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상공 온갖 오염물 결합"…롯데타워 아래 NASA 실험실 뜬 이유
지난 10일 낮 12시 32분, 서울 동부 지역에 대형 항공기가 초저공으로 하늘을 날았다. 공항 인근도 아닌데 100m 상공에서 서울 상공을 가로지르자 일부 시민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높이 554m의 롯데타워보다 낮게 서울을 지나간 항공기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연구용비행기 더글라스 DC-8기. ‘하늘 위의 실험실’로 불리는 이 항공기는 이날 수도권과 서해 바다 상공의 대기질을 분석했다. 국립환경과학원과 NASA가 공동 주관한 ‘아시아 대기질 조사(ASIA AQ)’에 투입된 것이다.
DC-8기의 비행에 중앙일보 기자가 동승했다. 오산 공군기지에서 출발한 DC-8기는 최고 3000피트(914m) 고도에서 롯데타워가 보일 즈음 순식간에 최저 306피트(98m)까지 내려갔다.
그 순간 비행기에 탑승한 노르웨이 연구원이 모니터에 “CO2, CH4 Spike(수치가 치솟음)”라고 적었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와 메탄(CH4)이 서울 대기 저층부에 많다는 얘기였다. 이산화탄소는 430ppm에서 460ppm으로, 메탄은 2050ppb에서 2200ppb로 뛰었다. 이산화탄소의 경우 과거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수치(400ppm)를 상회했다.
900m 상공에서 100m로 하강하며 시료 채취
DC-8기엔 NASA와 국내외 연구진이 보유한 26대의 최첨단 양성자 전이 반응 질량 분석기(PTR-MS)가 실렸다. 서울과 수도권, 서해를 초저공비행하며 대기 중 에어로졸(공기중에 부유하는 입자들)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수도권 곳곳에서 초저공비행이 가능한 건 국립환경과학원이 수도방위사령부 등 각 지역 군에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온갖 오염물질 결합하는 서해 상공
고도를 수시로 바꾸며 오염 물질 상태를 조사하느라 항공기가 수백미터 높이에서 고도 100m까지 내려갈 때는 바다로 고꾸라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이영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환경공학과 연구원은 “우리는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 유기물(VOC)들이 대기에서 하는 화학작용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 대기질은 캘리포니아 대기질이 나쁠 때보다 더 좋지 않기 때문에, 해외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연구 기회”라고 설명했다.
“초미세먼지 출처와 생성 과정 규명”
박태현 한국외대 대기에어로졸연구실 연구원은 “우리나라 초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는지, 공장에서 나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DC-8기 외에도 한서대 1900기 등 대기질 조사 중인 비행기들의 데이터를 합치면 초미세먼지 출처를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김희주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원은 “GIST는 초미세먼지가 되기 전 상태인 클라이옥살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스가 응결해 초미세먼지가 되는 과정을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조사는 국립기상과학원·서울보건환경연구원·프린스턴대·고려대 등 국내외 45개 기관의 연구원 약 500명이 참여했다. 한국환경과학원의 미세먼지 관측 위성 GEMS와 지상 관측 장비 30종류도 동원됐다. 공중 조사는 한국 항공기 3대, 미국 항공기 2대가 서해상과 수도권 지역 수평, 나선형으로 비행하며 수행했다. ‘하늘 위의 연구실’로 불린 DC-8기는 이번 아시아 대기질 조사를 끝으로 퇴역한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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