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부족'이 소련 탄생 앞당겼다…100년 뒤 우크라 무슨 일이 [Focus 인사이드]
포가 다시 주인공이 되다
2022년 11월 11일,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탈환한 뒤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한 전쟁은 드니프로강에서 쿠비얀스크를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급격하게 소강상태에 빠졌다. 개전 초 급속한 기동전은 사라지고, 양측이 팽팽히 대치하기 시작한 이때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선은 커다란 변동 없이 희생과 파괴만 늘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이전에 있었던 여러 전쟁에서 보았던 흔한 사례다.
그렇다 보니 대전차미사일과 드론이 개전 초를 상징했다면, 현재는 참호와 대포가 전선의 주인공이 됐다. 냉전 종식 이후 현대전은, 특히 강대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압도적인 정밀 타격 수단으로 적의 전쟁 수행 의지를 신속히 꺾어 속전속결로 끝내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110년 전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 패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일선에서 원하는 대로 무기를 공급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물자를 외부에서 지원받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생산 능력이 좋다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서방과 러시아 모두 냉전 종식 후 무기 생산 기반이 대폭 축소한 상태여서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제약이 많다. 특히 미사일, 전투기 같은 고급 무기는 소모한 물량을 즉시 보충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래서 21세기 들어 구시대의 화기로 취급받으며 관심에서 멀어진 포가 다시금 각광 받기 시작했다. 최신 무기와 비교하면 가격이 저렴한 데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방에서 화력을 지원하므로 생존성이 좋아 장기간 운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첨단 유도무기보다 강력하고 지속해서 타격할 수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처럼 전통의 포병이 전선의 주인공이 됐다.
물론 포라고 해서 물자 부족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일회용 유도무기에 비한다면 포는 소모율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문제는 포탄이다. 포탄이 없으면 포는 단지 거대한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냉전 종식 후 대대적인 군축으로 말미암아 포탄도 여타 무기처럼 공급량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재고분으로 싸우고 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양측 모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포탄을 구하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이 김정은에게 애걸하는 장면은 전쟁 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상황이 더 나빠 주력인 155㎜ 포탄의 경우 미국 지원분 100만발은 이미 소진한 상태고, 100만발을 약속한 EU로부터 지난해 30만발만 받았다. 결국 지난해 8월 이후 일평균 1만발을 투사하는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는 2000발 정도만 사격하면서 현재 서서히 밀리는 중이다.
그러자 포탄 부족이 정치 문제로 비화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정쟁에 휘말려 포탄을 비롯한 지원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재고 및 생산량도 절대 부족한 상태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전쟁의 주요 당사자가 돼 버린 EU도 포탄 소모량을 감당할 수 없어 역외에서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이해타산이 걸린 회원국 간의 삐걱거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불협화음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과 진행 과정이 예상을 벗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포탄의 공급으로 인한 분란은 과거 전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각보다 흔한 사례다. 오히려 그런 경험을 했고 어떻게 해야 해결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마찬가지다. 100년 전에 있었던 ‘포탄 위기(Shell Crisis)’를 보면 오늘날 모습이 그대로 투영될 정도다.
과거의 사례
영국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3국 협상의 일원이나 동맹을 맺은 프랑스나 러시아가 전쟁에 뛰어들어도 반드시 참전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영국은 안전을 보장한 벨기에가 독일의 침공을 받자 즉각 전쟁에 뛰어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전쟁에 명분에 얽매여 서둘러 뛰어든 결과는 참혹했다. 영국이 역사상 인위적으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게 되는 비극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쟁이 참호전으로 바뀌고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자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물자 소모도 급격히 늘어났다. 포탄도 마찬가지여서 1915년이 됐을 때 영국 원정군 사령관 존 프렌치가 공격 명령을 내리자 일선 부대장이 포탄이 없어 불가능하다며 항명했을 정도였다. 이에 프렌치는 지휘관을 교체하고 문책했지만, 상황을 잘 알기에 한편으로는 수시로 본국에 포탄 공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HH 애스퀴스 총리는 포탄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허버트 키치너 전쟁부 장관의 말만 신뢰하고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오베르 전투에서 곤욕을 치른 프렌치는 격노해 데일리메일 특파원에게 현실을 밝혔고, 일선의 비참한 상황이 생생히 보도되자 포탄 문제는 커다란 정치 사건으로 비화했다. 결국, 이듬해 정권이 교체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바로 포탄 위기다.
당시 같은 문제를 겪던 러시아는 체제가 바뀌는, 더 큰 변화를 겪었다. 불과 10년 전에 러일전쟁에서 패했음에도 전력 현대화를 게을리한 체 전쟁에 뛰어든 결과는 비참했다. 대규모 장기전을 감당하기에는 경제가 너무 낙후돼 있어 1915년 말이 되자 포탄을 비롯한 군수 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했고,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독일군의 화력에 병력이 우세한 러시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결국, 전선에서 무기를 획득해서 싸우라는 황당한 명령까지 내리며 비무장 상태로 병사들을 전선으로 밀어내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런 처우는 1917년 혁명이 발발했을 때 군인들이 총을 시위대에 넘기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20세기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여파가 지금도 미치고 있는 제정 러시아의 멸망과 소련의 탄생이었다.
물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포탄 부족 문제가 과거의 경우와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음으로 양으로 많은 전쟁 당사자나 관련국의 권력 체제에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미국의 정권이 교체된다면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은 분명하고 어쩌면 전쟁에서 발을 빼는데 포탄이 그럴듯한 핑계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황당한 것 같아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2년 전을 떠올리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의 전쟁 경고를 믿은 이는 많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 한국의 방위산업이 커다란 영향을 받고 국제 사회에서 소외됐던 김정은이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도 없었다. 프리고진의 쿠데타로 푸틴이 숨어다니는 모습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전쟁이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모습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쩌면 영국과 러시아의 사례처럼 포탄 문제가 그런 결과를 이끌 요인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종현 SK회장은 항암 안했다…"집에서 죽자" 결심한 까닭 [최철주의 독거노남] | 중앙일보
- 학폭 피해 호소하다 숨진 초6 여학생…가해자는 전학 | 중앙일보
- 폭발적으로 늘어난 100세, 그들 피에서 발견된 3가지 | 중앙일보
- "여긴 호남도 전북도 아닌겨"…반윤검사·지역강자·진보당 3파전 [총선 핫플레이스] | 중앙일보
- 40살 객사한 '사랑꾼의 엽서'…이건희는 차곡차곡 모았다 | 중앙일보
- "중국발 때문이네요"…롯데타워 아래 'NASA 실험실' 뜬 이유 | 중앙일보
- 100만 팔로어도 없는데…‘한줌단’으로 돈 버는 그들 비결 | 중앙일보
- 38년 동안 진화…체르노빌서 방사선 영향 안 받는 벌레 발견 | 중앙일보
- 200배 '되팔이'까지 등장…美 싹쓸이 대란 '마트백' 뭐길래 | 중앙일보
- 조두순 재판뒤 횡설수설 "8살짜리에 그짓, 난 그런 사람 아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