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싸돌아다녀" 엄마가 이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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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살다가 혼자 남겨진 엄마에겐 더 그렇기에 나는 매일 전화한다.
그에 반해 엄마는 이 바닥 30년 도매상처럼 단박에 파악한다.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엄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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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는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바라는 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아빠는 7788234를 해냈다. 남겨진 사람은 99를 원했지만 그보다 어려운 '88234'가 됐으니 좋은 거라고 애써 믿는다.
아빠를 보낸 지 2주차다. 234가 좋다고 아무리 믿는다 해도 수시로 목이 막힌다. 둘이 살다가 혼자 남겨진 엄마에겐 더 그렇기에 나는 매일 전화한다. 엄마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주변이 소란스럽다. 매일 어딜 그리 가냐고 물었다.
"아침 먹자마자 뛰쳐 나와서 눈만 뜨면 싸돌아다녀. 집에 있으면 아빠가 방에서 나올 거 같아서 자꾸 기다리거든."
엄마 목소리 끝에 물기가 어린다. 대답할 수 없는 나와 말을 참는 엄마 사이를 침묵이 채운다. 침묵은 지나치게 싱싱한 감정을 에누리 없이 전달한다. 내가 먼저 선수쳐본다.
"엄마, 서울 와서 쇼핑할래?"
▲ 엄마 만나러 가는 길 망설임 없이 그냥 올라와주는 엄마가 고맙다 |
ⓒ 최은영 |
나는 심각한 길치다. 특히 시장 골목은 우주 카오스다. 그에 반해 엄마는 이 바닥 30년 도매상처럼 단박에 파악한다. 그 발걸음이 너무 경쾌해서 내 어두운 현명함도 덩달아 경쾌해진다.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엄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뭐여, 내가 가자고 할 땐 됐다드니 딸랑구가 부르니까 휙 가브렀냐. 딸 없는 나는 서럽다야."
▲ 남대문 갈치조림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은 오감으로 선명해서 더 아프다 |
ⓒ 최은영 |
애도는 때 된다고 어디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애달프게 쌓아야 한다. 마음의 작은 틈까지 눌러붙은 힘 센 슬픔이 녹아내릴 때까지 참지 않고 울기로 했다. 혼자 돌아갈 빈 집에서 엄마는 또 한번 울겠지만, 그 울음을 베개처럼 베고 다시 잠이 들 것이다. 그 잠이 까마득하게 깊기만 하기를, 그래서 아침이 되면 지나치게 명백한 슬픔이 한 톨 숨만큼이라도 가벼워지기를 기도했다.
엄마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채워질 힘을 기다릴 뿐이다. 엄마가 집에만 고여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 날 때마다 싸돌아 다니며 탁 트인 공간에서 툭 떨어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다보면 슬픔도 빛바래질 거라 믿는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방법으로 통과한 애도가 잠시 끝나는 시간, 우리는 말없이 꼭 껴안으며 등을 쓸었다. 엄마가 탈 기차가 전광판에서 반짝거렸다. 엄마는 플랫폼으로 내려갔고 나는 다음주에 엄마랑 볼 대학로 연극 검색을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sns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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