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온도 따라 달라지는 작품, AI 활용한 놀라운 전시
[김형순 기자]
▲ 필립 파레노 I '막(膜)'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 유리,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112.7×112.7cm 2024 |
ⓒ 김형순 |
미술관 안팎을 넘어 작가와 '인공지능(AI)'이 같이 작동하는 이런 전시는 한국에서 거의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다빈치가 기술과 예술의 결합 예술로 서구에서 르네상스를 일으켰고, 20세기에는 백남준이 첨단기술과 전자예술을 융합한 비디오아트를 창시했다면, 이번 파레노 전시는 인공지능과 설치미술을 합친, 기존보다 더 확장된 전시방식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데, AI가 장착된 대형타워 모양의 야외 설치물이 보인다. 작품명이 '막(膜)'이다. '세포막(Membrane)'이 있어야 필터링을 하고 안팎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AI를 작동시키는 기압계, 온도계, 지진계 센서가 있다. 이렇게 기온, 습도, 풍향, 소음, 진동 등에 의해 유입된 데이터는 미술관 안의 여러 상황을 결정한다.
▲ 필립 파레노 I '대낮의 올빼미' 가변 설치 2020~2023 |
ⓒ 김형순 |
로비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작가가 한국 배우 '배두나'를 섭외해 협력을 구하고 인공지능으로 변환한 목소리로, '델타A(∂A)'언어라 한다. 그녀 목소리가 신생어로 탄생한 셈이다. 이 언어의 특징은 VSO(동사-주어-목적어) 순이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전통적 오브제아트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시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볼 게 없어 낯선 경험이 될 수 있다. 미완성 상태를 작가와 관객이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작가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전시방식을 쇄신하는 실험 중"이라고 설명했다.
▲ 필립 파레노 I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가변 설치 움직이는 물체 2022 |
ⓒ 김형순 |
메인 전시장 M2 B1으로 들어서면, 공간이 주황빛이다.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고정된 게 아니다. 형형색색 물고기가 전시장을 이곳저곳 유영한다. 물고기가 관객 머리 주변을 맴돈다. 관객은 마치 큰 어항이나 바닷속에 들어온 것 같다. 관객이 물고기를 구경하는 건지 물고기가 관객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인지 당황스럽다.
또 '여름 없는 한 해'라는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장 안에 연주자가 없는데 피아노가 자동으로 연주된다. 즉 미술관 안팎이 서로 연결됐다는 점인데, 이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자동 연주 피아노(Disklavier)를 전자센서인 '솔레노이드'로 연결하면, 연주자가 미술관 아닌 원격으로 연주해도 미술관 안에서도 실행되는 방식이다.
▲ 필립 파레노 I '여름 없는 한 해' 2024 |
ⓒ 김형순 |
또 이 피아노는 대패처럼 나무를 갈아 '인공 눈'을 뿌린다. 전시 분위기가 괴기해진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어 혼란스럽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뒤섞는다. 주객전도 효과라고 할까. 상징적 설치물을 활용해 공간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관객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빛난다... 현대 미술의 좋은 예
▲ 필립 파레노 I '세상 밖 어디든'(2000), 뒤에 '루미나리에(2001)' 리움미술관(이현준 촬영) 제공 |
ⓒ 필립 파레노 |
위 작품 뒤로 '루미나리에'가 보인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이다. 6인용 좌석과 24개 유리 조명으로 된 가구인데 설치미술이 되었다. 작가의 친구 '피에르 위그(P. Huyghe)'와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M/M)의 합작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작업 태도이다. 그는 작품을 할 때 이렇게 다른 작가와 공동작업하기를 즐긴다.
▲ 필립 파레노 I '차양 연작(2016-2023)' 플렉시 유리, 전구, 네온 튜브, DMX, 리움미술관(홍철기 촬영) 제공 |
ⓒ 필립 파레노 |
우선 그라운드갤러리 가운데 영화관으로 변신한 '블랙박스'가 있다. 그는 영화제작자이기도 하다. 유령 같은 '고야'의 집을 조명한 〈귀머거리의 집〉, '인공 정원'이 등장시킨 〈지속적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유명 여배우를 환생시킨 <마릴린> 등 3편 영화도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프랑스 축구선수 '지단'을 다큐영화로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차양' 연작을 보자. 마치 대형극장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 연작은 움직임을 중시하는 '키네틱 아트'로, 관객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더 활력이 난다. 반짝거리는 불빛과 물결치는 듯한 소리가 공감각적으로 합쳐져 협주하는 것 같다.
'차양'이란 원래 20세 초 미국 할리우드 황금기에 극장 안에서 영화명과 출연자 이름을 알리는 광고판이었다. 작가는 이런 간판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뺀다. 전자껍질로 만든 '할로겐' 빛과 인공지능으로 변형된 소리로 시공간을 압도하게 하는 스펙터클 전시로 변환시켰다.
▲ 필립 파레노 I '차양 연작(2016-2023)' 가변크기 플렉시 유리, 전구, 네온 튜브, DMX 2016~2023 |
ⓒ 김형순 |
전시장 벽에 삥 돌면서 설치된 '깜빡이는 불빛 56개'도 보인다. 공간이라는 색채를 시간으로 변주한다고 할까? 작가는 AI 등 첨단기법을 동원해 사이키델릭한 풍경을 연출한다. 동시에 작가는 기자들과 한 대담에서 미술관이 닫힌 공간이라 거기에 틈을 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그는 다학제 시대를 맞아 2014년부터 다른 작가와 협업을 해왔다. 동시대 세계적으로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작가 '티노 세갈(T. Sehgal)',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하는 영국 작가 '리암 길릭(L. Gillick)', 스위스 출신 세계적 미술평론가 '오브리스트(H.U. Obrist)' 등 또 한국작가로는 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나가는 '구정아'와 같이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세계 유수 미술관과도 협업한다. 이번 전에 영상 작품이 독일 '뮌헨 아트하우스'와도 쌍둥이처럼 동시 상영된다. 또 도록도 공동발간한다. 작가는 이렇게 미술관의 안팎을 뛰어넘어 개인전을 미술관 관계자, 큐레이터, 관객 등과도 긴밀하게 연동한다. 때로는 자신의 저작권도 포기하면서까지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려 한다.
▲ 작가 '필립 파레노' 리움미술관(김제원 촬영) 제공 |
ⓒ 필립 파레노 |
파레노는 국제 미술계의 가장 독창적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다양한 신매체와 첨단기기를 도입해 전시개념을 다시 썼다. 그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 생각을 바꿔보려 한다.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려 한다. 그의 전시는 처음 볼 때와 나중 볼 때가 다르다. 그만큼 전시에서 변동성이 많다는 뜻이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2019),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바우(2018), 런던 테이트모던(2016)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일곱 번, 리옹비엔날레에 네 번 출전했다. 그의 작품은 퐁피두센터, 파리 근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와타리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에 소장돼 있다
덧붙이는 글 | [리움미술관 관람 안내] 관람 예약 :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www.leeum.org) (관람 2주전부터 온라인 예약) 문의 : 02-2014-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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