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 좀 찍어줘"…'셋중 한명 유권자' 고3, 교실서 친구 설득한다

서지원 2024. 3.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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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의 고교 3학년 이모(17)군은 최근 한 정당의 공천에 탈락한 당협위원장의 분신 사건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이 사건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정치 기사를 공유하는 게 이군의 생활 패턴이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의사와 정부가 대립하는 뉴스도 계속해서 SNS에 올린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고, 밥 먹을 때는 TV 뉴스를 챙겨 본다”고 했다. 이어 “내가 관심을 갖고 권리를 행사할수록 사회가 나아질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군이 SNS에 올린 정치 관련 기사. 게시물을 본 이들의 생각을 묻는 투표(왼쪽 아래)도 올렸다. 사진 독자 제공

고교생은 정치 무관심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적지 않다. 2019년부터 유권자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한 살 낮아지면서 학교에선 정치에 관심을 드러내는 고교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치 콘텐트를 제작하는 고교생 유튜버도 있다. 자신을 고3으로 소개한 한 유튜버는 1~2주에 한 번씩 올린 영상이 쌓여 615개가 됐다. 구독자는 약 600명이다. 지난 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피습당했을 때는 “나도 이 대표를 비판하지만, 책임이 있다면 법으로 지게 하는 게 맞다. 범죄 같은 과격한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평을 올렸다. 다른 영상에선 “좌파가 있어야 우파도 있고, 우파가 있어야 좌파도 있는 것”, “모두가 시위, 집회에 참여라도 하면서 최소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등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3 학생 셋 중 한 명이 유권자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4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만 18세 학생 유권자들이 교복을 입은 채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 고교생 유권자(2006년 4월 11일 이전 출생)는 13만4346명이다. 전체 고3생(39만1541명)의 34.3%다. 중학생 이상을 포함한 전체 학생 유권자는 14만3570명이다. 유급이나 만학으로 중학교에 학적을 둔 유권자도 있다.

만 18세 유권자가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이들의 투표율은 67.4%였다. 20대(58.7%)는 물론 전체 투표율(66.2%)을 웃도는 수치로 올해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전망이다.


“의대 증원, 우리 고3에겐 어떨까” 고민도


최근 의대 증원 이슈가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더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고3 학생인 이모(17)양은 “의대 증원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을 말하다 보면 대통령과 정부, 총선에 관한 주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를 잘 찾아보려고 신문사 앱도 깔았다”고 했다.
18일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에 건국전쟁 상영안내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교실에선 정치적 평가가 엇갈리는 문화 콘텐트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을 ‘영남에 사는 고3’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생각 없는 애들한테 비례대표 국민의힘을 찍으라고 설득 중이다. 주말에 조조 영화로 ‘건국전쟁’을 보고 공부하러 가겠다”며 ‘보수 성향’을 대놓고 드러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한길, 황현필 등 유명 한국사 강사 등이 비판적인 해석을 내놓으며 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남의 한 중학교 교사(27)는 “학교에 파란색 옷을 입고 가면 학생들이 ‘어? 선생님 옷 색깔이?’라며 웃는다. 친구 사물함에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사진을 붙여 놓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은 있는데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눈다’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의료 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유튜버 ‘극단 화법’ 교실로…“학교가 공론장 돼야”


우리 사회가 그러하듯 학생들의 정치 성향도 ‘편 가르기’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교실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학원 강사(53)는 “영화 ‘파묘’가 ‘반일주의를 부추긴다는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일본 이야기가 나오면 ‘반일은 그 자체로 좌파, 빨갱이’라고 판단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과격한 발언을 하면 학생들끼리 지적하는 분위기였는데, 극단적인 커뮤니티 문화가 일반화돼서인지 경각심이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3 학생의 3분의 1이 유권자인 현실에서 교육의 중립성을 이유로 정치 얘기를 금기시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정치 얘기를 막아 학교를 진공상태로 만들면 그 공간은 극단적 성향의 유튜브 채널이 채우거나, 부모의 생각이 학생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쉽다”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논쟁 수업처럼 학교에서도 건전한 토론을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유권자의 선택이 한국과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토론과 강연, 견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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