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떠나는 공동체 마을의 방과후 교사... 왜?
[조영준 기자]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자리한 성미산 마을은 꽤 알려진 공동체 마을이다. 마포구 유일의 자연산인 성미산을 중심으로 연결된 크고 작은 70여 개의 커뮤니티를 포함한다. 마을공동체는 육아와 교육, 생활과 주거, 문화 등 총 5개의 공동체와 동아리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공동체는 그 아래에 각자의 목적에 맞게 하위 그룹을 가지고 있는데, '도토리 마을방과후'는 교육공동체에 속한 터전이다. 1996년 시작된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교사와 부모가 함께 초등학생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을 이어간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아이들과 5명의 교사. 학교에서처럼 단순히 과목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며, 교사들 역시 친구들이 삶에 꼭 필요한 생활양식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까운 성미산에 올라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 짧은 여행을 떠나고, 함께 밥을 먹는다. 하루하루 생활하고 뛰놀면서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구김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터전을 둘러싼 어른들의 어려움은 곳곳에 산적해 있다. 특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끌어가야 할 교사들에게 그렇다. 특히, 이 교육공동체가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자존감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이들 터전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에는 2019년 11월부터 2021년 2월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애를 써야 한다던 옛이야기의 증명이자 이제 무너져 가는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02.
하나의 터전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하나가 아니다. 조합을 운영하는 이들과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터전을 꾸려가는 교사도 있다. 이 작품이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교사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지점은 그래서 두 가지가 된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로 방과 후 교사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의 자리와 아이들을 잘 돌보기 위해 끝없는 논의를 이어가는 선생님들의 모습.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이야기는 권익은 보호받지 못하고 책임만 주어지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서글프지만 빛나도록 그려낸다.
'직업이나 하는 일에 대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나의 신념과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들어 길게 설명하더라도 결국 상대방은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다시 되묻는 경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직업의 법적 지위는 받지 못하고 공적 책임만 운운하는 돌봄의 영역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학생들을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끝없는 논의뿐이다. 오전과 오후, 매일 두 차례씩 교사 회의를 진행하며 치열하게 고민을 나눈다. 무엇을 가르칠까에 대한 회의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떤 오후를 채워나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여기에도 공동체의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학교와는 다른 환경에서 비롯되는 여러 갈등이 어려움으로 남지만, 교사회와 더불어 부모들 역시 이따금씩 모여 아이들의 터전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곤 한다.
터전을 둘러싼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더 예민하게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면서 마을 방과후가 책임져야 할 몫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공공시설이나 단체 활동을 위한 장소로의 접근이 제한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 모두의 일상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터전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부모들은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집에서 온종일 온라인 학습을 하는 것보다는 마을 방과후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여기지만, 교사들은 그만큼 더 많은 책임과 업무를 부담해야 했다.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최근 뉴스에서는 '늘봄학교'에 대한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맞벌이 부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정부의 정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학생들을 돌볼 공간도, 교사도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교사를 구하지 못해 기존의 학교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프로그램을 맡아야 하는 수준이고, 수도권에서는 공간 확보도 제대로 하지 못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학교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정부 주도로 시행되지만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정책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애를 쓰는 이들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중요한 사실은 세상이 멈춰도 아이들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의 어른들이 하루빨리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도권 안에서 한 번도 선생님으로 불린 적 없는, 그럼에도 아이들 곁을 한 시도 떠난 적 없는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헤아리는 일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에는 19곳의 공동육아 마을 방과후가 있고, 이제 44명의 교사가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희생에만 기대어 나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큐레이션인 '여기, 한국입니다'는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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