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수호신 문호장과 영산줄다리기 이야기 [앤디의 어반스케치 이야기]
[오창환 기자]
▲ 영산시장에서 준비중인 영산줄다리기 동부지역 본부 현장을 그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그렸기 때문에 이 그림은 시간이 겹쳐진 그림이다. |
ⓒ 오창환 |
3.1 민속문화제를 보러 2월 29일에 창녕 영산면에 내려온 후, 3월 2일에는 조금 여유를 갖고 영산읍내 카페에서 스케치도 하고 호국공원에 올라 마을 전경도 스케치했다. 저녁에는 다음날 공연이 있는 극단 자갈치팀과 합류했다. 부곡면에 있는 큰 호텔방에서 밤 9시에 시작한 리허설이 1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 왼쪽은 조성국 선생님 흉상 제막식 사진. 오른쪽은 마당극에 등장한 문호장 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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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영산면 놀이마당으로 갔다. 8시에 일봉 조성국 선생님(1919~1993) 흉상 제막식이 있기 때문이다. 영산 출신인 조 선생님은 교사이셨으며, 양파 재배를 지역에 뿌리내리게 한 농업인이었고 잊혀 갔던 영산줄다리기를 복원시켜 진정한 공동체 잔치로 자리 잡게 한 분이다. 영산 줄다리기 초대 기능 보유자셨다. 스스로 농군, 줄꾼, 술꾼을 자처하며 젊은 대학 문화패와도 잘 어울리셨다. 또한 민예총 초대 공동이사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제막식을 끝내고 '마당굿 운동 50년 기념 민족예술 대동굿' 선포식이 끝난 후에 기념 공연으로 부산 극단 자갈치 중심으로 마당극 <영축산 빗돌말이 들배지기 한판>을 하였다. 이 공연은 채희완 선생님이 30여 년 전에 쓴 극본을 리바이벌 한 것인데, 이 지역 민중의 수호자 문호장(文戶長)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문호장은 성만 전해지고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호장은 당시 지방직 벼슬을 말한다. 그는 약 370년 전 현재 만년교 부근에서 살고 있었으며 무술과 도술에 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관찰사 일행이 탄 말이 일하는 농부들 밥상을 밟아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문호장이 그 말의 네 발을 땅에 붙여버렸다.
화가 난 관찰사가 문호장을 불러다 문초를 하는데 곤장을 치면 볼기에 닿기도 전에 부러져 버렸고 시뻘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지지려 해도 얼음덩이가 되어 떨어질 뿐이었다. 화살을 쏘았으나 문호장의 앞에 닫기도 전에 공중으로 치솟아 버렸다. 총을 쏘니 총알 대신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관찰사가 문호장을 먼 곳으로 압송시켜서 그곳 옥에 가두라 했으나 문호장은 분신술을 부려 이곳저곳에 나타났다. 결국 관찰사는 문초를 포기하고 그를 불렀다. 그런데 이때 문호장은 문득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관찰사에게 삼나무 가지로 자신의 겨드랑이를 치라고 한다.
그러자 문호장이 죽어버렸다. 관찰사는 뒤늦게 영웅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문호장이 청했던 대로 매해 단옷날 그를 위한 제를 올리게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영산향토지 397쪽/영산사적보존회 발간 참조).
▲ 공연에 등장한 문호장 탈을 그렸다. 그가 손에든 부채에는 그가 타고 다녔다고하는 호랑이를 그렸다. 부채와 호랑이는 문호장 사당에 있는 그림을 참고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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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영산면 현감이었던 전제(全霽) 장군은 전쟁에서 특별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굴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그의 13대 조상이란 이유로 사적비가 세워지게 된다. <영축산 빗돌말이 들배지기 한판>은 문호장이 전제 장군을 혼내는 내용으로 지역 설화와 역사가 절묘하게 결합된 극이다.
마당극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문호장 탈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문호장 탈이 등장하는 공연의 한 장면을 그렸는데 손에 든 부채에는 문호당 사당에서 보아두었던, 그가 타고 다녔다는 호랑이를 그려 넣었다.
점심시간 후에는 동부와 서부가 나누어져 영산 줄다리가 준비 되는데 나는 문호장사당이 있는 영산시장의 동부 팀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거대한 줄을 준비해서 수래에 싣고는 놀이마당으로 가게 되는데 그전에 제를 지내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길굿을 한다.
▲ 왼쪽은 영산시장 인근의 문호장 사당. 뒤에 영축산이 보인다. 오른쪽은 현장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찍은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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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길 굿이 벌어졌고 거의 2시간 가량 마을을 돌다 놀이마당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축제의 피날레가 벌어질 판이다.
▲ 줄다리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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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차시간 때문에 축제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먼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의 들뜬 기분으로 아쉬운 생각은 없었다.
처음 창녕으로 올 때는 이곳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줄 몰랐다. 유홍준 선생님은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이야기 덩어리인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
(창녕군 영산면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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