조원들과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2심이 상황실 보조원과 조무원의 노동강도의 차이 등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고 임금 등을 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도 법원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했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라며 "그런데 원심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더라도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을 수 없다면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로 업무 내용, 근로의 가치, 근무형태, 임금구조 등이 현장직 조무원과 다른데도 상황실 보조원들에게 현장직직원관리예규를 적용해 임금 등을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상황실 보조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며 "만일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없다면 도로공사가 상황실 보조원을 직접고용 하면서 합의한 근로조건이나 다른 적합한 근로조건이 있는지, 그 근로조건을 상황실 보조원들과 도로공사가 합리적으로 정했을 근로조건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심리·판단해야 한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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